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신청
  • My스크랩
  • 지면신문
FNTIMES 대한민국 최고 금융 경제지
ad

[기획] 일제 때 ‘조선은행’너머 ‘한국은행’ 바로 서기

김효원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15-06-15 00:24 최종수정 : 2015-06-15 02:09

화폐발권·민간 예대업무·해외투자 등으로 전비 조달
“해방 후 중앙은행 구상안 내놨던 노력 잊지 말아야”

[기획] 일제 때 ‘조선은행’너머 ‘한국은행’ 바로 서기이미지 확대보기
해방 이후 대한민국 중앙은행이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예대업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한국은행을 찾아가 예금 통장 개설이나 신용대출 받는 일을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한제국 시기 설립된 국내 최초의 중앙은행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모델을 따랐기 때문에 상업은행 역할도 했다. 중앙은행이긴 했지만 식민지 시대 일본의 전쟁비용 조달이 주요 역할이었던 조선은행부터 해방 후 한국은행법이 제정돼 한국은행이 설립되기까지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 일본 개입으로 좌절된 화폐조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조명근 연구교수는 12일 한은이 주최하는 무료 경제 강연인 ‘한은금요강좌’에서 ‘한국은행 설립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강의했다. 마침 이날은 한은 창립 65주년 기념일이었다. 전신인 조선은행과 한국은행법이 공포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피고 대한민국 중앙은행 설립의 의의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자리기도 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문호를 개방한 이후 대한제국은 중앙은행 설립과 화폐조례 제정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일본에 의해 무산됐다. 최초의 중앙은행 제도인 대한제국특립제일은행과 발권제도인 화폐조례가 1901년 마련됐고 당시 세계적 추세였던 금본위제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서양 열강에 광산을 비롯한 각종 이권이 넘어갔기 때문에 금이 부족했다.

조 교수는 “당시 프랑스 차관으로 금을 조달하려했고 성사직전까지 갔지만 일본의 개입으로 좌절됐다”며 “1903년에 만든 중앙은행조례와 금본위제 기반의 태환금권조례는 다음해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화폐정리사업으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1909년 대한제국의 한국은행이 설립됐지만 곧 이은 경술국치로 2년 만에 행명이 조선은행으로 바뀌었다. 당시 조선은행권은 금화와 지금은(地金銀), 일본은행권을 기반으로 발행됐으며 발행한도도 일본의 인가를 받아야 했다.

◇ 중앙은행인 듯 중앙은행 아닌

조 교수는 “조선은행 이사를 역임했던 일본인은 조선은행을 ‘만물상’이라 표현했다”며 “조선은행은 실질적 중앙은행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기본 기능인 발권업무 외에도 상업은행과 외환은행, 해외투자은행 역할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당시 조선은행은 민간인이 출자해 세운 주식회사였기 때문에 영리목적이 중요한 사명이었다”고 말했다. 찍어낸 돈으로 한국과 일본 등에서 민간에 대출하고 중국 지역에 막대한 투자 사업까지 벌인 것이다. 조선은행의 지점은 중국(40), 만주(26), 조선(24), 일본(9) 등 109개였는데 중국과 만주가 전체의 60%를 넘는다. 그마저도 투자금을 회수 못해 1920년대부터는 일본정부에서 돈을 빌려 연명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조선은행은 조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전범기관’이 됐다. 중국으로 전비(戰費) 조달은 물론 전쟁이 유발하는 인플레이션이 중국과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범퍼’였던 것이다. 조 교수는 “조선은행을 조선의 중앙은행이라고 하지만 비(非)조선적 비중앙은행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 해방 후에도 상업은행 기능 유지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이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도 변해야했다. 민간 상업은행과의 경쟁 및 영리를 추구하는 것에서 공공기관으로 진화해야 했던 것이다.

1964년 설립된 영국의 영란은행을 중앙은행의 효시로 삼는데 당시 영란은행은 전비 조달을 위해 세워진 상업은행이었다. 일반 시중은행들도 화폐발행이 가능했는데 경쟁이 심화되면서 문제가 생기자 영란은행에 발권 독점권을 주고 비경쟁, 비영리기관으로 만들었다. 조 교수는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중앙은행을 새롭게 만드는 국가들은 처음부터 민간기관이 아닌 공공기관으로 출발하게 했다”며 “정부 독점 하에 두고 민간 상업은행과의 경쟁을 막았다”고 말했다.

조선은행 역시 설립 때부터 상업은행 기능이 있었고 해방 이후 한국은행법이 제정될 때까지 이를 유지했다. 조 교수는 한국은행법 제정 전 있었던 해방 후 중앙은행 구상안 세 가지를 소개했다. 조선은행이 내놓은 두 가지 안과 재무부안이 있다.

조선은행은 1947년 4월 ‘국립조선중앙준비은행’을 명칭으로 구상안을 내놨다. ‘반(半)민유 준(準)국영’의 형태로 정부와 민간이 각각 2억, 금융기관이 1억을 출자하는 형태다. 중앙은행 총재를 비롯해 산업계 대표자 15인으로 구성된 이사회도 있다.

그러나 조 교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영란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모방해 발권부와 은행부를 합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선은행 시절 영리추구 목적을 그대로 두면서 여전히 식민지 시대 은행이라는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는 것이다.

1948년 9월 두 번째로 내놓은 ‘한국은행’ 안은 정부와 금융기관이 자본을 출자해 공유국영의 형태였으며 15인의 통화심의회를 두었다.

상당히 진전된 모습을 보였지만 역시 문제점은 존재했다. 통화심의회의 업무와 권한이 심사, 자문, 건의에 제한됐고 결정은 정부 몫이라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조 교수는 “해방 후 경제가 워낙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빠른 경제 부흥을 위해선 정부 정책결정권한의 우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시대적 요청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블룸필드 건의안 채택

마지막으로 재무부가 1949년 2월 3일 연합신문에 발표했던 ‘한국중앙은행’ 안이 있다. 정부에 대한 무담보 무제한 대출이 특징적이다. 또한 금리 결정은 물론, 은행권 발행한도와 인사권 및 감독권이 전부 재무부장관의 권한이다. 금리결정권이 재무부장관에 있기 때문에 금융통화위원회 같은 별도 의결기구도 없다. 자본금은 10억원을 정부와 금융기관이 절반씩 출자한다.

조 교수는 “중앙은행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된 형태로 중앙은행을 정부 재정자금 공급기구로 제도화한 모델”이라 평가하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중앙은행을 전비조달 기관으로 만든 일본의 일본은행법과 거의 흡사하다”고 평가했다.

조선은행과 재무부가 구상한 중앙은행 모델은 모두 채택되지 않았다. 1949년 7월 당시 재무부 장관인 김도연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자문을 요청한 것이다. 조 교수는 “김도연 장관은 일본 게이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콜롬비아대와 아메리칸대에서 석·박사를 받은 인물”이라며 “그가 미국에 자문을 요청한 것은 자신이 재무부 장관이면서도 재무부 구상안을 불신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달 뒤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의 국제수지 과장인 블룸필드(Arthur I. Bloomfield)와 감사국 차장인 젠센(John P. Jensen)이 방한했다. 각각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한 이들로 1950년 2월 중앙은행제도 개편 건의안을 작성했다.

블룸필드는 먼저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젠센에게 확실한 감독을 당부했는데 그의 우려대로 재무부 관리들이 영문 건의안 번역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조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블룸필드가 젠센에게 보냈던 강력한 항의 서한도 남아있다고 한다.

블룸필드 건의안은 중앙은행의 상업은행 업무를 금지해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고 금융통화위원회를 설치해 통화신용 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했다. 또한 외환관리 기능을 추가했다. 자본금 15억원은 전액 정부가 출자한다.

◇ “한은법 이전 움직임도 살펴야”

조 교수는 “정부에 소속되지 않으면서도 독자적 정책 결정권을 갖는 금통위는 당시 상황 상 굉장히 독특한 시스템이었고 금융독재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로 반발이 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안 표결 당시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선거운동을 위해 지역구로 내려갔고 표결 당시 참석한 국회의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70% 이상의 찬성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1950년 5월 5일, 한국은행법이 공포됐고 6월 12일 지금의 한국은행이 설립됐다. 조 교수는 이날 강의를 마무리하며 “블룸필드가 작성한 현재의 한국은행법에만 관심을 갖는데 그 이전에도 많이 부족하지만 내부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과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효원 기자 hyowon123@fntimes.com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FNTIMES -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기자의 기사 더보기 전체보기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전체 다른 기사

1 ‘리니지’·‘메이플스토리’ 개발자, 멘토로 만난다…‘오픈 AI 게임 빌더스 서울’ 라인업 공개 오픈AI(OpenAI)가 오는 31일 서울에서 개최하는 ‘오픈AI 게임 빌더스 서울(OpenAI Game Builders Seoul)’에 참여할 한국 대표 게임 개발자 12인의 라인업을 공개했다.1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코덱스를 활용한 게임 개발을 주제로 개최하는 ‘오픈AI 게임 빌더스 서울’엔 국내 대표 게임 개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류할 예정이다.행사에서는 한국 온라인게임과 MMORPG 시작부터 모바일게임 대중화와 글로벌 확산, 인디게임의 성장 등 각 시대와 장르를 이끌어 온 개발자들이 멘토로 참여, 수십 년간 축적해 온 경험을 다음 세대와 나누고 코덱스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게임 제작 방식을 모색한다.이번에 공개된 12인 라인업에는 송재경 전 엑 2 대한건설협회, 정부 '8·13 주택공급 대책' 환영…"민간 공급 여건 개선 기대" 대한건설협회(회장 한승구)가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과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규제 유예와 보증 확대 등이 민간 주택사업의 자금조달 부담을 낮추고 공급 여건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대한건설협회는 14일 입장문을 통해 "PF 자기자본비율 상향 유예와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 주택사업자 주택담보대출 예외사유 확대 등 건설업계가 건의해 온 내용이 이번 대책에 다수 반영됐다"고 밝혔다.◇ PF 자기자본비율 상향 2029년으로 유예…보증 공급 확대정부는 8·13 대책을 통해 주거사업장의 PF 자기자본비율 상향 시행 시기를 2027 3 '국방·로봇 실적 견인' 한컴라이프케어, 2Q 영업익 76억...전년比 168%↑ 한컴그룹 계열사 국방·안전 장비 전문기업 한컴라이프케어가 2분기 지상레이저표적지시기(GLTD) 등 국방 사업 매출 확대에 힘입어 실적 성장을 달성하며 본격적인 수익성 개선 국면에 들어섰다. 하반기에는 차세대 방독면 납품과 함께 무인소방로봇을 신사업으로 추진하며 실적 모멘텀을 이어갈 전망이다.한컴라이프케어는 2026년 2분기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3%, 168% 급증한 551억 원, 76억 원을 기록했다고 14일 밝혔다. 상반기 누적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81% 증가한 610억 원, 영업이익 38억원을 기록하며 견조한 성장 흐름을 보였다.국방 부문에서는 GLTD 1·2차 납품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며 2분기 매출
ad
ad
ad

한국금융 포럼 사이버관

더보기

FT카드뉴스

더보기
[그래픽 뉴스] ISA 대개편! 나에게 유리한 계좌는?
[그래픽 뉴스] 미국 증시 새로운 키워드 'MANGOS'
환전·로또·육아휴직까지 하반기부터 달라지는 제도 TOP11
[그래픽 뉴스] 은퇴후 30년 부모님 세대의 생존전략
[그래픽 뉴스] 퇴근 후 주차했는데 수익 발생? V2G의 정체

FT도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