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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만 부추기는 빚 탕감 정책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기사입력 : 2017-08-08 22:47

금융부장 겸 증권부장

논란만 부추기는 빚 탕감 정책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소액 장기 연체자는 사실상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계층이다. 이들이 채권 추심 공포에서 벗어나 새 출발하게 도와주는 게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빚을 100% 탕감해준 적은 없었다. 이 정책은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이더라도 형평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최근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장기 소액 연체자 80만 명의 빚을 전액 탕감해주기로 했다는 소식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고 한다. 빚에 시달리는 극빈층 부채를 탕감해 다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자칫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아서다. 빚 탕감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돼 온 대표적인 금융 포퓰리즘성 정책이다. 하지만 이번엔 빚 일부가 아닌 100% 탕감 정책이어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진 법원에서 개인파산을 선고받지 않는 한 빚 전액 탕감은 없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장기소액 연체채권 정리 대책은 이달 말까지 국민행복기금과 6개 금융공기업이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 채권 21조7000억 원어치를 일괄 소각하고,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가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 채권 4조 원어치도 소각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는 것. 이렇게 되면 연체 발생일로부터 5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료된 214만3000명의 채무기록이 전산과 서류에서 삭제돼 금융거래가 다시 가능해진다.

이번 정부의 소액 장기 부채 100% 탕감 대책은 빚 추심 공포에 시달리는 연체자의 부담을 덜어줘 재기를 돕겠다는 정책적 취지에선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상법상 돈 갚은 의무는 연체 시점부터 5년이지만(소멸시효 완성), 현실은 영 딴판이어서 채무자가 겪는 고통이 큰 게 사실이다. 금융회사는 법원의 지급명령을 통해 채권 소멸 시효를 10년 단위로 계속 연장하고, 또 대부업체들은 시효가 끝난 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연체이자까지 덤터기 씌워 추심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금융기관의 편법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금융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빚 탕감 정책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비슷한 처지에서 빚을 성실히 갚아 나가는 채무자와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점이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의 빚 탕감 정책 소식이 전해지면서 온라인상에서는 이를 우려하는 도덕적 해이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네이버 누리꾼 'eofucldnj'는 "왜 내 세금을 그런데 쓰냐고요? 그 사람들 탕감해 줘도 또 같은 상황 반복된다"라고 반대했고, 다음 아이디 '고전"은 "지금 농촌은 일손 부족이 심각한데 일당 10만 원이니까, 1000만 원은 조금 노력하면 상환할 수 있는데 무조건 면제 이건 아니다"고 지적 등등.

선심성 복지는 일시적인 진통제는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처방전은 될 수 없다. 이번 전액 빚 탕감 정책은 자칫 돈을 빌려도 “5년만 버티면 안 갚아도 된다”는 그릇된 신호를 줄 소지가 다분하다. 더구나 시효가 남은 연체 채무까지 탕감을 약속했으니 모럴해저드 우려도 팽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혜성 정책의 강도가 높아지면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번에 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 소액 연체채권을 탕감해줬다면 다음에는 5년 이상 2000만 원 이하로 대상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장 고생해 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인식만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

금융회사 역시 ‘포용적 금융’으로 돈 떼일 위험이 커질 것을 걱정해야 한다. 일부 금융권은 존립 위기론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럴수록 꼬박꼬박 빚을 갚아온 이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성실 채무자가 바보이자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기업이 보유한 채권을 탕감해주는 것은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것과 다름없다.

때문에 정부의 이번 정책은 빚 탕감 대상자에 대한 상환능력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다시 말해 정말 형편이 안 돼 못 갚는 경우와 재산을 숨기고 안 갚는 경우를 철저히 가려내 절박한 처지의 채무자만 지원하는 ‘핀셋 탕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취약계층이 채무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서민 정책 금융의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겠다.

빚 100% 탕감 정책은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니만큼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임시방편으로 근시안적 대책만을 반복하는 정부의 빚 탕감 정책은 스스로 노력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결여된 극빈층,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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