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주력해 온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 중심의 안전지대를 벗어나 항암제라는 최고난도 분야에서 글로벌 임상부터 FDA 허가, 현지 직접 판매까지 전 과정을 주도하는 ‘빅파마형 비즈니스 모델’의 첫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다.
구한말 약방서 시작된 130년 제약史…항암제 FDA 첫 통과
30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한국 근대 제약산업의 역사는 1800년대 후반 구한말 근대식 약국과 의약품이 도입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30여 년간 국내 제약시장은 해외 의약품의 도입 및 복제약(제네릭) 생산을 중심으로 기반을 다진 뒤, 2000년대 들어 자체 신약 개발과 글로벌 기술수출로 영역을 확장해 왔다.
2003년 LG생명과학의 항생제 ‘팩티브’가 국내 개발 신약으로는 최초로 FDA 승인을 받은 이후에도 글로벌 신약 개발을 향한 도전은 이어졌다. 그러나 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항암 신약’ 분야에서 국내 기업이 개발부터 허가 절차 전체를 직접 완주하고 FDA 승인까지 끌어낸 사례는 이번 HLB의 리픽투가 처음이다.
HLB로선 2007년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권리를 확보하며 신약 개발에 본격 뛰어든 지 약 19년 만에 거둔 첫 FDA 허가 결실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그간 K-바이오의 주된 성장 방정식이었던 ‘임상 1·2상 단계에서의 조기 기술수출’ 방식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기술수출은 초기 개발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지만, 신약의 최종 상업화 성과와 거대한 유통 마진을 외부에 넘겨줘야 하는 한계가 존재했다. HLB는 미국 자회사 엘레바 테라퓨틱스를 통해 FDA 승인 신청(NDA)을 직접 수행하며 독자적인 글로벌 상업화 역량을 입증했다.
‘기술수출’ 넘어 미국 직판…유럽 EMA 허가도 속도
HLB가 선택한 직접 상업화 모델은 성공 시 거둘 수 있는 과실이 막대하지만 반대로 실패 리스크 역시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고난도 전략이다. 임상 성공 이후에도 현지 영업망 구축, 주요 암 전문 의료기관 중심의 시장 접근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리픽투는 섬유아세포성장인자수용체 2(FGFR2) 융합·재배열이 있는 담관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2차 치료제다. 특정 유전자 이상을 가진 환자를 치료 대상으로 하는 만큼 정확한 환자 선별과 유통 네트워크 확보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엘레바는 올해 4분기 미국 출시를 목표로 현지 직접 상업화를 준비 중이다.
글로벌 영토 확장도 가속화하고 있다. 엘레바는 지난 14일 유럽의약품청(EMA)에 리픽투의 품목허가신청서(MAA)를 제출하며 유럽 시장 진입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미국에서 확보한 허가 성과를 기반으로 유럽 및 글로벌 시장 저변을 빠르게 넓혀간다는 구상이다.
담관암 넘어 암종불문 도전…간암 후속 허가가 과제
리픽투 FDA 승인의 또 다른 가치는 후속 적응증 개발을 위한 플랫폼 기반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엘레바는 현재 담관암 외에도 FGFR2 융합·재배열을 보유한 다양한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 2상인 ‘리포커스202(ReFocus202)’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한국·영국·스페인·프랑스 등에서 다국적 임상으로 치러지는 이번 연구는 리라푸그라티닙의 치료 가능성을 암종 전반으로 확장하기 위함이다.
ReFocus202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될 경우 리라푸그라티닙은 발병 장기가 아닌 유전자 이상을 기준으로 치료 대상을 정하는 ‘암종불문’ 항암제로 거듭나게 된다. 단일 적응증의 허가에 그치지 않고 시장 규모를 대폭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엘레바는 담관암에서 확보한 개발·허가 경험을 토대로 후속 적응증 개발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리픽투의 미국 처방 안착과 유럽 허가, 암종불문 적응증 확대와 더불어 간암 신약의 후속 FDA 승인을 완주하는 것을 향후 과제로 꼽는다. HLB가 이러한 과제를 완수하면 이번 승인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항암제 시장에서 단순 개발사를 넘어 허가권과 판매권을 동시 확보한 ‘직접 상업화 주체’로 거듭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HLB는 오랜 기간 항암 신약 개발에 투자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추진해 왔다”며 “리픽투의 FDA 승인은 신약 개발 성과가 직접 상업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 성과와 간암 신약의 후속 허가 여부가 HLB의 글로벌 항암제 사업 확대를 가늠할 주요 지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채윤 한국금융신문 기자 cy@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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