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관성있는 투자철학이 수익률 좌우해
김 모씨는 한 중소형 자산운용사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고 맘에 들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투자 철학과 잘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에 들러 그 회사 펀드에 가입하겠다고 말했더니 은행직원은 다른 대형 회사의 펀드를 추천했다. 중소형 운용사는 위험하니 안정적인 대형 운용사의 펀드에 가입하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형 운용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은 위험하고 큰 것은 안전하다는 의식이 우리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펀드와 관련해서는 이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선 대형 운용사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우선 펀드는 제도적으로 규모와 상관없이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형 운용사가 안정적이라는 생각은 대형 운용사가 중소형사 보다 파산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자산운용사가 만일 파산하더라도 투자자의 자금은 별도로 관리된다는 점에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펀드에 가입해 자금을 넣으면 그 자금은 자산운용사가 아닌 수탁회사(다른 말로는 자산보관회사)에 특별자산으로 보관된다. 일반적으로 수탁회사는 은행이 담당하는 데 이 자산은 설사 은행이 망하더라도 손댈 수 없도록 별도로 관리한다. 펀드 운용은 자산운용사에 있는 펀드매니저가 운용지시를 내리면 수탁회사가 이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수탁회사는 자산운용사의 지시가 법에 어긋나지 않는 지 감시하도록 돼 있다. 만일 자산운용사가 파산하면 수탁회사는 즉시 모든 투자자가 참석하는 총회를 열어 별도로 보관돼 있는 자산을 어떻게 할 지 결정한다. 총회에서 펀드 해지가 결정되면 보관돼 있던 주식이나 채권 등을 시장에 팔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게 된다. 결국 펀드를 선택할 때는 대형 운용사인가 혹은 중소형 운용사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보다는 명확하게 어떤 투자철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펀드가 장기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뚜렷한 투자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투자철학이란 시장상황과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지키는 투자의 관점을 말한다. 명확한 투자철학 없이 시장상황에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면 결코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없다. 세계적인 일류 자산운용회사를 보면 모두가 어떤 스타일이든 뚜렷한 투자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자산운용업이 제조업이나 다른 금융업과는 달리 ‘창의성’이 중요한 업종이기 때문이다. 즉 급변하는 시장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속에서 어떤 기준으로 종목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투철한 기준이 필요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자산운용사의 선택 기준은 경영이 독립적으로 이뤄지는가 하는 점에 있다. 은행이나 대기업 계열이 아닌 펀드시장의 전문가가 주주인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은행이나 대기업 계열 회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최고 경영자(CEO)나 운용 담당 임원(CIO) 등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일관성 있고 뚜렷한 투자철학을 갖는 경우가 드물다. 특정 CEO나 CIO가 명확한 철학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모회사의 정책에 따라 자주 자리가 바뀌기 때문에 그때마다 투자철학이나 운용전략도 변화하게 된다. 결국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보니 장기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내기 힘든 구조다.
하지만 반대로 이들 계열 자산운용사는 모회사의 판매나 자금 등에서 대규모 지원을 받기 때문에 대형 자산운용사인 경우가 많다. 마치 자산운용업을 자본금과 사무실, 그리고 사람만 모으면 아무나 간단히 할 수 있는 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돈 모으는 데만 강하고 막상 핵심인 자산운용은 일관성 있는 투자철학이 없다보니 약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대형 자산운용사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자금을 맡긴 투자자일 것이다.
미국 등 펀드 선진국에서는 수 천만원 정도의 적은 자본금과 간단한 신고만으로 자산운용회사를 쉽게 설립할 수 있다. 대신 법규 등을 어기면 바로 퇴출되도록 엄격하게 관리한다. 이렇다 보니 창의성을 가진 많은 전문가들이 펀드 시장에 진출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우 다양한 스타일의 펀드를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중소형 규모의 자산운용사 중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회사도 많다.
가치투자의 명가로 알려진 미국의 전설적인 자산운용사 <트위디, 브라운>의 크리스토퍼 브라운은 “나는 펀드매니저가 주인인 자산운용사의 펀드를 선호한다”고 주장했다. 펀드를 마케팅하거나 판매하는 사람이 자산운용사를 경영한다면 고객이 맡긴 돈을 잘 운용하는 것보다 펀드를 더 많이 팔아 운용자산을 키우는 데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펀드매니저가 주인이라면 그들을 해고할 수 있는 사람은 투자자 밖에 없으므로 펀드매니저는 자신의 투자원칙에 따라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투자자들도 막연하게 대형회사를 쫓기 보다는 명확한 투자철학을 기준으로 자산운용사를 선택한다면 우리 펀드 시장이 더욱 풍성해지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