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왼쪽부터 유럽우리은행 정현숙 법인장, LG전자 김유선 폴란드법인장, 한국항공우주산업 이원혁 유럽법인장, 현대로템 서준모 유럽방산법인장, 피오트르 오스타셰프스키 前주한 폴란드대사, 우리은행 류형진 글로벌그룹장, 임훈민 주폴란드 대한민국 대사, KOTRA 이정훈 바르샤바무역관장, SK IET 박병철 폴란드법인장, 유럽우리은행 이정우 폴란드지점장이 개점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우리은행
이미지 확대보기그간 은행들의 해외진출 텃밭이었던 동남아시장이 미중 무역분쟁 및 건전성 리스크에 직면하며 성장이 정체돼 새로운 시장의 발굴이 필요했고, 이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재건 수요 등이 풍부한 동유럽시장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전체 인구 중 젊은 세대 비중이 높아 경제 성장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대표적인 개발도상국들로 꼽힌다. 이런 와중에 은행계좌나 금융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잠재고객도 많아 신규 고객을 확보하기에도 유리했다.
또 지리상으로도 동남아에 거점을 확보하면 유럽 등 다른 국가로의 진출도 용이하다는 점에서, 많은 은행들은 동남아에 법인 내지는 지점을 두고 핵심거점으로 운영해왔다. 여기에 역대 정부들이 꾸준히 추진해온 ‘신남방 정책’ 역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동남아시장 투자에서 대다수 비중을 차지하던 중국이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투자를 줄이고 동남아 국가에 대한 압력을 늘리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트럼프 2기 등장과 미중 공급망의 디커플링이 관측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중국과의 공급망 통합을 가속해온 동남아 국가들은 오히려 대내외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남아 국가들은 △미중 공급망의 디커플링 △지역개발 및 원조 프로그램의 지속 가능성 약화 △중국의 저가 제품 유입에 따른 동남아 국내기업의 경쟁력 약화 등의 리스크에 직면하며, 동남아 경제의 불확실성은 나날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또 지난해 기준 국내은행 해외자산 가운데 26%는 동남아 지역에 집중돼있는데, 최근 베트남과 캄보디아 은행의 부실대출 규모가 급증하는 등 건전성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상태다.
하나금융연구소 장혜원 수석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동남아 주요국 은행의 부실채권 현황 및 시사점’ 리포트에 따르면 베트남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2021년 이전까지 2% 미만이었으나 2022년 이후 급격하게 상승해 2024년 상반기에는 5%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캄보디아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 역시 2022년 3%를 넘긴 후 2024년 상반기 6.3%까지 상승했으며, 부실대출 규모도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베트남 은행권 부실대출 증가는 팬데믹 이후 금리 상승에 따른 주택수요 위축이 건설·부동산업 부진으로 이어져 관련 업체가 자금조달에 실패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캄보디아 부실대출 급증의 주요 원인은 2020년 이후 주택시장 호황으로 확대된 부동산 담보대출이 ’23년부터 중국 투자가 감소하며 부실화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이 유럽, 그 중에서도 체코와 폴란드 등 동유럽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본격화될 전후재건사업에 대한 수요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내 은행들이 주목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 폴란드는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해 중동부 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경제·물류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약 4000만 명의 내수시장과 안정적인 성장세를 기반으로 투자 친화적 환경을 갖췄다고 평가된다.
무엇보다 향후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사업의 전초 기지로도 부상하고 있어, 하나은행의 강점인 외국환 및 리테일, 기업금융 등의 다각적인 금융 서비스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국내 대표 방산기업들을 비롯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기아차 등 다수 기업 현지 법인들이 진출해 있다. 제3의 도시인 브로츠와프에도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2차전지 관련 한국 기업이 대거 입주해 있고, 카토비체 인근 자동차 부품 생산 기지와도 가까워 현지 금융 수요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유럽 국가에 비해 저렴한 물가로 여행경비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최근에는 동유럽 지역에 대한 관광수요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올해 4월 아시아나항공이 프라하에 신규 취항하게 돼 직항 연결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추가적인 동유럽 시장 활성화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우리은행은 올해 4월 국내은행 최초로 유럽지역의 전략적 거점 확대를 위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폴란드 지점을 개설하며 동유럽시장 확장을 본격화했다.
우리은행은 유럽 내 외화 조달 역할을 담당하는 런던지점, 기업금융을 전담하는 프랑크푸르트 소재 유럽우리은행에 더해 유럽에 세 번째 거점을 확보하게 됐다. 폴란드지점은 폴란드를 넘어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한국계 지상사가 진출한 동유럽 지역 영업을 총괄 관리하게 됐다.
하나은행 역시 지난 23일,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지점을 개설하고 유럽 전역에 대해 영업을 본격화했다. 개점식에는 이호성닫기


하나은행은 23일(현지시각) 폴란드 남부 최대 공업도시 브로츠와프에 지점을 개설했다. 이날 개점식에 참석한 이호성 하나은행장(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이 내외빈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하나은행
이미지 확대보기이에 앞서 하나은행은 22일(현지 시각) 자산규모, 시장점유율 1위의 폴란드 최대 상업은행인 PKO Bank Polski와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양행 진출 해외 영업점 상호 지원 ▲IB 업무 협력 ▲무역금융 ▲환거래은행서비스에 대한 업무지원 등이며, 양행은 이번 MOU를 통해서 다양한 글로벌 비즈니스 추진을 위한 전략적 협력의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국책은행 및 금융공기업 차원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6월 바르샤바에 사무소를 개소하고 현지 투자수요 파악을 통해 우리기업들의 대규모 사업 수주를 뒷받침할 준비를 마쳤다. 신용보증기금은 이달 초 폴란드 개발은행(BGK)과 양국의 신용보증제도 발전 및 기업 성장 지원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