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명한 사람은 위기를 통해 배우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번에 무엇인가 깨닫는 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몇 가지는 족히 된다.
먼저 야단맞아야 할 사람과 칭찬 받아야 할 사람을 잘 구별하는 것이다. 권오규 부총리부터 생각해 보자. 권 부총리는 주식시장의 급락 직전에 외환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경고한 점 때문에 시장의 일부 관계자와 언론으로부터 싸늘한 대접을 받았다. “말이 씨가 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평가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경각심을 촉구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다만 권 부총리의 잘못이 있다면 정책당국자로서 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사전에 주도면밀하게 마련해 두지 못한 점이다.
이번 위기와 관련하여 야단맞아야 할 사람은 태평성대의 구가를 소리 높여 외쳤던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들과 이에 맞장구를 쳤던 일부 경제지들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엔캐리 트레이드의 문제가 대두된 지 6개월이 지났건만 “알려진 악재는 악재가 아니다”라는 헛소리를 일삼으며 코스피의 상승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이들은 시장에서 철저하게 재평가 받아야 한다. 알려진 악재는 악재다. “해결방향이 결정된 악재”만이 악재가 아닐 뿐이다.
이번 사태의 보다 중요한 교훈은 증권시장에서의 투자자 보호 문제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화급한 정책과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만일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펀드에 대한 환매사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물론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환매중지 절차에 대한 규정이 있고, 자본시장통합법에도 동일한 규정이 존재하지만 과연 이 규정이 투자자의 이익을 정확히 보호하는 형태로 운용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또 환매 사태 과정에서 나타날 각종 불법, 탈법, 편법에 대해 소액 투자자들이 경험할 유형 무형의 손해를 누가 어떻게 배상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물론 일차적으로 당해 회사가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회사 자체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이런 원론적인 배상이론만으로 투자자를 잘 보호할 수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다음으로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은 가용 외환보유액의 현황이다. 정부 당국자가 아무리 엔캐리 트레이드와 연관된 자금이 미미한 수준이라고 발표해도 국민들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적어도 통계상으로 본 단기외채 수준이 약 일천억 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별난 운용”을 하겠다고 시작한 한국투자공사의 외환운용상황은 철저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당초 설립 후 2년 후에 그 존폐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던 만큼 한국투자공사의 필요성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올해는 외환위기가 발생한지 만 10년이 되는 해다. 그런데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정확하게 10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되풀이 되고 있다. 그 때에도 삼성전자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었고, 아시아 금융시장은 들먹이고 있었고, 일본계 자금은 롤오버없이 시장에서 환수되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직사회의 명령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그 때와 동일하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외환보유액이 많고 아직도 그 때의 위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밝은 차이점이다.
그러나 위기가 미국과 유럽에서 촉발될 수도 있다는 점은 살 떨리는 차이점이다. 잘못하면 아시아 시장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고, 또 이를 노리고 투기세력이 방어막의 완성도를 시험해 보고자 입질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스피의 상승에 환호할 때가 아니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