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버블의 악영향을 증폭시키는 신용팽창](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31321473103554c1c16452b012411124362.jpg&nmt=18)
프린스턴 대학의 마쿠스 부루너마이어(Markus Brunermeier)와 현재 유럽중앙은행 이사로 재직 중인 이자벨 슈나벨(Isabel Schnabel)은 과거 400년 동안 발생한 주요 자산가격 버블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버블 붕괴에 따른 경제에 미치는 충격의 크기는 버블이 발생한 자산의 종류와는 관계가 없고 투기에 동원하는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연구 결과, 경제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미치는 버블은 대출 붐에 따라 투기자금 조달에 있어서 차입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금융기관도 많이 투기에 가담함에 따라 형성된 버블이 붕괴되었을 경우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신용의 과도한 팽창은 대부분의 금융위기의 공통분모이고 경제에 악영향을 확대시키는 핵심 요인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용 공급의 급증을 동반하지 않는 부동산 버블은 없다” 라는 격언이 있듯이 대부분의 투기 광풍은 신용 공급의 급증을 동반한다. 신용 공급은 은행들의 대출 증대, 해외 자금 유입,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확대된다. 대출의 증대나 해외 자금 유입을 통한 신용 팽창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전통적인 통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을 통해서도 신용이 증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은행들이 금리규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개발한 양도성 예금 증서(CD)는 신용 공급을 늘리는데 기여했다. 2000년대초 미국의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민간 금융기관들이 주택담보 대출 또는 모기지 대출을 증권화한 것도 주택부문에 대한 신용 공급을 늘린 금융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도 정부와 정부 관련기관들이 모기지 대출을 정부 보증을 기반으로 증권화했지만 새로운 것은 민간 투자은행들이 정부의 보증 없이도 모기지 대출을 함께 묶어 신용 리스크가 다른 여러 종류의 새로운 증권으로 만드는 증권화를 활성화했다는 점이다.
투자은행들이 정부의 보증 없는 모기지 대출의 이자와 원금에 대한 청구권을 기초로 새로운 채권을 만들어 보다 유동성이 높은 채권을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이러한 모기지의 포트폴리오를 기초자산으로 창출된 신용 리스크가 다른 새로운 채권들은 개별 모기지보다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는 이론에 입각해 비우량 모기지대출 공급을 대폭 늘리면서 주택 가격 버블 형성에 기여했다.
주식 가격이 상승하면 대출기관의 자본금이 늘어나게 되면서 대출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출을 확대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차입자가 대출을 위해 담보로 제공한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게 되면서 차입을 더 늘릴 수 있는 효과도 발생하게 된다. 이에 더해 현재 늘어나는 신용은 혁신적인 방법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신용 확대 과정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확산되는 것도 신용 팽창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있다.
민스키는 은행 대출 등 신용 공급의 변화가 경기순응적(procyclical)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경기가 호황일 때에는 신용 공급이 증가하는 반면 경기가 부진하면 신용 공급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경기의 호황이 지속되면 투자자들은 더욱 낙관적으로 바뀌면서 다양한 부문의 투자 수익성에 대한 예측이 상향 조정된다. 동시에 대출 금융기관들도 개별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고 위험회피 성향이 약해지면서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게 된다.
경제 전반에 걸쳐 부채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진 상황에서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이 미래 경제에 대한 낙관론에서 비관론으로 돌변하고 대출자들도 대출 손실의 발생에 대한 우려로 대출 행태가 보다 신중하게 바뀌게 된다.
민스키는 차입의 형태를 개별기업의 영업이익과 부채 상환 금액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기업의 예상 영업이익이 차입금 이자와 정해진 원금 상환에 필요한 금액보다 큰 경우를 ‘헤지 차입(hedge finance)’, 예상 영업이익이 차입금 이자는 갚을 수 있지만 원금까지 상환하기 어려운 경우를 ‘투기적 차입(speculative finance)’이라고 정의했다. 영업이익이 차입금 이자도 지급하기 불충분해 새로운 차입이나 보유자산의 매각이 없이는 이자도 갚기 어려운 경우를 ‘폰지 차입(Ponzi finance)’이라고 정의했다. 폰지 차입은 지속이 불가능한 형태의 재무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민스키는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도취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대출자와 차입자 모두 위험 회피성향이 약해지면서 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부채의 질 즉 부채 상환능력이 저하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기가 하강하면 기업의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헤지 차입에 분류되었던 다수의 기업들이 투기적 차입 유형으로 바뀌고 투기적 차입으로 분류되었던 기업이 폰지 차입 유형 기업으로 변모하는 기업이 많아진다고 보고 있다.
즉 장기간의 경기 호황에 따른 대출의 양적 증가와 질적 저하가 취약한 금융구조를 만들어서 금융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월가에서 ‘닥터 둠(Doctor Doom)’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정확하고 냉철한 금리 예측으로 솔로몬브라더스의 채권투자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던 헨리 카우프만(Henry Kaufman)도 부채의 양이 증가할수록 질도 함께 저하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스키의 이론과 같이 장기간의 금융 안정은 과도한 낙관론을 조장하고 과도한 낙관론은 미래의 금융 불안의 원천이 된다. 장기 호황 시에는 유동성이 매우 풍부하고 자산가치가 계속 상승하면서 리스크를 과도하게 추구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과도한 리스크 추구는 은행과 같은 전통적인 금융기관에 비해 규제와 감독이 느슨하게 적용되고 예금 보험, 중앙은행 긴급 대출 등과 같은 금융 안전망이 취약한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부문에 집중되면서 금융불안 리스크가 축적된다.
자산가격이 하락세로 반전되면 차입자들의 부채가 그들의 소득에 비해서 지나치게 많다는 인식이 대출자들에게 확산되면서 신용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키게 된다. 대출자들은 대출 제공에 신중해지고 차입자들도 원리금 상환에 필요한 현금 확보와 부채 감축에 착수하게 된다.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기업들의 자산과 부채의 차이인 순자산(net worth)이 줄어들고 대출자에게 제공한 담보의 가치가 하락한다.
대출자들은 위험한 차입자에 대한 대출을 만기가 돌아오면 즉각 회수하거나 기존 대출에 대해 담보를 늘릴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들은 새로운 대출에 대한 신용 기준을 강화한다. 투자자들이 차입에 의존해 자산을 매입한 경우 자산 가격의 하락은 대출자들의 추가 증거금 요구 즉 마진 콜(margin call)이나 현금 요구가 늘어나면서 자산의 매각이 늘어나고 자산가격은 더욱 하락하게 된다. 자산가격이 더욱 하락하면 은행의 대출 손실이 늘어나면서 은행이나 브로커의 파산이 늘어난다. 신용시스템이 불안정해지고 현금 등 유동성 확보를 위한 경쟁이 심화된다.
자산가격 하락과 실물 경제와의 네거티브 피드백 고리(negative feedback loop)는 버냉키 등이 주장한 금융가속기(financial accelerator) 이론으로 잘 설명될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대출자는 차입자의 신용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출자는 차입자에게 담보로 자산을 제공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보 대출의 경우 ‘자산가격의 하락 → 기업의 순자산 포지션 악화 및 담보자산의 가치 하락 → 기업의 차입 능력 저하 → 은행의 대출 축소 → 투자 위축 → 경기 하강 → 자산가격 추가 하락 → 기업의 순자산 포지션 추가 악화 → 기업의 자금 조달 조건의 추가 악화 → 경기 하강 가속화’ 라는 악순환 과정을 의미한다.
많은 경우 금융위기 발생 이전에 신용 붐이 발생하면서 가계와 금융기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과도한 부채를 유지하는 것이 위기를 발생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담당했다. 유럽의 부채 위기는 2009년 그리스 재정위기, 2011년 유럽계 은행들의 지불 능력에 대한 우려로 인한 은행 위기, 2012년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금융위기 등 3단계에 걸쳐서 진행되었지만 공통적인 요소는 과도한 부채이었다. 과도한 부채로 고통을 받은 채무자는 국가마다 다른데 그리스의 경우는 공공부문이고,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경우 가계와 금융기관이었다.
채무자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우 정부 재정, 금융시스템, 실물경제로 이어지는 네거티브 피드백 고리가 형성되면서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 유럽 부채위기(European debt crisis)는 1990년대 후반기에 일본이 겪은 금융위기와 매우 유사하지만 유럽의 경우 정부 재정과 금융시스템 간의 네거티브 피드백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했다.
특히 유로 지역의 은행들은 자국의 국채를 많이 보유함에 따라 국가 재정과 긴밀한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ship)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스의 경우에는 ‘국가채무 디폴트 가능성 증대 → 국채 가격 하락 → 은행들의 손실 증대에 따른 자본 감소 → 은행들의 대출 활동 위축 → 경기 둔화 → 세수 감소 → 국가 재정수지 악화’라는 악순환 과정이 발생했다. 아일랜드의 경우에는 ‘은행들의 부실 증가 → 공적 자금 투입 증가 → 국가 재정수지 악화 → 국가채무 디폴트 가능성 증대 → 국채 가격 하락 → 은행들의 손실 증대에 따른 자본 감소 → 은행들의 대출 활동 위축 → 경기 하강’이라는 악순환 과정이 전개되기도 했다.
일본의 위기도 과도한 부채가 근본원인이라는 점에서 유럽 부채위기와 유사하다. 다만 일본의 위기는 자산가격과 실물경제 간의 네거티브 피드백이 금융시스템을 통해 강력하게 작용해 버냉키가 주장하는 금융가속기 이론에 가장 부합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은행들은 자기계정으로 대규모의 기업 주식 포트폴리오를 보유했고 당시 BIS 자기자본 기준에 따르면 보유 주식의 장부가와 시가의 차이인 미실현 이익의 45%가 보완자본으로 인정됐기 때문에 주식 가격의 하락은 자본금 감소를 통해 은행들의 대출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럽과 일본의 금융시스템에서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는 점도 공통점인데 이러한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으로 인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더욱 컸다고 생각된다. 스페어 타이어의 역할을 하는 자본시장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면 신용경색이 심해지면서 경제활동도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일본의 경우 은행들이 자금공급에 있어서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모든 은행들이 대부분의 대출에서 부동산 담보를 이용해왔기 때문에 토지가격 하락에 따른 공동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어서 은행들의 부실대출 문제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부채위기와 1990년대 후반 일본의 금융위기는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과 실물경제 간의 강력한 네거티브 피드백이 발생했고 이에 대해 정책당국이 신속하고 과단성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