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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거인' 故 신격호 명예회장..."정부와 국민에게 폐 끼치지 말아야"

구혜린 기자

hrgu@fntimes.com

기사입력 : 2020-01-19 19:00

향년 99세로 별세...78년 경영인생 '말말말'

롯데제과 공장을 순시 중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연도 미상. /사진제공=롯데지주

롯데제과 공장을 순시 중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연도 미상. /사진제공=롯데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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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구혜린 기자] 신격호닫기신격호기사 모아보기 명예회장이 19일 4시 29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신 명예회장은 1967년 롯데제과를 창립해 모국투자를 시작했다. 호텔과 백화점을 설립, 국내 유통과 관광 산업의 선진화를 이끌며 건설, 석유화학 등 국가 기간산업에도 진출해 사업을 다각화했다.

그는 과감한 투자와 진취적인 도전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 롯데를 유통과 석유화학, 식품, 관광, 건설·제조, 금융 등을 아우르는 국내 재계 5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아래는 그의 살아생전 경영어록.

"거화취실(去華就實)"

롯데그룹 창업주 신 명예회장의 집무실에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도 혼자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 회장들과 달리 사무실이 아주 소박했다. 크기나 장식이 중소기업 사장 집무실 정도였다. 대기업 회장으로서 색다른 모습인데, 이는 워낙 화려한 것을 싫어하는 신 명예회장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고객과의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한다"

신 명예회장이 일본에 건너가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했을 때의 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경우에도 우유 배달시간이 워낙 정확해 유명했다고 한다. 소문이 나다보니 주문이 늘어나 배달시간을 못 맞추게 되자 신 명예회장은 자기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고 한다. 신 명예회장의 이러한 모습에 반한 일본인이 선뜻 사업 자금을 내주었다고 하니, 오늘날 한국과 일본에서 굴지의 기업이 되어있는 롯데의 첫 자산은 바로 신 명예회장의 신용과 성실함이었던 것.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신 명예회장은 평소 기업이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를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며, 자신의 책임인 만큼 기업을 신중하게 경영하고, 최선을 다해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임감 없는 무모한 투자는 종업원들이나 협력업체에게 피해를 줄뿐 아니라 국가적인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롯데의 신중한 투자 방침은 신 명예회장의 이러한 책임경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롯데호텔 건립 회의를 주재 중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연도 미상. /사진제공=롯데지주

롯데호텔 건립 회의를 주재 중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연도 미상. /사진제공=롯데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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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으로부터, 동료로부터, 협력회사로부터 직접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현장으로 달려가기를"

한국과 일본을 한 달씩 오가며 왕성한 경영 활동을 펼친 신 명예회장은 한국에 오면, 롯데백화점이나 롯데마트 혹은 롯데호텔의 현장에 불쑥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매장을 둘러보면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친절한지, 청소는 잘됐는지, 안전 점검은 잘하고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그는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현장경영을 몸소 실천했다.

"몸에서 열이 나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기업에 있어서 차입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신 명예회장의 무차입 경영 원칙은 IMF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으면서 한 층 더 빛을 발했다. 한국의 기업들은 90년대 후반 IMF 사태를 겪으면서 과다한 차입 경영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롯데는 신 명예회장의 무차입 경영 원칙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이 사태를 극복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룹의 역량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사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신 명예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에게 자주 강조했던 이 말은 롯데그룹의 경영특징을 잘 대변해 준다. 제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애정은 신 명예회장에게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이라는 애칭을 붙게 할 정도였다.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위주로 방만하게 경영하면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되므로 신규사업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고, 핵심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진행한다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다.

2011년 6월 5일 롯데월드타워 건설현장을 순방중인 신격호 명예회장. /사진제공=롯데지주

2011년 6월 5일 롯데월드타워 건설현장을 순방중인 신격호 명예회장. /사진제공=롯데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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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래를 깊이 생각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신 명예회장은 관광 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 '관광보국(觀光報國)'의 신념으로 투자 회수율이 낮으며,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관광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관광을 통해 국력을 키우고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내 최초의 독자적 브랜드의 호텔을 건설하고 세계 최대의 실내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를 세계 최대의 관광 명물로 만드는 것이 내 일생의 소원"

외화가득률이 90%가 넘는 관광산업은 21세기의 전략산업으로 육성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신 명예회장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갈수록 준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신 명예회장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 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어 새로운 한국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롯데월드타워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인간의 능력이란 그렇게 극단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정열과 의욕을 가지면 상황도 유리해지고 올바른 해결책도 나오기 마련이다."

롯데라는 사명(社名)은, 독일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인 샤롯데의 이름에서 따왔다. 샤롯데는 만인에게 사랑 받는 사랑과 정열의 상징이다. 고객에게 사랑받는 정열의 기업을 만들겠다는 신 명예회장의 생각이 엿보인다. 신 명예회장은 경영에 있어서도 경영자의 정열과 종업원 모두의 정열이 하나의 총체로서 발현될 때 그 회사는 보다 큰 발전이 기약된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신 명예회장은 항상 직원들에게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 줄 것을 당부했다.

1991년 5월 4일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 /사진제공=롯데지주

1991년 5월 4일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 /사진제공=롯데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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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롯데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 글로벌 사업 영역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의 글로벌 사업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롯데'라는 브랜드가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출한 어느 국가, 어느 도시에서도 '롯데'는 참신하다는 이미지로 각인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롯데 브랜드가 믿음을 주고, 창조적이고, 즐거움을 주는 이미지를 구축해 나갈 수 있도록 브랜드 경영에 힘써 달라고 늘 당부했다.

"CEO는 회사가 잘 나갈 때일수록 못 나갈 때를 대비해야 한다. 반대로 실적이 악화될 때는 훗날 좋아질 때를 염두에 두고 투자해야 한다."

신 명예회장은 임직원들에게 강한 신뢰로 일을 맡기는 편이었다. 그러나 칭찬은 드물었다. 이는 칭찬으로 임원들이 안일한 마음을 갖게 되어 방만한 경영을 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늘 스스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경기가 어려울 때에는 좋은 기회를 탐색하고 실적이 좋을 때는 어려울 때에 대비해 준비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상권은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제품과 좋은 서비스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어야 한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부지는 황량한 모래벌판과 물웅덩이, 비가 오면 한강이 범람할까 걱정하는 유수지였다. 주변에는 참외밭밖에 없는 터라 임직원들은 배후 상권이 없어서 장사가 안될까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러한 임직원들에게 신 명예회장은 "상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상품과 수준 있는 서비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며 "롯데백화점 잠실점이 2년 안에 명동만큼 번화한 곳이 될 것"이라 확언했다. 이는 곧 현실이 됐다.

구혜린 기자 hrgu@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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