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에게 온정적으로 접근한 후 이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요즘 한국 금융이 딱 이렇다. 무책임한 선심성 공약과 정책으로 저신용자를 멍들게 하고 있다.
오는 3월 대선을 앞두고 금융권에서 다시 법정 최고 금리 인하 방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법정 최고금리를 경제성장률의 5배 이내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하향 조정한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다.
실제 이 후보는 자신의 SNS에 “법정 최고금리는 11.3~15%가 적당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후보의 이런 공약에 대한 전조증상은 진작에 있었다. 공약 발표 전부터 ‘금융 포퓰리즘’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마다 주장하는 최고 이자율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현행 20%인 최고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모양새였다.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 일부개정 법률안’ 등 여당의 법정 최고금리 인하 관련 법안이 10건 이상 제출돼 있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4인은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20%에서 15%로 낮추자는 내용의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최고금리 2배를 초과해 받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법정형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같은 당 민병덕 의원 등 14인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이미 발의했다. 민 의원은 개정안 발의 이유에 대해 “금리가 낮은 수준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경제 상황에 비춰 봤을 때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의 경제활동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업자와 여신금융기관은 이 법의 최고이자율 보다도 높은 수준의 금리를 적용해 서민계층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은 대부업법의 최고 이자율을 연 13% 수준으로 낮추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 뉴욕주와 텍사스주의 평균 상한이율이 연 15.4%인 점과 독일의 최고금리가 연 4.17%∼8.17%인 점 등을 내세웠다. 또한 업무원가와 조달원가 등 적정대출금리 산정에 포함돼 있는 비용혁신을 통해 최고금리를 연 11.3%∼15%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경기연구원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문제는 최고금리 인하가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대부업계가 붕괴될 수 있고 7~10등급의 저신용자는 결국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업계에선 최고금리 인하는 저신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움직임이라고 지적했다. 법정 최고금리를 일괄적으로 낮춘다면 금융사들이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7월 최고금리 인하 당시 약 3만9000명이 불법사금융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지난 2018년 2월 27.9%였던 최고금리가 24%로 인하됐을 당시, 금융당국은 고금리 대출자의 약 18.7%에 해당하는 26만1000명의 금융 이용이 축소됐고 많게는 5만명이 불법 사금융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산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저신용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대출 절벽’에 위태롭게 서있는 이들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신혜주 기자 hjs0509@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