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감원, 50% 감축방안 수립 지시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과 생·손보협회는 지난 9일 보험민원 감축 세부 수립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조직하고, ‘민원감축 목표 설정 및 이행방안 가이드라인’을 각 사에 전달해 2015년 1분기까지 분기별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 이를 시행하기 위한 세세한 이행방안을 작성해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
예를 들어 올 2분기(4~6월)까지 전체 민원의 7%를 줄이겠다고 했을 때 단순히 ‘민원감축을 위한 사내문화를 만들겠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서나 직원을 대상으로 어떻게 문화를 형성할지 여부를 세세히 마련해야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민원을 줄이려는 노력들은 그동안도 지속해 왔기 때문에 새로운 방안을 찾기는 힘들다”며, “이 때문에 업무 담당자들이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세부방안은 이달 말까지 작성해 각사의 CEO 승인을 거쳐 5월 초까지 금감원에 제출해야 한다. 당국이 CEO 승인을 받게 한 것은 민원감축에 대한 책임을 각사의 CEO에게 묻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이를 분기별로 파악해 각사에 피드백을 해줄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목표에 미치지 못하거나 전분기 대비 민원건수가 늘 경우에는 검사지도에 나설 방침이다.
◇ 방향제시는 없었다… ‘블랙컨슈머’ 난제
보험업계는 민원감축을 위한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국에서 어떠한 방향제시도 없이 수치 줄이기만 강조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실상 금감원이 전달한 가이드라인은 실무자 단계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내려온 지침일 뿐, 보험업계에 별도의 방향제시를 하는 부분은 들어있지 않다. 당연히 보험업계가 이번 민원감축에 따른 최대의 문제로 지목하고 있는 블랙컨슈머(악성민원을 상습적으로 제기하는 소비자)에 대한 방안도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검사국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회사별 자체민원감축을 위한 이행계획서에 대한 것이며, 블랙컨슈머에 대한 논의는 별개의 사안으로 블랙컨슈머나 민원감축 방안 자체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나온바 없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민원감축 방안이 오히려 블랙컨슈머의 표적이 돼, 이들을 양산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블랙컨슈머에 대한 대책 마련 없이는 민원감축 방안이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솔직히 여러 방안마련을 통해 일정수준 민원을 줄이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절반을 줄이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며, “민원은 보험사가 제어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보험사들이 절반이라는 수치를 맞추기 위해 금액이 작은 건들은 회사차원에서 손해를 보고 무마시키려는 경우가 늘 것”이라며, “지급하지 않아도 될 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험산업 전체에 대한 시장혼탁과 더불어 손해율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기조들이 이어질 경우 오히려 악성민원뿐 아니라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가 팽배해져 일반 민원들도 더욱 증가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소비자보호 vs 블랙컨슈머…온도차 ‘뚜렷’
그러나 당국에서는 블랙컨슈머에 대해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가 원하는 블랙컨슈머에 대한 기준을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이 과정서 오히려 선의의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 관계자는 “누가 봐도 확실한 업무방해,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블랙컨슈머에 대한 규제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복민원에 대해서도 제외하고 있다”며, “블랙컨슈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업계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 두 측면을 모두 봐야하기 때문에 업계와 시각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낮은 상태에서 금융회사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소비자를 블랙컨슈머로 규정할 경우 소비자들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라며, “민원을 줄이기 위한 여러 방책들을 모색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블랙컨슈머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 내야한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은행 등 여타 금융권과 보험은 구조적으로 달라 민원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토로하고 있다. 보험모집·유지·보험금지급의 각 단계마다 민원이 발생할 여지가 있고, 사고·질병 등 사건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도 분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 또한 병원, 정비업체 등 관련업계에서도 민원을 제기할 수 있어 민원주체가 다양할뿐더러 각 부분에서 블랙컨슈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민원비율을 줄이라는 것은 당국이 보험업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 감독당국의 적극적인 공세에 보험민원은 분명히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이로 인해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미리내 기자 pann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