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자와 금융회사의 이해상충 관계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는 금융회사가 얻는 이익의 주요 근원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금융회사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금융회사와 투자자는 이해상충 관계에 있다. 이해상충은 금융회사가 단기 실적을 따질수록, 그리고 금융회사와 투자자 간에 정보의 비대칭이 심할수록 심해진다.
양자 간에 정보의 비대칭은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 금융상품의 종류가 과거에 비해서 대단히 많아졌고 동시에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펀드 하나만 봐도 그렇다. 4월 말 현재 일반 투자자가 쉽게 가입할 수 있는 공모펀드는 3,800개가 넘는다. 얼마 전 세간에 오르내렸던 모 파생상품 펀드의 경우 투자 대상이 100개가 넘으며, 수익률을 계산하는 방식은 대단히 난해하다. 이제는 일반 투자자가 투자의사결정을 다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투자자는 판매회사에 더욱 더 의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행동경제학에서는 개인이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고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선택 대안이 있는 경우에는 아예 선택을 포기한다고도 한다.
◇ 이해상충 해소를 위한 각국의 노력
금융회사와 투자자 간 이해상충은 투자자의 자본시장 참여를 억제하기 때문에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직접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각국의 감독당국이 이해상충의 해소를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의 경우 정보 비대칭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 대형 판매사인 모건 스탠리가 2000년 1월부터 자사의 펀드판매촉진프로그램에 참여한 운용사의 펀드를 우선 판매하다가 2003년 11월에 적발된 것이 좋은 예다. 모건 스탠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Exchange Commission, SEC)에 5,000만 달러의 민사제재금을 지불했다.
이런 분위기가 심화되자 시티뱅크나 메릴린치는 아예 계열 운용사를 매각하기도 했다. 오바바 행정부도 정보 비대칭의 활용을 줄이고자, 자문업자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신인의무(fiduciary duty)를 중개업자에게도 적용하려 한다.
영국에서는 투자자가 보다 객관적인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독립 투자상담사(Independent Financial Adviser, IFA)의 요건을 강화하는 조치가 진행 중이다. 이 조치는 금년 중 확정 발표되며, 2012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2006년에는 금융상품판매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서는 투자자가 소위 ‘불완전판매’에 대한 손해배상을 보다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법 시행 후에 실제로 일본 금융회사들의 펀드판매 관행이 크게 바뀌었다. 정보 비대칭을 이용할 동기가 약화된 것이다.
◇ 투자자와 금융회사의 격차
금융회사와 투자자 간 이해상충을 규제하려는 각국의 노력은 양자의 격차를 고려할 때 더욱 정당해진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증권회사의 2009년 말 현재 정규직원만 3만 명이 넘는다. 2009년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간 펀드와 관련해서 약 5,3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2008년 4월부터 2009년 3월까지 1년간 수익은 7,400억원을 넘는다.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을 보유한 금융회사는 투자자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도 여념이 없다.
최근 모 일간지에 ‘기능적자기공명영상장치 (MRI)’, ‘안구추적조사’, ‘피어 섀도윙’, ‘비디오 에스노그래피’ 등 생소한 용어들이 소개되었다. 소비자심리 조사방법들이다. 기사에서 다룬 것은 펩시 등 비금융회사 얘기였지만, 금융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2007년 1월에 발간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Harvard Business Review)는 JP 모건이 펀드 판매나 투자자 관리에 행동경제학을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이처럼 다양한 비방(?)까지 쓰는 금융회사에 투자자가 맞설 재간은 없다. 금융상품거래가 사인간의 거래지만 자율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도록 하기에는 당사자 간 격차가 너무나 크다.
◇ 우리나라의 동향
우리나라는 2009년에 소위 ’자본시장법‘을 제정하여 ’적합성의 원칙‘이나 ’설명의무‘를 법률에 도입했다. 다양한 기관들이 금융교육도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금융회사와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또, 얼마 전에는 펀드의 판매보수 상한을 1%로 낮추고 유예기간을 거쳐 기존 펀드도 적용을 받도록 했다. 정보 비대칭을 활용할 동기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완벽한 조치가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적합성의 원칙’이나 ‘설명의무’는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전제 하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제도다. 펀드의 판매보수 상한을 낮추었다고 해서 투자자와 금융회사 간 이해상충이 100% 소멸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제는 더 나아가 실효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 향후 과제
하나는 투자자를 대신하는 독립 금융 전문가 제도의 활성화다. 정보 비대칭의 격차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독립 투자상담사들의 시장점유율이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예측해서 유명해진 미국 예일대의 쉴러 교수는 아직도 이 방안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문’과 ‘판매’를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금융회사가 투자자와의 격차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정책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처럼 손해배상에서 투자자의 부담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정보 비대칭을 이용하려는 동기가 억제될수록 금융회사들은 투자자를 위해서 경쟁하게 된다. 맛나고 영양가 있는 모이를 먹으면 거위는 더 큰 황금알로 보답할 것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