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위로 잔뜩 달아오른 붉은 기운 품은 노란색 숯이 미끄러진다. 불티를 날리며 미끄러지는 모습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예술가의 숙명과 흡사하다. 거친 캔버스에 밑칠을 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 화가의 마음이지만 지금을 극복하지 못하면 무엇도 얻지 못하게 되는 예술가의 열정이다. 열정은 열기이며, 열기는 곧 예술가의 정열로서 세상을 녹인다.

라상덕. 불_머금다. 27×53㎝. oil on canvas. 2021
불씨를 살리기 위한 입 바람이나 부채질이 없어도 이미 불은 시작되었다. 불씨를 지켜야만 했던 먼 옛날 조상의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다. 불씨를 지키려는 며느리의 순혈주의는 라상덕의 그림에서는 불의 열기 혹은 불의 뜨거움에 대한 불의 본래적 의미를 강조한다. 불이 살아오는 것과 불이 사그라지는 것과의 관계에서 불씨를 당기는 쪽에 힘을 싣는다.
수많은 숯 모임에 불 알(?)이 하나 있다. 떨어진 것인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옮겨다 놓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빛에 반사되는 것이 아니라 열기에 주변이 물들기 시작한다. 지금 시작하는 것이지만 곧 모든 숯에 불이 옮겨질 것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여기에 라상덕의 열기가 있다.
라상덕의 숯은 추억을 머금고 있다. 어릴 적 한참 남은 불씨에 오줌을 싸도 여전히 불기가 남아있는 그것과 닮아간다. 남은 잔량에 최선을 다해 끄려는 행위는 내일을 기약하는 아이들의 약속이며, 열기가 풍부하다는 역설적 관련성을 찾는다.
오늘을 극복하고 내일 기약하는 새 생명을 품고 있는 전시는 7월 4일부터 7월 22일까지 삼청동 정수아트센터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창선 기자 csle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