각 지주들은 소비자·디지털 전문가를 새롭게 영입하며 변화의 신호를 보냈지만, 전반적으로 교체 폭이 제한되고 장기 재임 이사가 재선임되며 당국이 지적한 ‘참호 구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 나타났다.
또 일부 지주의 경우 법률 전문가나 소비자보호 전문가가 부재하는 등, 이사회 전문성과 다양성 측면에서도 지주별 편차가 발생하며 개선 과제를 남겼다.
금융사고 반복 속 ‘현장형 이사회’ 요구 확대
금융당국은 2024년 말부터 금융지주회사 이사회에 현장 전문가를 중용하고 소비자 보호·IT(정보기술) 전문성을 확보할 것을 요구해 왔다. 반복되는 전산 장애와 소비자 피해를 계기로 이사회 안에 IT 보안 및 소비자 보호 전문가를 최소 1명 이상 포함하고 매년 일정 비율의 사외이사를 교체하는 것을 권고한 것이다.한국금융신문 이사회 인물뱅크에 따르면 이번 재편에서 각 지주사는 전문성 확보를 위해 경쟁사 최고경영자(CEO) 출신, 소비자 보호 전문가, AI·디지털 전문가를 영입했다.
그러나 4대 지주의 이사 교체 폭은 전체의 25%를 밑돌아 기대보다 적었고 다수의 장기 재임자가 재선임되면서 학계 편중과 ‘거수기’ 문화가 여전히 남아 숙제를 남겼다.
KB, 법률전문가 보충…다양성은 후퇴
KB금융지주는 이번 이사회 재편에서 다소 보수적인 선택을 했다. 임기 만료 대상 가운데 단 1명만 교체하며 변화 폭을 최소화했고, 대신 법률·조세 전문가를 새롭게 영입하는 방식으로 내부통제와 준법 기능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이는 최근 금융권 전반에서 내부통제 실패와 감독 리스크가 부각된 흐름을 반영한 인사다. 특히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리스크 관리 중심 이사회’ 구축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부합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기존 학계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실무 경험이 있는 법률 전문가를 전면에 배치한 점도 긍정적이다.
새로 합류한 서정호 사외이사는 1969년생으로,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 위원,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률 전문가다. 현대캐피탈과 한화솔루션 사외이사 이력까지 보유, 민관을 두루 경험한 인재로서 법률 부문 뿐만 아니라 KB금융의 생산적 금융 전환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았다.
다만 그 대가로 소비자 보호와 다양성 측면에서는 후퇴가 발생했다. 소비자보호 분야에 전문성이 있던 여정성 이사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것이다.
여 전 이사는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국무총리실 소비자정책위원회 민간위원장,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소비자 보호 부문 권위자다. 이사회 내에서도 ESG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해왔다. 여 이사의 퇴임으로 여성 사외이사 비중이 감소하는 결과도 나타났다.
당국이 권고한 또 다른 기준인 디지털/IT부문 전문가 확보의 경우 최재홍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교수가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최 이사는 NHN Japan, eSamsung 사업고문을 맡을 정도로 전문성을 갖춘 인사지만, 첫 선임시기가 2022년 3월로 장기재임에 속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사회 구성 중 절반가량이 금융/재무·경영·리스크관리 등에 쏠리면서, 다양성 측면에서 약점을 지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한, CEO출신 이사 영입…장기연임 이사진은 부담
앞서 신한금융은 이사회 승계 원칙을 결의하고 매년 약 20%의 사외이사 교체를 통해 재임 경력의 균형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기조에 따라 올해는 9인의 사외이사 중 윤재원·이용국 이사가 사임, 박종복닫기
박종복기사 모아보기·임승연 이사가 새로 합류했다.주목할 부분은 외국계 은행 최초의 한국인 행장으로도 알려진 박종복 전 SC제일은행장의 합류다. 박 이사는 20년 간 영엽 현장에서 일한 '영업통'으로, 약 10년 간 은행장을 맡으며 리테일·WM 강화,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 받는다. 금융감독원이 강조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사다.
신한금융은 박종복 이사를 두고 “SC제일은행장을 역임하며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이끌고 디지털 등 신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온 금융 전문가”라며 “글로벌 금융그룹 지배구조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실질적 조언과 사업에 대한 통찰력 있는 제언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새 얼굴이자 여성 사외이사인 임승연 이사는 회계 전문가다. 미국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국민대학교 교수 겸 경영대학장을 맡고 있는 재무·회계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신한금융은 “재무·회계 전문가였던 윤재원 이사의 임기 만료에 따라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다양성 유지를 위해 여성 회계 전문가를 신규 추천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장기연임 사외이사들이 다수 포진한 것은 아킬레스 건이다. 올해로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었던 곽수근·김조설·배훈·송성주·최영권 등 5명의 사외이사가 재선임됐는데, 이들 중 배훈·곽수근 이사는 4연임을, 김조설 이사는 3연임째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3인 모두 금감원이 권고하는 ‘주주추천 사외이사’로서 각각 법률과 거시경제, 지배구조 등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지만, 사외이사의 장기 재임을 두고 당국이 ‘참호 구축’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압박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우려를 남길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 소비자보호 권위자 영입…전문성 방점
하나금융의 올해 이사회 구성은 전반적으로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짜였다. 재임 중인 사외이사 9인 가운데 8명의 임기가 만료되며 상당한 수준의 변화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실제로는 1명만 교체됐다.
주목할 부분은 새 사외이사의 전문분야다. 신임 이사에 이름을 올린 최현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서울대 가정학 석사, 미국 퍼듀대 소비자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금융소비자학회장을 맡는 등 소비자보호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인물이다. 사외이사 후보군 편입 추천은 외부 자문기관을 통해 이뤄졌다.
최 교수는 2021년부터 하나은행 사외이사로 활동해왔으며, 당시 소비자리스크관리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기존 하나금융 이사회 구성에서도 ESG 전문가인 원숙연 이사가 있긴 했지만, 소비자보호 분야의 권위자인 최 교수의 합류는 특기할만한 변화다.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보호 전문가의 이사회 참여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인선은 하나금융이 그룹 차원의 소비자보호 역량을 보다 명확히 하려는 신호로 읽힌다.
하나금융 이사회는 경영 전문가인 박동문·이준서 이사를 필두로 세제·회계·리스크관리 분야 전문가인 주영섭·이재술·서영숙 이사, IT 전문가인 윤심 이사와 법률 전문가인 이재민 이사를 더해 분야별 전문성을 한층 강화했다.
다만 이 중 박동문 이사는 2021년 선임된 이후로 이번까지 4연임째를 맞이하며 장기연임 중이라는 점이 지적받는다. 하나금융지주의 정관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임기는 2년 이내로 하되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으며, 6년을 초과해 재임할 수 없다. 박 이사는 정관상의 임기를 꽉 채우게 된 셈이다.
우리, IT·소비자보호 전문가 영입…법조인 부재는 리스크
우리금융지주는 다른 지주들에 비해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가 3명으로 폭이 크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우리금융은 윤인섭 이사는 재선임하고, 당국이 권고한 소비자보호와 IT 전문가를 동시에 신규 영입하며 적극적인 교체폭을 가져갔다. 우리금융은 지난해에도 4명의 사외이사를 교체하며 가장 큰 교체폭을 보였던 바 있다.
신임 정용건 이사는 1964년생으로 경남대 무역학과와 고려대 노동경제학 등을 수료했다. 1990년부터 2017년까지 신한투자증권에 근무하며 자본시장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금융감시센터 대표를 맡으며 소비자보호 경력을 시작했다. 현재는 케이카캐피탈 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CCO)를 맡고 있는 등 이 분야의 전문가로 통하게 됐다.
류정혜 이사는 1976년생으로,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지·토스랩 등을 거친 IT 분야의 권위자다. 현재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기존 김영훈 이사와 함께 우리금융의 AX 전환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 이사회의 특징은 다른 지주와 달리 법률 전문가가 포진해있지 않다는 점이다. 김춘수 이사가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긴 하지만 주로 CEO로 경력을 쌓았고, 윤인섭 이사와 이강행 이사는 회계 분야에 강점을 갖춘 인물이다.
규제산업에 속하는 은행·금융업 특성상 이사회의 법률 전문가 부재는 단순한 전문성 결핍을 넘어, 정부 규제 대응과 내부통제 전반의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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