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B와 제일은행이 통합 출범한지 1년 남짓 지난 현재, 은행 내 일각에선 씨티은행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영업환경이나 정서에 맞지 않는 상품, 영업전략, 프로세스를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마찰이 빈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통합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존 필메리디스 행장이 밝힌 것과 달리 내부 분위기는 큰 차이가 난다. 심지어 어떤 직원들은 “세계적으로 강한 은행이라 기대가 컸는데 뉴브리지보다 나은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비탄의 소리까지 입밖에 낸다.
◇자산은 늘었는데 순익은 반토막…통합비용 때문이라니= 지난 한해 성적표를 볼 때 자산과 수신이 각각 37.6%, 43.8% 늘었다. 그러나 기업여신이 또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45.6% 줄어 반토막 났다.<표 참조>
은행 한 관계자는 “간판 교체, 점포 레이아웃 변경 등 일시적인 통합비용이 많아 순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거 700개 안팎의 점포를 가진 우리은행의 리브랜딩 작업이 120~130억원 정도 들였던 점에 비춰볼 때 일시적 지출 때문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300여개 점포망의 SC제일은행의 통합비용이 우리은행보다 크게 많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통합작업과 현지화가 순탄하게 이뤄진다면 은행 순익은 완전히 반전될 수 있지만 아직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현지화 노력 너무나 다른 ‘겉과 속’= 필메리디스 행장은 국민은행과 비교해 “외국인 주주 15%의 차이가 뭐길래 SC제일은행은 국내은행이 아닌 외국계로 구분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한 바 있다. 그는 또 SCB 1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제일’이라는 로컬이름을 사용한 점이나, 꾸준히 사회책임활동을 했던 점, ‘한국의 날’을 지정해 국내외 SCB 직원간 문화교류를 했던 점 등 현지화 노력을 소개했다.
이같은 토착화 노력에 대해 금융계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은행업 본연에서는 다른 모습이라는 데 문제가 드러난다. 출범초기부터 최근까지 무리한 인력 스카웃으로 경쟁은행들의 빈축을 샀던 사례도 여러 번이다. 자체적인 인력투자 보다는 남들이 수년간 투자해 양성한 인력을 고액 연봉을 앞세워 데려가는데 열 올림으로써 상도의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거세다.
과거 제일은행 당시 80여개였던 본점 부서는 현재 여러 개로 쪼개져 196개까지 늘어났다.
씨티은행이 138개까지 늘어난 부서를 의사결정의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최근에 83개로 통폐합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조치는 남의 은행 이야기일 따름이다.
이밖에 최근 모집인제도의 폐단이 잇따라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DSR이라고 불리는 대출모집인들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이 은행 노조 한 관계자는 “현재 이 모집인들은 680명에 이른다”며 “SCB가 과거 영업점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보니 기존에 활용했던 모집인들을 이용해 손쉽게 영업을 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열린 노사 공동 워크샵에서는 모집인 확대에 대한 노조의 반대로 이 문제를 놓고 노사 공동 테스크포스팀을 만들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독립 사업부제(벨류 센터)와 전담SF(Sales Force)제 도입도 논란거리다.
기존 영업점내부에서 영업인력들을 총괄·관리했던 시스템과 달리 독립 사업부제와 전담SF제가 도입되면 가계 기업 여신 수신 더 세부적으로는 상품별로 나뉜 전담SF들은 영업점이 아닌 각 사업부 헤드의 통제를 받게 된다.
은행 일각에서는 “영업조직이 무너지고 각 사업부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각 은행들이 지향하는 종합금융서비스나 원스탑뱅킹을 시현하기에도 적절치 않다. 고객 입장에서도 다양한 편익을 제공받기 어려울것으로 관측된다.
◇최고 20%금리 대출상품 등 국내환경·정서 도외시= SCB이 강점을 발휘하는 지역은 중동·아시아 지역이다. 홍콩, 싱가포르 같은 선진권 진출국 경제규모는 우리 나라보다 작고 나라가 크면 경제성장이 훨씬 뒤쳐진 곳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홍콩이나 싱가폴은 국제금융 등 특정분야에 특화돼 발전한 곳이어서 이들 진출국에서 성공했던 금융기법이나 상품이 국내에서도 통할 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SCB측은 다른 나라에서 재미를 봤으면 그대로 들여오는 것을 상당히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은행이 팔고 있는 최고 20%가 넘는 고금리 신용대출상품은 은행 내부적으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용등급에 따라 15% 내외에서 높게는 20% 이상의 금리가 적용되는 상품이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모기지론에 주력하면서 영업력을 살려왔으나 이제는 국내 현실에 맞지 않는 고금리 대출위주의 영업전략을 펴고 있어 고충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국내 고객들의 정서나 외부의 시각 역시 고울 수 없다.
시중은행의 경우 개인이든 법인이든 신용대출 금리는 카드론을 제외하고는 10%를 넘지 않고 직장인대출의 경우도 10%대 초반에 머문다.
금융계 한 고위관계자는 “대부업체도 아니고 20% 까지 올라가는 고금리 대출상품은 국내 은행 정서상 맞지 않다”며 “씨티은행조차 그 정도 금리의 상품은 여신전문업체인 씨티파이낸셜에서 팔게 한다”고 말했다.
과거 모기지론 판매에 주력하면서 안정적인 자산운용을 했던 SC제일은행은 리스크 높은 고금리 신용대출에 지나치게 주력하면서 자산운용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도 점차 증폭되고 있다.
이밖에 점외 CD기의 80% 수준을 없애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어 반발을 예고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점포가 많지 않고 점포내 CD기도 1~2대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CD기 한 대 당 처리 건수는 많다. 그러나 점포가 많은 국내에선 CD기 이용건수가 작을 수밖에 없다. 이를 단순 비교해 효율성이 적다는 논리로 폐쇄를 추진하는 것은 전혀 현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행태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 SC제일은행 2005년 실적>
(단위 : 억원 %)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