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이사 선임을 제도화해서 사외이사 공익성을 제고하자는 의견이 있으나 누가 추천할지, 공익이사가 공익에 따라 행동한다고 어떻게 담보할 것이지 문제가 여전히 잔존할 것이고 이는 문제의 반복에 불과한 것이다.”
“무슨 소리냐? 금융회사의 공공성에 비춰 보면 이른바 사회적 명망과 학식 있는 사람에게만 이사회 참여를 허용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직원 대표 등의 이사회 참여를 보장해야 마땅하다.”
이처럼 완전히 상반된 견해가 맞서고 있는 이슈가 바로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방법론이다. 지난 2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 한 방청객은 “공익이사 추천권을 누가 행사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새 정부가 야심차게 가동시킨 TF에 참여할 전문성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아스럽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날 세미나를 주관한 이종걸 의원은 “패러다임을 바꾸면 지배구조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 지배구조 TF 다수 인사는 추천 주체와 공익이사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하는 방식으로 기존 이사회 구성방식이 더 이상 완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은행지주사 및 금융사 지배구조에 관한 한 강경보수파로 분류할 만하다.
그렇다면 금융소비자와 직원은 물론 채권자 등의 경영참여를 허용하고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의무를 분명히 설정하는 새로운 지배구조 설계를 원하는 사람들은 급진주의자일까 진보세력일까 개혁세력일까. 조금만 살펴보면 급진, 진보, 개혁과 상관 없이 금융회사 속성에 최적화하기 위해 앞선 수준의 지배구조를 모색한 나라에서 일반화 돼 있기도 한 내용을 원론적으로 거론하고 있을 뿐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 최소한의 제도적 틀 ↔ 법률 제정해야 할 상당한 이유
TF 논의 결과이자 금융위원회가 정책방향으로 받아들인 것은 최소한의 공통규범 및 제도적 틀을 제시한 뒤 일선 금융업계가 저마다의 특성에 따라 큰 원칙과 규범을 수용하도록 하자는 ‘Comply or Explain’원칙이다.
이에 대해 적어도 은행권에선 산업자본 오너가 경영을 좌우하는 금융투자, 보험, 카드 등 2금융권까지 확장해서 생각한다면 일리가 있을 수 있다고 보면서도 거꾸로 은행지주회사와 은행권의 경우는 특성을 감안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A대형 은행지주 고위관계자는 “외국계 금융지주사를 뺀 나머지 지주사에 최소 규범과 최소한의 제도적 틀만 적용하겠다는 이야기라고 들리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 기간에서 시작해 대통령직 인수위를 거쳐 은행지주 CEO들의 특권과 전횡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여론에 비춰 상당히 거리가 먼 톤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혁성향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지난 정부 때 돌출됐던 은행지주사 지배구조 문제 해결 원칙에 일관성 있게 근접해 있는 모습이다. 당장 20일 세미나에 참석한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느슨하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지배구조 규제를 가하는 것은 금융회사 특수성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 지배구조 강조하는 건 금융규제 실패 은폐 때도 쓴다는 주장
전 교수는 특히 “여러 가지 금융규제로 다 하지 못할 내용 가운데 지배구조 입법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닌 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수 없이 지적해 왔다. 은행이나 보험사 같은 곳은 고수익 투자를 목적으로 자본을 쌓아 놓고 만기의 정함이 없이 공격적으로 투자할 곳이 아니며 고객이 맡긴 돈을 안전한 방법으로 법규에 준하는 운용을 통해 적정한 수익을 내는 곳이기 때문에 여신의 부실화나 매입 자산의 평가손이 곧 고객 재산 손실을 뜻하는 곳이기 때문에 감독의 책임이 중요한 곳이라고.
당연히 다수의 전문가들은 리스크관리와 같은 전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외이사 비중이 낮고 회사의 성과에 적극적 유인조차 없는 사외이사라면 도리어 위험한 지배구조로 돌변할 수 있다고 본다. 전 교수는 “CEO 선임절차보다는 대주주와 CEO 적격성 심사가 더 중요하며 지배구조 이슈를 강조하는 것이 금융 규제 실패를 가리기 위한 방편이 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지배구조 TF는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지배구조의 공익대표성을 강화할 필요성을 공감했다고. 그 밑바탕에는 금융회사란 주주 말고도 예금자와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가 여럿 존재하기 때문에 지배구조 역시 주주 대표성과 공익대표성을 조화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고.
◇ 공익대표성 구현 필요성은 인정, 누가 보장할지 모른다며 백지화
하지만 결론은 누가 다른 이해관계자 추천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이 공익을 대표할지 누가 장담하느냐는 것이었다.
외부출신 일색 사외이사들과 최고경영자와 극소수 사내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공익대표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엄연한 사회적 평가를 두 달 동안 논의 끝에 외면한 셈이다. 적어도 유럽에선 공익대표성을 확보하는 지배구조에 익숙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돋보인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에 따르면 신기술 계획 단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내의 이해관계자 직원대표를 참여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독일,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 직장평의회와 협의를 거치거나 충분한 정보제공을 하고 있고 스페인, 포르투갈은 노조대표와 협의를 한다고. 감독당국 한 관계자도 독일의 이원화된 이사회에서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일찍이 직원들의 경영참여가 법제화 된 탓이겠지만 전략 및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등의 감독이사회에 직원대표가 절반 비율로 참여하되 이사회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데 의장이 전직 CEO인 경우도 많더라”고 그는 말했다. 이해관계자 참여도 충족하고 의장의 판단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델로 경영자 전문성을 살리는 묘수라고 봤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지배구조가 형편 없었다고 평가했던 곳에 대해 최소 규범만 제시하겠다는 관용주의로 돌아서면서 공익대표성을 반영할 아이디어 마련이 어렵다는 이유로 백지화 한 것이다.
노조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 우리사주조합이란 제도가 정착단계에 와 있지만 배제했고 국민들이 신뢰하는 시민사회단체 상위 랭커로부터 후보군을 추천받아 사외이사 중심의 임원추천위원회가 후보를 확정하는 방식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금융노조 일각으로부터 제기된다.
2013년 은행지주사와 은행권 지배구조 개선의 수준은 아직 이렇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