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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기를 둘러싼 수수께끼, 잃어버린 10년인가 잃어버린 수십년인가?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gmail.com

기사입력 : 2025-05-26 13:06

일본 위기를 둘러싼 수수께끼, 잃어버린 10년인가 잃어버린 수십년인가?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앞서 소개했던 미 연준의 보고서에서는 버블 붕괴 후 일본이 겪은 경기 불황은 일본 특유의 몇 가지 요인들을 제외하고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선진국들이 겪은 경기 순환과정과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고베 대학의 료이치 미키타니는 1990년대의 일본의 경기 불황은 일본형 경제운영 시스템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체제 변혁기에 발생한 매우 특수한 경기 불황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위기가 실제로 전개된 과정을 자세히 보면 선진국들이 겪은 전형적인 경기순환 과정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일본 위기의 독특성과 이와 관련된 수수께끼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주목할만한 일본 위기의 독특성은 위기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2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첫 번째 수수께끼는 일본의 위기를 1990년대 초 주식과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금융위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금융위기가 종료된 후에 다른 위기들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지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일본의 금융위기가 종료된 시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일본의 금융위기가 시작된 시점은 1990년대초 자산가격 버블이 붕괴된 직후인지 아니면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본격화된 1997-98년 경으로 봐야 하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수수께끼는 버블 붕괴 후의 일본의 위기를 흔히 말하는‘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잃어버린 30년 또는 수십년(lost decades)’이라고 볼 것인지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라카와는 버블 붕괴 후 금융 시스템의 부실자산 처리가 지연되어 경기가 침체되었던 10년 동안의 일본 경제의 상황을 묘사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수긍했다. 그는 그 후의 일본 경제를 보면 성장률이 낮아진 것은 인구 고령화 등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때문이어서‘잃어버린 수십 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저자인 요시미 순야는 1990년대에는 일본 위기의 중심이 금융부문이었다면 2000년대에는 일본 위기의 중심은 금융부문에서 제조업 부문으로 옮겨갔다고 주장해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의 위기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일본의 위기는 하나의 위기가 계속되었다기보다는 자산 버블 붕괴에 따른 금융위기에 이어 새로운 위기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1990년대의 금융위기가 종료된 시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되어 있다. 시라카와는 일본계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2004년 이후 상향 조정된 은행의 수가 강등된 은행 수보다 많아졌다는 점을 들어 이 시점에서 금융위기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이즈미 내각에서 의원이 아닌 민간인으로 경제·재정정책 담당 장관으로 발탁되어 금융 담당 장관, 우정 민영화 담당 장관, 총무 장관 등을 역임했던 다케나카 헤이조도 2004년 10월 일본 최대의 할인 유통업체이었던 다이에이가 산업재생기구를 통해 본격적인 회생절차에 들어가 금융 부실 처리의 마지막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포스트 버블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도 부실채권이 2002년 3월을 정점으로 크게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 2005년 4월부터 금융정책을 ‘위기시’에서 ‘평시’ 체제로 전환해 금융개혁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자산 버블 붕괴에 따른 일본의 금융위기는 적어도 2004년 말에는 종식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일본의 금융위기 발생 시점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하고 예금보험 공사가 처음 은행 도산에 개입한 1990년대 초부터라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뱅크런이 발생하고 은행 국유화가 시작된 1997-98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에 관한 것이다.

시라카와, 나카소 등 일본은행 출신 이코노미스트들은 금융기관의 간헐적인 파산이 발생되기 시작한 1991년을 일본의 금융위기가 시작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그 정점이 1997년 11월 3일 산요 증권이 구조조정을 개시한다고 발표한 이후라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반면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에 따르면 일본의 버블 붕괴 직후부터 뱅크런이 발생하고 은행 국유화가 시작된 1997-98년까지의 기간을 본격적인 금융위기 직전 단계인 금융 불안(financial distress) 기간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러한 금융위기 발생 시점에 대한 의견 차이는 금융위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발생 시점이 언제인가에 따라 금융위기의 지속 기간이 6년이나 차이가 난다.

세 번째 수수께끼는 금융위기가 2004년 말에 끝났다면 일본의 금융위기 지속기간이 짧게는 7년, 길게는 14년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금융위기 해결에 오랜 기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는 약 4년 정도 지속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금융위기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등 선진국의 위기 기간에 비해서 월등히 길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국가별 금융위기를 비교 분석한 마이클 허치슨(Michael Hutchison)과 캐서린 맥딜(Kathleen McDill)는 일본의 금융위기가 예금보험공사가 소형 은행들의 도산에 개입하기 시작한 1992년 경으로 보고 다른 국가들의 경우 금융위기 기간은 평균 3.9년이고 불경기 기간은 평균 3.3년으로 나타났지만 일본의 경우는 1998년 12월말 현재 각각 7년과 6년에 이르러 일본의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불경기의 기간이 매우 길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라고 주장했다.

시라카와는 일본의 금융위기 해결에 오랜 기간이 소요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당시 회계제도가 부실 대출을 인식하는데 오랜 기간이 걸리게 한 점을 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계 은행들에서 부실 문제가 발생한 자산은 비시장성 자산으로 분류되어 시가평가방식이 적용되지 않은 대출이었기 때문에 손실을 인식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당시 정책당국과 국민들이 부실 대출의 축적이 거시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네거티브 파드백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세 번째로는 일본의 경우 미국의 금융위기와는 달리 리먼브러더스의 붕괴와 같이 일반 국민과 정치권의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저항감을 극복할 수 있는 극적인 변환점 역할을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일본의 정책당국이 극심한 위기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노력한 점이 일반 국민들과 정치권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공적 자금의 조기 투입을 통한 금융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라카와의 설명은 1990년대초부터 1997년까지의 기간 중에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공적 자금 투입에 의한 본격적인 금융구조조정이 시작된 1997년부터 금융위기를 해결하는데 왜 7년이나 소요되었는지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하버드 대학의 벤저민 프리드먼(Benjamin Friedman)은 일본 경제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은행위기에 대해 정책당국이 수년간 방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국가의 경제가 이러한 중대한 문제로 거의 마비되는 상황을 오랜 기간 아무런 조치없이 방치한 이유는 심각한 내부 갈등구조 때문인 경우가 통상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본의 이러한 갈등구조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의아하다고 주장했다.

네 번째 수수께끼는 버블 붕괴 후 일본의 은행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신용공급이 급감한 이유에 관한 것이다. 히토츠바시 대학의 요시노리 시미즈 등은 주가 폭락에 따른 보유 주식 하락으로 인한 자본금 감소에 따라 은행들이 BIS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출을 축소하고 추가 부실대출 발생 우려에 따라 신규 대출을 기피하는 소위 신용경색(credit crunch)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무라 연구소의 리처드 쿠 등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기업과 가계 등 주요 민간 경제주체들은 자산가격 폭락으로 자산보다 부채가 월등히 많아진 대차대조표 상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 차입금 상환 또는 최소화를 통해 부채를 적극적으로 줄이는‘디레버리지(deleverage)’에 전념했기 때문에 차입수요가 급감한 차입자 측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출의 공급자인 은행의 대출 기피는 은행에 대한 자본금 투입과 유동성 공급으로 해결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대출의 수요자인 차입자가 차입을 기피하는 문제는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 리처드 쿠는 자산가격의 폭락으로 민간 경제주체들이 훼손된 대차대조표를 개선하기 위해 디레버리징에 몰입하는 소위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방법은 금융권의 막대한 잉여 자금을 정부가 차입해 재정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신용 급감의 이유가 무엇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신용 급감이 대출자의 문제인지 차입자의 문제인지에 따라 대응정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티브 피드백이 발생했고 이에 대해 정책당국이 신속하고 과단성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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