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1대1 자산관리서비스에 강점을 지닌 대형사는 후폭풍이 제한적이라는 분위기인 반면 이번 조치에 따라 인력, 시스템투자를 해야 하는 중소형사는 고민에 빠졌다. 전문가들도 인력, 시스템을 갖춘 대형사 위주로 랩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 계좌별로 개별주문 투자자요구도 반영
랩시장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게 됐다. 금융당국이 투자자보호 차원에서 랩어카운트제도에 대대적인 메스를 댔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지난 15일 내놓은 랩개선안에서 증권사의 랩운용에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대목은 랩과 펀드 사이의 명확한 구별을 위해 집합주문, 운용의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집합운용은 각 계좌재산의 일정비율로 특정증권 등의 취득과 처분에 대한 주문이 집합해 나갈 경우로, 집합주문도 각 계좌별 투자판단이 달리 이루어지고 취득과 처분에 대한 주문만을 집합할 경우로 못박았다.
예를 들면 이제껏 A, B ,C 투자자들의 계좌별로 10%를 떼내 S전자의 주식을 사는 식으로 펀드처럼 일정비율로 주문하는 집합운용이 가능했다. 랩관련 개별주문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중소형 증권사들도 이같은 방식으로 랩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투자자의 계좌별로 투자판단에 따라 집합주문을 내도록 했다. 이에 따라 모든 계좌의 주문은 개별로 진행되며 투자자의 요구도 즉시 반영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규모에 상관없이 증권사가 개별주문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바꾸거나 운용역 등 인력을 늘려야 랩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 규모의 경제효과 누리는 대형사 유리
전문가들은 이번 랩제도개선안이 대형사에게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 인력, 인프라에서 대형사가 우위에 있는 점을 꼽고 있다.
한화증권 정보승 연구원은 “투자자보호를 위한 제도개선방안으로 인해 추가적인 비용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자금력, 자산관리인력 등에서 차이가 나는 만큼 전체 증권사가 랩상품을 판매,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이 랩의 컨셉을 1:1 고객관리로 밝힌 만큼 랩뿐만 아니라 자산관리에도 인프라, 인력을 갖춘 대형증권사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와달리 백지에서 출발해야 하는 중소형사들이 금융위가 제시한 컷트라인을 맞출려고 투자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대신증권 강승건 연구원은 “계좌관리인(지점직원 또는 PB)은 계좌운용과 관련없는 업무만을 할 수 있고 투자자문사의 금융투자업자에 대한 자문내용 차등화 규정으로 인하여 사실상 운용에 해당하는 정보제공(종목과 비중 제시)이 금지됐다”며 “사실상 본사 운용역(포트폴리오 담당자)의 업무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어 대규모 인력충원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가입금액이 적은 고객들이 다수인 중소형 증권사의 입장에선 비용 대비 수익성이 떨어져 랩관련 인프라 구축, 인원충원에 나설 경우 BP(손익분기점)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이번 조치로 랩시장이 자본이 풍부한 대형사중심으로 빈익빈부익부 형태로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정보승 연구원은 “랩상품이 인기를 끌더라도 1:1 고객맞춤관리를 할 수 있는 인프라와 인력이 확충되야 한다”며 “결국 규모의 경제효과를 볼 수 있는 대형사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대형사, 중소형사별로 이번 개선안에 대해 온도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형증권사 랩운용부 관계자는 “거액자산가들은 한 계좌에서 다양한 금융상품의 고리인 유용한 툴로 이미 랩에 손을 들어줬다”며 “이번 규제안으로 랩이 대세인 전체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소형증권사의 경우 랩대중화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중소형증권사 관계자는 “1년 유예기간을 뒀으나 다시 새 판을 짜야 하는 만큼 만만치않은 시스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랩이 대세인데다, 가입금액제한의 유보로 타깃을 넓혀 공략할 수 있어 원안대로 시행될지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