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100여일 정도면 실력이 웬만큼 드러날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 사태로부터 크게 배우고 대오각성하지 않는 한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앞으로도 CEO 경력을 갖고 큰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에게는 이 대통령의 성과가 씻을 수 없을 정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마치 좌파진영의 정치적 자산을 전직 대통령이 말끔할 정도로 다 써버리고 나간 것처럼 CEO 출신의 정치적 자산을 이 대통령이 다 써버리고 나갈 것을 걱정하게 된다. 왜, 이렇게 헤맬까? 왜, 국민들이 기대한 만큼 선전하지 못할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필자의 이 같은 의견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재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무력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 대통령이 한참 활동하던 70년대와 80년대에 과연 한국에 현대적 의미의 CEO가 있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여러분이 꼭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필자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당시에는 현대적인 의미의 CEO는 없었다”고 답할 것이다. 복잡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문제를 설정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면에서 이 대통령은 풍부한 경험이 없는 분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일사불란한 조직에서 자신의 경력 대부분을 닦아왔다. 그리고 정치계에 입문한 다음에는 당 대표 등과 같은 경력을 거치면서 다양한 이해집단 속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설득하는 등의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최고의 경력을 관리하던 기업체 생활만 하더라도 이 대통령의 뒤에는 항상 최종책임자가 있었다. ‘오너’에 해당하는 정주영 회장을 말한다. 전문경영인과 오너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 있었을까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나 정 회장의 성격을 미루어 볼 때 문제 설정부터 책임이란 면에서는 아무래도 오너에 의해 주도되었을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YS, DJ 모두 월급 사장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치 세계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렸던 일종의 ‘오너’ 정치인이었다. 그들은 본능이건 학습이건 간에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공략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설정했다.
그리고 타이밍에 맞추어서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휘하 조직원들을 움직여 갔다. 수 십년 간의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CEO에 준하는 그런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그런 경험들을 얼마나 가졌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풍부하다’는 답을 내놓기 힘들 것으로 본다. 이미 주어진 과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데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또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샐러리맨으로서 신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몸담았던 그룹이나 업종의 성격을 미루어 보면 일사불란이 중요한 덕목이었을 것이다. 흔히 “하라면 어떻게든 하는 거야‘라는 풍토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입문 이후에는 오히려 CEO에게 요구되는 그런 경험들이 적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서울시장 중의 이룬 업적에 대해서 필자는 높이 평가하지만 이 역시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 몇 개의 특별한 프로젝트에서 고도의 성과를 거두는 일이지 상황을 판단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사람들을 이끄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두고 ‘소통의 부재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 대통령 자신도 그렇게 진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부터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경험과 실력의 문제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단점을 직시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 드러난 실수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는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 반전되기를 바라지만 이번 행정부에 대해서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