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월요일 오전 은행에 방문해 주택 매매를 위한 대출심사를 받을 계획이었다. 평소 실물 신분증 대신 모바일 신분증을 이용하는 것에 더 익숙했던 A씨는 이 날도 주민등록증 없이 은행을 찾았으나, 정부 전산망 마비 때문에 실물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행원의 안내를 듣고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지난 금요일(26일) 밤 8시경, 대전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배터리 발화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정부24·모바일 신분증·인터넷 우체국 등 정부 전자시스템 96개가 마비되고, 우체국 우편·금융·보험 등의 업무가 마비됐으며,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가동중단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약 520㎡ 넓이의 전산실 내 장비·배터리가 전소됐는데, 정부는 국가위기경보 ‘심각’을 발령하고 긴급 대응에 나섰다.
정부24 등 정부 전산망과 연계된 서비스를 제공 중이던 은행들은 주말을 반납하며 긴급 대응체계 마련에 나섰다. 다만 추석 명절 전 자금을 융통하려던 고객들이 다소의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에서 실물 주민등록증의 진위확인(위·변조 여부 확인)이 필요한 업무는 주로 대면 거래에서 본인 확인이 필수적인 경우다. 여기에는 계좌개설, 대출·신용거래, 고액의 현금거래, 명의변경 및 주요 고객정보 변경 등이 포함된다.
실물 운전면허증·여권·외국인등록증이나 화재가 발생한 26일 이전에 발급한 모바일신분증(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외국인등록증)이 없다면, 계좌 개설, 카드 발급 등이 불가능하다.
이에 고객들이 은행에 방문해 부동산대출 등의 업무를 수행하려면 필요한 실물서류를 직접 떼와야 한다. 현재 은행들은 대면 창구에서 주민등록증 대신 활용할 수 있는 신분증을 안내하는 등 신원 확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주말을 반납하고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긴급 대응체계 마련에 나섰다.
국민은행의 경우 '해외 IP 차단 서비스' 가입 고객의 이체성 거래를 일시 중단했다. 국내가 아닌 해외 IP로 접속한 이체를 사전에 차단해 보안을 강화하는 서비스다. 국민은행은 해당 서비스를 위해 KISA 공공데이터포털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왔으나, 현재 시스템 장애로 IP 확인이 어려워져 이체를 막았다.
KB금융그룹은 양종희닫기

신한금융은 이번 사태 직후인 27일(토), 그룹 리스크 부문장(CRO) 주재 회의를 소집하고 은행, 카드, 증권, 저축은행 등 주요 그룹사와 함께 대응 상황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 실시간으로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월요일부터는 각 그룹사의 영업점 업무 개시 이후 영업점과 콜센터에서 화재 사고로 처리하지 못한 고객의 업무를 응대하기 위한 방안을 사전에 수립해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모바일 운전면허증 등 대체 인증 수단 및 이용 가능 서비스 현황을 안내하는 식이다.
신한금융은 일부 금융거래 프로세스 장애로 인한 전체 업무가 중단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전산 장애 발생 시 신속하게 시스템을 분리·대체 운영할 수 있도록 전체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또한 혼란 상황을 악용한 외부 해킹 시도를 즉시 차단하기 위해 그룹 내 정보보안 비상체계도 강화하는 등 금융사고 예방과 금융서비스 안정화를 위한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하나금융 역시 그룹 리스크부문장(CRO) 주재 회의를 소집하여 그룹의 전 관계사의 영향도를 파악하고, 금융 서비스 안정화를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 및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그룹 ICT 부문에서는 이번 화재로 손님 불편이 예상되는 항목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중요 전산 체크 리스트를 선정하여 하나은행, 하나증권, 하나카드 등 각 관계사에 배포했으며, 향후 전산 복구 지연 상황에 대비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등 그룹 차원의 비상대응체계를 가동 중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은행장 주재 '국정자원 대응 TFT'를 구성하여 각 사업그룹별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와 관련 업무 영향도를 점검했다. 이와 함께 전직원 대상 중요 안내사항 배포 및 영업점 손님 응대 메뉴얼 준비 등 비상대응체계를 마련했다.
우리금융 역시 그룹 위기대응협의회를 중심으로 매뉴얼에 따라 시스템 영향도를 점검하고 고객 안내 및 대체 수단을 마련해 피해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대체 신분증을 활용한 거래 지원과 함께, 우리WON뱅킹 앱은 물론 은행, 증권, 보험 등 각 계열사 홈페이지와 콜센터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고객 안내를 강화하는 등 다각적인 조치를 시행 중이다.
농협은행 역시 NH마이데이터, 공공마이데이터 이용 일부 업무부터 NH스마트뱅킹 내 전자문서지갑, NH올원뱅크 내 고향사랑기부제, 국민비서, 책이음 서비스 중이 일시 중단됐다. 농협은행은 수석부행장 주재 대응회의를 거쳐 비상대응 체제에 나선 상태다.
수협은행도 은행장 주재의 위기상황 대응회의를 소집하고 즉시 비상근무 체계로 전환해 대고객 금융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현황을 점검했다. 주말 내내 이어진 비상근무와 정보보안시스템 점검, 콜센터 고객응대 강화 등 금융서비스 안정화를 위한 조치를 병행한 결과, Sh수협은행은 29일 현재 ▲주민등록증 본인확인 ▲공공마이데이터(비과세종합저축 자료제출 서비스) 등 일부 국가전산망 연계 서비스를 제외한 금융서비스 업무가 정상적으로 제공되고 있다고 밝혔다.
iM금융은 그룹리스크총괄 주관 하에 ‘그룹위기관리협의회’를 발동했다. 그룹위기관리협의회는 iM뱅크, iM증권, iM라이프, iM캐피탈, iM유페이 등 계열사 ICT시스템의 비상대응체계를 점검하고, 고객 불편 최소화를 위한 전사적 대고객 응대 매뉴얼을 수립했다. iM금융그룹은 소속 계열사의 비대면 대출 신청업무, 공공마이데이터 기반 업무 등 거래가 불가한 업무내용을 파악 후 그룹 및 각 계열사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을 활용해 대고객 공지를 완료하고, 대체 가능한 수단을 준비하는 등 고객 금융 서비스 이용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부산은행은 “은행 이용 시 실물 운전면허증, 대한민국 여권, 모바일 신분증, 외국인 등록증 중 1개를 지참해 주시기 바란다”는 공지를 띄운 상태다. 29일 현재 실물 주민등록증 및 실물 국가보훈증 진위확인 업무부터 비대면 기업대출 일부 신규 업무(3無 마이너스대출, 온택트보증서대출) 등도 일시 중단됐다. 경남은행도 주민등록증을 이용한 진위확인 서비스 및 공공마이데이터 이용서비스 등이 일시 중단됐다.
광주은행과 전북은행 또한 정부의 점검종료시까지 주민등록증·모바일신분증 이용업무, 서류제출 서비스 등 정부 24제공 업무, 국세와 관세청 업무 등의 서비스가 중단됐다고 공지했다.
그나마 대면 영업채널도 보유하고 있는 시중은행이나 국책은행들과는 달리, 대면없이 비대면으로만 운영되는 인터넷은행들의 불편함은 더욱 클 전망이다.
케이뱅크의 경우 실물 주민등록증을 통한 본인확인 서비스 및 이를 활용한 업무에 영향이 가게 됐다. 모바일 신분증 역시 사고 발생 시점인 26일 이전에 발급된 것만 이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민생회복쿠폰(주소변경), 체크카드 신규신청 등 정부기관 연동 서비스도 일부 중단된 상태다.
카카오뱅크는 모든 국고금(국세, 관세, 경찰청범칙금, 사회보장료 등)의 조회 및 납부 서비스가 중단됐다. 국민비서 서비스(국민비서 서비스 가입/해지, 안내받을 문서 변경, 알림 수신 등) 서비스 역시 일시 중단된 상태다.
다만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의 경우 공공 마이데이터 대신 고객이 관련 실물 서류 이미지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출 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토스뱅크 역시 한때 주택담보대출 등 일부 대출상품 심사가 제한됐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고객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 복구작업에 맞춰 복구되는 부분들을 즉각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호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행정안전부 장관)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전소된 7-1 전산실의 96개 시스템은 바로 재가동이 쉽지 않다"면서 "대구센터의 민관협력형 클라우드로 이전 복구를 추진해 최대한 신속하게 대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주말이 지난 오늘부터 민원 행정수요가 늘어나고, 국민 불편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며 "오늘 회의에서 각 부처 지자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국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서비스가 시작될 때마다 네이버, 다음을 통해 공지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해 안내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소된 주요 정보시스템 96개가 대구센터로 이전해 재가동되기까지는 약 2주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돼 전체 서비스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장애 해소 시까지 민원 불편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합동 민원센터(110콜센터), 지역 민원센터(120콜센터 등)와 민원 전담지원반을 운영한다. 또 지자체 등 기관 차원의 정확한 안내, 대응을 위해 전소돼 서비스가 어려운 96개 시스템 목록을 제공한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