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기업들은 불공정거래 여부를 조사해 달라며 공정거래위원회 제소와 함께, 법적 대응도 불사할 태세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계약내용과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서명도 받았기 때문에 보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도 키코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손실보전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中企 피해, 1조9천억
‘통화옵션’이란 원화와 달러와의 교환 등 서로 다른 통화를 일정 환율로 교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계약자는 약정에 따라 통화옵션에 다양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으며 이중 하나가 ‘키코’상품이다.
키코는 계약기간 동안 환율이 약정범위 내에서 변동하는 경우 기업이 유리한 환율로 외화를 매각할 수 있다. 반면 환율이 약정범위의 하한보다 밑돌면 옵션계약 자체가 무효화(녹아웃)되며, 환율이 약정범위의 상한보다 높아지는 경우 계약금액의 2~3배에 해당하는 외화를 시장환율보다 낮은 약정환율로 은행에 매각(녹인)해야 한다.
이에 수출중소기업들은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 은행들의 권유로 지난해 하반기 ‘키코’에 가입했다가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큰 손해를 봤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들은 “은행들이 키코를 판매하면서 위험성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가입을 강권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손실을 입은 일부 기업들은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3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환헤지 피해대책 촉구 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참석한 기업들은 “은행의 무분별한 영업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성토했다.
현재 중소기업중앙회에 키코 피해사례를 신고한 업체는 114개사다. 이들 기업들은 1453억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했고, 업체당 평균액 약 13억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감원은 키코로 인해 중소기업들이 약 1조9000억원의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은행이 가입 강요”
손실을 입은 업체들은 키코 판매과정에서 위험성을 알리지 않았고, 대출과 연계해 상품을 팔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수출업체 대표는 “통화옵션상품과 신용카드, 적금 및 대출을 같이 권유했다”며 “상품 해지를 요구하자 수억원의 해지 수수료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서울 소재 업체는 “거래은행 지점장의 권유로 의향서에 날인한 것이 전부인데, 키코에 가입됐고 손실이 발생했으니 대금을 입금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후 여러 가지 위험부담을 설명하며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권유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업체는 “계약서를 늦게 보낸사유와 위험사유를 왜 진작 알리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자 은행측이 의향서는 곧 계약서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서명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서울 소재 업체는 “거래 지점장이 ‘통화옵션상품이 수출 중소기업에 아주 좋은 상품으로 금전적 이익을 줄 것’이라며 수차례 상품을 권유했다”며 “구두로 계약 이후, 계약서 내용을 검토한 후 계약조건이 너무 불공평해 해지를 요청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점장이 회사를 방문해 ‘계약해지는 어려우며 은행측에서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손실을 보전해 줄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고 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은 “은행들이 ‘키코’상품의 장점만을 부각해 가입을 권했으며, 거래적 약자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에 강제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키코는 불공정 계약이고, 은행들이 위험고지의무를 등한시 한만큼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시중은행들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외환대출이나 상품 재설계, 상품 중도 해지 허용 등 기업들이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업들은 불공정성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며 손실 보전을 위해 법적 대응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 손실보전 어렵다
은행권과 금융당국은 기본적으로 ‘키코’와 관련한 손실보전을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키코 분쟁과 관련해 “통화옵션 계약은 경제 주체들간 사적인 계약이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개입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통화옵션 계약금액이 수출액 범위이내일 경우 환율 상승시 수출대금에서 발생하는 환차익으로 인해, 기업들은 순이익이 발생했다”며 “따라서 중소기업들이 환헤지에 따른 손실보전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계약내용과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를 확인하는 서명도 받았다”며 “기업들도 위험요인에 대해 충분히 인지했고, 환차익을 볼 수 있다는 자체적 판단으로 가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환율상승에 따라 일부 기업들이 ‘키코’에 의해 손실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환율상승으로 인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환차익을 챙겼다”며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은 환차익으로 인해 손실도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키코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보다 더 큰 이익을 챙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심리 때문에 기업에서 손실보전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각 기업별로 계약 내용과 성격이 다른 만큼, 통화옵션 계약에 따른 구제 기준도 마련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 금융권에서는 은행이 중소기업에 키코 상품을 판매할 때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하성 기자 haha7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