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재정준칙을 마련해서 나라 살림을 보다 실효성 있고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게 가운데 정부는 당초 예정보다 늦게 재정준칙 안을 제시했다.
장기적으로 국가채무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국가 운영을 위해 재정준칙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은 그간 꽤 공감을 얻고 있었다.
다만 여전히 여당이나 여당 성향의 정당 일부에서 '재정준칙에 얽매이기 보다는 기본소득 등 보다 과감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 달 하순 국회 재정위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왜 이런 시기에 재정준칙을 논쟁하고 얽매이느냐. OECD도 코로나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이 효과적이라 평가했다"면서 재정준칙을 비판했다.
그는 "재정준칙은 재정운용의 경직성을 강화시켜서 경기 활성화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단 정부도 보다 정교한 빚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
■ 빚은 얼마나 늘어나나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7.7%였다. 이 비율은 올해 4번의 추경을 거치면서 43.9%로 무려 6.1%p나 확대될 예정이다.
당초 40% 안쪽(본예산 기준 39.8%)으로 관리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40%대 중반 근처로 빚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것이다.
GDP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작년 2.8%에서 올해 6.1%로 대폭 확대된다.
장기적으로 국가 빚 급증에 대한 우려는 큰 게 사실이다. 나라의 미래 빚을 감당할 젊은층, 유소년층의 비중을 해가 갈수록 감소하고 노년층의 비중은 해가 갈수록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최근엔 한국경제의 성장세가 빠른 속도로 둔화되면서 세금을 많이 걷기 힘든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러면 빚을 갚기 어려워지고 나라 빚은 예상보다 더 쌓일 수 있다.
정부 역시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정부는 국가재정에 대한 전망을 대폭 수정해야 했다.
정부 중기재정전망의 '2019~2023년 계획'을 보면 국가채무는 작년 37.7%에서 전망 마지막 해인 2023년엔 46.4%로 높아질 것이란 예상이 담겨 있다.
하지만 '2020~2024년 계획'에서 이 전망이 대폭 수정됐다. 2023년 국가채무가 40%대 중반이 아닌 50%대 중반으로 바뀌었다. 즉 2023년엔 55.0%까지 늘어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국가채무는 2024년 58.6%까지 늘어나 6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재인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가운데 그 돈들이 '성장률' 향상으로 이어져 세금을 걷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나라 살림살이는 꽤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 오래된 재정준칙 요구...정부 계산식 내놓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다른 나라에서 재정준칙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꽤 있었다.
준칙에 얽매이게 되면 경제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상황을 맞은 만큼 주요국들 사이에서 재정준칙 적용을 유예하거나 면제하려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미국은 코로나19 관련 지출을 '긴급요구사항'으로 지정해 적용을 면제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경기가 좋은 때는 여력을 비축해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고, 경기가 어려울 때는 국가가 경기부양 역할을 상당부분 떠맡을 수 있는 구조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간 재정준칙 도입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를 도입하지 않았던 국가다. 특히 코로나 위기가 있기 전부터 빚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 우려가 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5일 재정준칙 관련 두 가지 공식을 제시했다. 국가채무비율 60%, 통합재정수지 -3%를 제시했다. 이 한도를 초과할 경우 재정건전화 대책 마련을 의무화한다는 내용이다.
한도 계산식은 '(국가채무비율/60%)×(통합재정수지비율/-3%)≤1'을 제시했다.
정부는 통상 부채 관리시 중시하는 '관리재정수지'를 쓰지 않고 '통합재정수지'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국제 기준에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재정운용지표로 활용해온 관리재정수지는 대규모 사회보장성기금 흑자가 발생하는 국내 특수성을 고려해 만든 지표다. 이 지표에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성 기금을 더하면 통합재정이 된다.
상당부분 국가빚이 늘어날 수 밖는 현실을 감안해 한도를 적용한 것으로 보였다. 또 위기시엔 준칙 적용을 면제하고 경기둔화시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완화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 재정준칙, 문재인 정부는 일단 면제?
일단 정부의 안과 공식은 2025년부터 적용된다. 코로나 사태 등을 감안해 상당한 재정 자율권을 부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즉 현실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이 '공식'에 의해 제약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 셈이다.
중기재정계획 상 국가채무는 2024년 58.6%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 시점부터는 꽤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정부의 확대재정을 감안할 때 정부 전망보다 국가채무가 더 늘 것이란 관점도 많다.
이런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한국경제의 성장세가 정부의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점, 문재인 정부 들어 본예산을 편성할 때도 10% 가까이 지출을 늘려잡는 행태 등을 감안할 때 쉽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아울러 재정준칙의 산식이 '안이하다'면서 문제를 삼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나라살림이 정치권에 크게 휘둘리는 현재 상황에서 이 식마저 제대로 지키겠느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가 채무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여당 국회의원들 상당수는 빚에 대한 경계감이 없다"면서 "기본소득도 계속 회자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번에 내놓은 재정준칙도 뭔가 결기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 걱정스러운 정부 재정준칙...뉴딜 등 효과 미진하면 한국경제에 큰 짐 될 것
올해부터 국채발행 '패러다임 전이'가 일어난 만큼 채권시장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자산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올해 코로나로 국채 발행이 급증했지만, 내년엔 본예산의 국채발행이 올해와 맞 먹는다"면서 "채권시장의 많은 사람들이 물량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과감하게 빚을 내는 만큼 국가경제가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정책 효과'가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등이 성공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하는 상황이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애널리스트들도 입장에 따라 뉴딜를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면서 "일단 미래선도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만큼 긍정적인 요인도 적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재정준칙에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헛돈을 쓰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채권시장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정부의 재정준칙은 안일하다"면서 "시장도 이미 과도하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인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금융시장은 재정적자가 급격히 확대되는 점을 위험신호라고 인식한다는 주장이다.
이 딜러는 "재정 확대가 생산적인 분야에 쓰이면 나은데, 지금은 그냥 복지예산으로 퍼주기를 하고 있다. 마통 늘려서 창업을 하는 게 아니라 (돈 없는데) 유흥비로 탕진하는 꼴"이라며 "사용처도 큰 문제이고, 지금부터 늘어나는 부채는 적자국채 위주여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감안할 때 정부의 재정준칙은 안일하다. 정부 예상대로 성장하기 어렵다"면서 "급격한 재정확대와 저금리의 저주가 머지 않은 시점에 한국경제를 덮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