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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단상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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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9-03-15 18:44

조관일 대한석탄공사 사장,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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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우리 집은 연탄공장 근처에 있었습니다. 근처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연탄이 땔감의 주종을 이루던 시절이기에 공장주위는 늘 사람들로 분주하였고 연탄 찍는 기계음으로 시끄러웠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석탄가루가 흩날려서 빨래를 더럽히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 구석구석을 시커멓게 했습니다. 그럴 때면 불평을 넘어 공장에 항의를 하곤 했는데, 그런 제가 석탄공사 사장이 됐으니 업보라고 해야 할지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따뜻했다

이제 부임한지 7개월이 돼갑니다. 그동안 전국의 모든 연탄공장을 다 돌아봤습니다. 막장에는 네 번 들어갔습니다. 금년 1월의 시무식은 아예 막장에서 했는데 막장시무식은 석탄공사 창사이래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현장을 누비는 이유는 현장을 알아야 문제를 알고 그래야 해결책이 나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막장에 들어서면 숙연해집니다. 처음 들어갔을 땐 가슴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태백시의 장성탄광은 1km 지하에서 석탄을 캡니다. 그 땅속에서 이리저리 연결된 터널의 총거리가 280km에 달합니다. 무려 700리라는 말입니다. 그 끝에 막장이 있습니다.

그곳이야말로 인간의지의 상징이며 진지한 삶의 터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흉악한 범죄나 폭력, 그리고 막가는 불륜드라마 따위를 수식할 때 ‘막장’을 들먹입니다. 그래서 막장 범죄, 막장 드라마, 심지어 막장 국회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얼마 전, 우리 직원이 멈칫거리며 내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요즘 막장이라는 말이 좋지 않게 번지는데 뭔가 조치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요. 순간, 머리를 스치는 강렬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막장에서 일하는 성실한 우리 사원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며칠 동안 생각을 정리한 끝에, 3월 3일 아침에 글을 써서 언론사에 일제히 보냈습니다.

<막장은 폭력이 난무하는 곳도 아니고 불륜이 있는 곳도 아닙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열기를 잊은 채 땀흘려 일하며 우리나라 유일의 부존 에너지 자원을 캐내는 숭고한 산업현장입니다.

그런 현장이 있기에 지금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있다고 우리는 자부합니다. 오늘날처럼 부귀영화에 눈이 멀고 호사스러움만 탐하는 세상에서 그 힘든 일을 웃으며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순수하고 성실한 사람인지 아실겁니다. 막장은 어둡고 꽉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결코 막다른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전진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있는 곳입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그러기에 ‘막장’이라는 말을 나쁜 표현으로 쓰지말자는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언론을 상대로 글을 보내기까지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혹시라도 ‘별것 아닌 것에 트집이나 잡는 좀스런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응은 즉각 나타났습니다. 불과 2~3시간만에 인터넷에 ‘막장 막장 하지마’라는 제목이 떴습니다. 다른 자료를 검색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날 밤의 TV뉴스에서부터 오늘 아침의 라디오 인터뷰까지 10여 일 동안, 무려 60여회에 걸쳐 신문, 방송, 인터넷이 이 문제를 호의적으로 다뤄주었습니다. 어떤 논설위원께서는 “미안하다”고 하셨고 어떤 방송인은 “별생각 없이 그런 말을 썼는데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주까지 막장과 관련된 인터뷰 계획이 잡혀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하여 크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참 따뜻하다는 것과 진심으로 접근하면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말 한마디라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말

주위를 돌아보면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말 중에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불우이웃돕기’라고 말할 때의 ‘불우이웃’이라는 표현도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결손가정’이라고 할 때의 ‘결손’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호의를 갖고 있더라도 표현이 나쁘면 나쁜 것입니다. 비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의 ‘막장 사태(?)’를 계기로 우리들의 언어가 좀 더 순화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리하여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됐으면 합니다.

모든 것을 넉넉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신 언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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