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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슈링크플레이션, 기업만 탓할 수 없다

손원태 기자

tellme@fntimes.com

기사입력 : 2023-12-04 00:00

​▲ 손원태 기자

​▲ 손원태 기자

[한국금융신문 손원태 기자] 지금 서방은 전쟁이 한창이다. 케케묵은 이념적,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쓰나미가 되어 식량을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교착 상태에 접어들었고, 이스라엘의 하마스 소탕 작전은 모두의 섬멸을 부르고 있다. 멀쩡한 곡물 지대가 불타고, 전쟁과 상관이 없는 해협이 가로막혔다. 물류·운송에 쓰이는 에너지도 전리품이 되면서 확보한 식량도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10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0.6으로 집계됐다. 이 지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식량 평균 가격을 100으로 환산해 비교한 수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지난해 3월 159.7로 정점을 찍었다.

기업들은 현재 곡물 수입국을 다변화하거나 판관비를 줄이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곡물도 기존 3~4개월 단위에서 6~10개월 단위로 대량 구매한다. 원가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데도 소비자물가지수는 내려갈 줄을 모른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월(3.7%)보다 0.1% 또 올랐다.

정부는 연말 소비자물가 목표치를 2%대로 잡았는데, 현재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공식품, 농축산물, 외식 28개 품목에 담당관을 지정해 물가 잡기도 시작됐다.

식품 기업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하다.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기업이 대부분이라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출혈을 감수할 수만도 없다. 한 기업에 딸린 수천, 수만 명 직원들도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곡물 가격이 일부 떨어져도 실제 시장에 반영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떻게 물류비나 인건비, 관리비 등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나”와 같은 읍소를 한다.

실제 올해 3분기 주요 식품기업들 영업이익을 보면 CJ제일제당(-0.3%), SPC삼립(-9.1%), CJ프레시웨이(-14.2%), 하이트진로(-23.7%) 등이 역성장을 기록했다.

해태, 빙그레, 삼양식품 등이 큰 성장을 했다지만, 지난해 바닥을 찍었던 것에 따른 기저효과라는 반응이다. 이미 올 상반기에도 라면, 빵, 스낵, 통조림, 생수 등 전 분야에서 가격을 일부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3분기 실적에서 드러나듯 고통은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식품기업 곳곳에서 희망퇴직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제품값은 유지하고 용량을 줄이는 것)’과 같은 궁여지책마저 내놓고 있다.

정부는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이러한 꼼수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73개 품목을 조사해 곧 발표하겠다고 한다. 관련 신고센터도 설치해 제보도 받겠다고 한다.

기업들은 올 한 해 내내 정부 소집에 응해왔다.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당부에 울며 겨자를 삼켰다. 마땅한 퇴로도 없이 연이은 압박에 기업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슈링크플레이션 딱지마저 부착되면 그야말로 ‘악덕 기업’으로 찍히게 된다.

물론 원가 인상을 버틸 수 있음에도 용량을 줄인 기업이 나올 수 있다. 나아가 기업이 자발적으로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사전 공지를 했으면 상황이 나아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슈링크플레이션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가격 정책 중 하나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탐욕의 덩어리’로 낙인찍힐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근로자들의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촉발할 수 있다. 여기에 인위적 가격 통제가 더 큰 인플레이션을 부른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사례를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52개 생필품을 지금처럼 특별 관리 품목으로 지정해 통제에 나섰지만, 오히려 다른 품목보다 물가 상승률을 부추긴 바 있다. 정부는 기업을 무조건 압박하기보다 경영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장기적 대안 마련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식품기업 영업이익률은 여느 제조기업과 다르게 한자릿수에 그친다. 어느 식품기업 관계자의 한숨이 유난히 씁쓸하다. “5ml, 5g 소량 줄이는 것을 그렇게 탐욕스럽게 봐야 합니까. 우리도 대내외 경제 상황에 맞춰 대비해야 하는데 손해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손원태 기자 tellme@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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