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주장하는 국가채무 자료를 분석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불거져나온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채 문제로 공기업 부채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더구나 한국의 공기업들은 대형 국책성 사업을 떠맡는 바람에 부채를 더욱 키웠다. LH공사 사태를 계기로 공기업 부채가 사실상 국가채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을 공기업에 떠넘김으로써 공기업 부채가 국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공기업의 경우 이자를 갚아야하는 금융부채가 2009년 말 현재 181조원에 달한다. 2004년의 71조원과 비교할 때 6년 새 110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는 행정복합도시를 비롯해 혁신도시, 임대아파트, 보금자리주택 사업 등 대규모 국책성 사업들을 떠맡으면서 부채가 급증했다. 이 밖에도 공기업들이 다투어서 부채를 늘려 왔기 때문에 다른 공기업들의 부채 상황도 심각하다. 일부 공기업은 이미 완전히 자본을 잠식한 상태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나 재무구조 악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정부 역시 경기부양·개발논리 등을 앞세워 공기업 부채를 늘리는 데 앞장서왔다. 근래에 DJ정권, 노무현의 참여정권은 물론 MB정권도 친서민정책 등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내세우면서 국책성 사업을 공기업에 떠맡겨왔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정권이 국민을 매수하는 포퓰리스트 정책이 유럽 등 선진국들에서는 국가재정위기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재정 부실화는 은폐되는 대신 공기업 부실화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정부는 우리나라의 재정상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비교적 양호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까지가 공기업 부채이고 어디까지가 정부 부채인지 구분이 불투명하다. 공기업 부채로 위장한 정부부채, 이것이 정부와 공기업의 비능율과 도덕적 해이를 더욱 키워왔다. 이래서야 정부든 공기업이든 부채관리가 제대로 되겠는가.
일부 전문가들은 선진국과 달리 공기업이 국책사업을 맡고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해서, 국가 부채에 공기업 부채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대강 사업, 녹색성장, 보금자리 주택, 세종시 등 천문학적 금액이 소요되는 정부 국책사업들이 대부분 공기업에 떠맡겨져서 현실이 호도되고 있다. 공기업 부채가 국가 부채로 포함될 경우, 우리나라의 재정상태도 양호하다고 볼 수 없다. 공기업 민영화가 지연되는 이유도 공기업의 부채 급증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LH공사에 대한 재정 지원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공기업에 대한 재정 투입은 정부의 재정건전성 저하 및 도덕적 해이 비난 우려 등 반대 여론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공룡 LH공사를 빚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현 상태에서 무작정 정부 재정만 투입하면 모럴 해저드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재정 투입에 앞서 LH 등 공기업의 역할 재정립 및 사업구조조정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공기업의 사업 구조조정이란 이미 벌려놓은 사업이나 사업계획의 축소조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기업이 할 일은 공기업이 맡고, 국책사업은 정부가 맡는 사업구조조정이 부채관리나 도덕적 해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포퓰리즘적 사업들을 공기업에 과도하게 떠맡겨온 관행이 공기업의 부채를 키운 핵심 요인 중 하나인 만큼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그동안 그럴듯한 이유도 없이 지연시켜온 공기업 민영화도 앞당겨야 한다. 정부, 공기업 및 민간기업간의 사업영역이 명확할 때 국가 부채관리와 공공부문의 능률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