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국회와 한은에 따르면 기재위 소속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지급결제 관련 한은의 역할·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한은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급결제 관련 한은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은 지난해 11월 양경숙 의원에 이어 두 번째다. 개정안은 지급결제와 관련한 한은법 제 81조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은 우선 “한은은 지급결제제도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지급결제 운영, 관리, 감시, 국내외 협력, 발전 촉진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며 지급결제 업무가 한은의 고유권한임을 명문화했다. 한은이 금융결제원 등 민간의 자금결제제도 운영기관 및 참가기관을 지정·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이와 함께 한은에 위험관리기준 제정권, 점검 및 시정 요구권 등 정책수단도 부여했다. 또 지급결제 환경 변화가 지급결제제도 전반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한은에 현장조사권과 제재요구권 등 정책수단을 줬다. 최근 디지털 지급수단 확대와 지급서비스 참여자 다양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대신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한은의 책임도 강화했다. 대국민 보고 의무를 제81조 제2항에 신설하고, 지급결제제도 운영과 감시 등에 대한 한은의 업무 수행 결과를 매년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정무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과 달리 빅테크의 지급결제 관리 권한에 대해 따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은의 지급결제 권한을 명확히 하면서 사실상 금융위가 지급결제를 감독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전금법 개정안 내용은 지급결제 부문에서 한은법과도 충돌되는 상황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지급결제제도의 안정적 운영과 지속적 발전은 중앙은행의 본질적 책무이고 이를 위해 대부분 국가에서 중앙은행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지급결제청산의 제도화는 전금법이 아닌 한은법에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은행의 고유 기능인 지급결제제도의 운영이 금융감독 당국에 통제되는 것은 원칙에도 맞지도 않고 세계적으로 유례도 없다”며 “디지털 지급수단 확대와 핀테크·빅테크 성장 등으로 지급의 편리성이 제고된 반면 결제시스템의 불안정 가능성 또한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한은법 개정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와 한은의 갈등은 앞서 지난해 11월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장이 전금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시작됐다. 전금법 개정안에는 핀테크·빅테크의 외부 청산을 의무화하고 이를 금융위가 허가·감독하는 내용이 담겼다. 청산은 어음·수표·신용카드·계좌이체 등 현금 이외의 지급수단으로 지급이 이뤄졌을 때 금융기관들이 서로 주고받을 금액을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빅테크와 핀테크 내부에서 이뤄졌던 거래를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의 시스템을 통해 처리하도록 하고 금융결제원을 전자지급거래 청산기관으로 지정해 감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지급결제제도 운영·관리라는 중앙은행의 고유업무를 금융위가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양 기관의 갈등은 최근 일부 완화되는 듯했으나 입법 대리전을 통해 다시 고조되는 양상이다. 이형주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지난달 28일 '금융위 업무계획 중 디지털금융혁신 관련 사항 브리핑'에서 “한은과 다양한 채널로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며 “이제 양쪽 기관이 영역 다툼이 아니고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스템 안정이라는 차원에서 다양한 대안을 놓고 검토를 하자는 방향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전금법 개정안은 이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 올라갈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전금법 개정안이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나왔다.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2021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자지급 거래 관련 개인정보가 관련 법들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무제한 집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이 빅테크의 전자지급거래정보를 금융결제원에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면서 개인정보보호 3법 적용을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청산기관에 과도하게 개인정보가 쏠리게 되고 이 데이터베이스를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정보 남용 우려도 크다”며 “빅브라더(사회 감시·통제 권력) 논란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결제원에 수집된 거래정보가 영리 목적의 외부 기업에 제공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양 교수는 “개정안에 따라 금융결제원 등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이 빅테크에서 이뤄지는 내·외부 전자지급거래에 관한 청산을 담당하면서 막대한 개인정보가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모이게 된다”며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이 취득한 엄청난 데이터에 영리 목적으로 손을 댈 수 있게 되는 순간 개인정보 주체의 자기결정권 지원이나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 위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