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상조와 보험의 본질

조선중기에 시행된 향약(鄕約)에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이라는 자치규약이 있다. 상부상조(相扶相助)를 통해 개인의 어려움을 공동으로 헤쳐 나가는 우리 민족의 지혜가 담긴 덕목이다. 우리 조상들은 다수의 사람이 모여 개인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보험의 효용을 이해하고 이를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필수 덕목으로 삼은 것이다.

최근 보험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97.5%가 생명보험 또는 손해보험에 가입해 있다. 보험산업의 연간 매출 규모는 174조 원으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는 보험침투율 측면에서 세계 1위 보험대국이다. 여전히 보험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규약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 최고 수준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외국 컨설팅사가 발표한 2013년 글로벌 보험소비자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험소비자 중 15%만이 보험구매 경험을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조사 대상 30개국 가운데 최하위이다. ‘긍정적’ 응답률이 중국보다도 낮고 미국의 51%와는 세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한국 보험소비자의 85%가 모두 보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응답한 것은 아니다. 조사대상의 76%는 보험경험에 대해 ‘중립적’이라고 응답했다. 만족도 순위로 10위인 스위스의 ‘부정적’ 응답 비율도 9%로 우리와 같다. 즉 우리나라가 보험만족도 조사에서 최하위가 된 이유는 ‘부정적’으로 대답한 소비자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중립적’으로 대답한 소비자가 다른 국가들 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경영계획 시즌을 맞아 보험사들은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 등 시장 환경의 구조적 악화 속에서 보험산업의 성장동력을 찾아 고심하고 있다.

일부 보험사와 국내 연구기관들은 2012년 이후 명목 GDP성장률을 하회하고 있는 국내 보험산업의 성장세 회복을 불가능한 미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융당국과 대형 보험사들은 해외진출을 보험산업의 유일한 성장 전략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자국민의 신뢰도 얻지 못하는 국내 보험사들이 글로벌 보험사와의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소비자조사에 따르면 조사 국가를 불문하고 본인의 보험구매 경험을 ‘긍정적’으로 응답한 소비자의 지인 추천의향은 ‘부정적’ 또는 ‘중립적’ 응답자에 비해 20%p 이상 높았다.

특히, 보험시장의 성장성이 높은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개발도상국은 ‘긍정적’ 응답자의 추천의향이 각각 71%와 58%로 아시아 선진국의 37%와 큰 격차를 보였다. 국내 보험사가 해외 진출을 위해 필요한 핵심역량은 상품개발이나 리스크 관리가 아니라 소비자의 신뢰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결과이다.

서두에 언급한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기본 전제는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이다. 그리고 상부상조의 본질적 가치는 내가 준만큼 나도 받을 거라는 본전심리가 아니라 서로 돕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평안과 안심이다. 보험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소비자와 보험사, 소비자와 소비자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보험의 효용은 보험금 수령이 아닌 보험 가입이 주는 마음의 평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보험사와 소비자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보험사가 먼저 변해야 한다. 보험사는 소비자 중심 경영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고객을 위해 상품을 개발하고 비용을 효율화해야 한다. 봉사활동과 같은 사회공헌사업(CSR)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마이크로 인슈어런스(micro insurance)의 개발과 같은 공유가치창출(CSV)이야 말로 보험이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 소비자는 합리적 보험소비자로 거듭나야 한다. 소비자는 보험의 효용과 가치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정확한 정보를 기초로 본인에게 맞는 보험상품과 가입금액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금융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합리적인 금융소비자야 말로 금융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의 밑거름이라 믿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국가차원에서 금융교육을 지원하고 금융교육위원회를 재무부에 설치한 남아공이 1983년에 세계최초로 CI보험을 개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합리적 금융 소비자는 글로벌 금융강국의 초석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