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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과 효율성이 다는 아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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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3-06-13 14:20 최종수정 : 2013-06-13 14:37

원전 불량 케이블 납품 사건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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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과 효율성이 다는 아니다
올 여름은 꽤 덥겠습니다. 23기의 원자력 발전소 중 10기가 운행 정지랍니다. 어떤 기계든 오래 쓰다보면 고장이 날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사유가 다릅니다. 원자력 발전소에 납품된 케이블이 불량품인 것으로 드러나서 안전 차원에서 운행 정지를 시켰답니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정부와 정치권 모두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검찰은 맞춤형 태스크 포스 수사팀을 구성해서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고 합니다.

이번 사태의 주역들은 넷입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전력의 자회사로 원자력 발전소의 설계를 맡은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입니다. 원자력 발전소 한 기를 건설할 때 들어가는 수백만 개의 부품들이 설계에 맞게 납품되는지를 검수하는 곳도 이곳입니다. 마지막은 이들 부품들의 성능을 검증하는 전문업체들입니다. 공공기관 3곳, 민간업체 4곳이 있답니다. 한수원이나 한전기술과 달리 성능 검증업체들은 독점사업자가 아닌 것이지요. 중요한 부품은 대개 공공기관이나 외국계 민간업체에서 성능을 검증받고, 이번에 문제가 된 새한티이피는 전선 등 간단한 부품만 다룬다고 합니다.

네 번째 주역인 전선 회사가 불량 케이블을 납품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새한티이피에서 성능 검증을 받았는데 새한티이피가 시험 성적서를 위조해서 합격 판정을 했답니다. 전선 회사는 위조된 성적서를 제출해서 한전기술의 승인을 받은 후에 한수원에 납품을 했고 그 불량 케이블이 원자력 발전소에 설치된 것입니다. 전선 회사와 한전기술 및 한수원은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기 바쁩니다. 새한티이피가 자기 멋대로 시험 성적서를 위조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변명이 가능한 까닭은 성능 검증업체들이 시험을 의뢰한 부품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훗날을 위해서 의뢰업체의 편의를 봐주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원전은 워낙 전문 영역이다 보니 일반인들이 관여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세간에서 ‘원전마피아’라고 부르는 소수의 기관들이 끼리끼리 서로 봐주면서 모든 일을 처리해 왔답니다. 부품 검증업체의 자격을 인증하는 대한전기협회에는 한수원 출신자들이 꽤 있다고 하고, 대한전기협회가 인증한 1호 업체가 새한티이피 인데 지분의 47%를 한전기술 출신들이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전기술이나 한수원 어디에서도 시험 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을 알지 못했답니다.

작년 4월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리보(LIBOR) 조작 사건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리보를 기준으로 하는 금융계약 규모가 전 세계 GDP의 다섯 배나 되는 약 360조 달러(약 410경 원)나 되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리보가 엄격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서 결정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 영역에서 소수의 관계자들끼리 결정하면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조작해왔던 것입니다. 매일 서로 얼굴 보고 지내면서 가까워진 사람들끼리 서로 편의를 봐주는 것이 당연시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겠지요. 게다가 워낙 전문 분야라서 제3자가 개입하거나 알아챌 위험도 거의 없다면 원칙만 따지는 사람이 오히려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겠지요. 바로 그 상황이 함정이지요.

아마도 사람들이 항상 긴장해서 원칙대로만 살 수 없다는 것도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했겠지요. 리보 관계자들도 처음에는 아주 엄격하고 깐깐하게 처리했겠지요. 언제부턴가 조금씩 방심하게 되고 그러다가 조작까지 하게 되었겠지요. 처음 조작 했을 때는 바짝 긴장했다가도 언제부턴가 조금씩 조작에 익숙해지고 무덤덤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원전 부품 성능 조작도 처음에는 전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래도 되나 매우 불안했겠지만 그러고 나서도 원전은 별 탈 없이 돌아가고 성능 인증과 관련해서도 다른 문제가 없고 하니 조작이 점차 관행으로 굳어졌겠지요. 하버드 대학의 슐라이퍼 교수는 이런 성향을 ‘간과 위험’(neglected risk)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위험을 알지만 작다고 무시하기 일쑤라는 뜻이지요.

전문성이 높은 영역일수록 효율성을 감안해서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싶은 유혹이 강해집니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다양한 영역에서 이런 상황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경우 분명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일단 믿음을 배신하는 사건이 터지면 그 피해가 효율성의 이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리보 조작 사태도 그랬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미국 의회가 지적했습니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의 원인을 조사한 미국 의회의 ‘금융위기 조사위원회’(FCIC)는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금융위기가 자연 발생했거나 잘못된 컴퓨터 모형 탓이 아니고 사람들이 잘못 행동하거나 또는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아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FICI는 월가를 중심으로 금융위기는 예견할 수 없었고 막을 수 없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경고 표시들이 분명 있었는데, 월가가 그런 표시들을 무시했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단언했습니다. 또한, FCIC는 규제와 감독의 실패가 미국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훼손했다는 뼈아픈 자기반성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행정부와 의회가 금융시장은 자기 교정 속성이 있고, 금융회사들은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받아들여서 지난 30여 년 동안 공적 규제를 줄이고 금융회사들의 자율규제에 맡겨 두었었는데 결과적으로 금융위기 방지에 도움이 되었을 중요한 안전장치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공적규제를 줄이고 시장 참여자들에게만 맡긴 것이 금융위기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결론인데, 이 논리를 리보 조작이나 원전 불량 케이블 납품 사건에 적용해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아귀가 딱 맞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금융 감독체계를 두고 논의가 분분합니다. 건전성 규제와 행위 규제를 분리하느냐 통합하느냐의 논의가 중요하지만 금융을 어떻게 감독할 것이냐의 논의도 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도 금융 산업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감안해서 많은 부분이 자율규제에 위임되어 있지만 자율규제의 한계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증권 산업 자율규제기관인 FINRA(Financial Industry Regulatory Authority)는 증권분쟁을 조정하면서 투자자보다 금융회사의 이익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종종 구설수에 오릅니다. 2011년 5월에는 메릴린치에게 불리하게 중재했던 세 명의 중재위원을 해임했다가 세간의 의혹이 제기되자 2012년 6월에 그들을 다시 중재위원으로 임명했답니다.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 의장이었던 레빗(Arthur Levitt)은 FINRA의 전신인 NASD에게 금융회사의 입장만을 고려한다고 질책하곤 했습니다. 공적규제와 자율규제는 그 성격과 역할이 다르며 상호 간에 적정한 거리(arm's length)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유난히 덥게 지내야 할 금년 여름이 나름 의미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 손정국 센터장)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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