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에 노조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
국민은행 노사가 합의한 것은 신청자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대가’를 주느냐는 것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합의에 따른 희망퇴직은 이미 잠재 분류된 ‘부적격자’들이 퇴직에 응하도록 하고 안되면 후선보임해 업무 실적을 크게 반전시키지 못하면 자연 면직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게 뼈대를 이룬다.
이번에 원하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강행장은 자신의 임기 중에는 다시는 희망퇴직을 하지 않겠다고 대내외에 약속했다.
◇ 강 행장 승부수가 통했다 = 금융계는 노사 협상을 시작한 지 보름만에 합의를 이끌어 낸 것 자체만 놓고 볼 때 강정원 행장의 솜씨가 드러난 사례로 꼽고 있다. 대규모 퇴직을 설날이 오기 전인 이달 말까지 끝낼 수 있게 한 성공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무엇보다 보상 조건이 파격적이고 퇴직자 지원 프로그램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지난해는 18~20개월치 임금을 지급했다. 당시 L4직급 희망퇴직 우대 대상자가 20개월치 임금을 받게 돼 평균 1억7691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올해는 2억 이상 퇴직자도 많을 전망이다.
미래에셋증권 한정태 애널리스트는 24개월치를 챙겨 줄 때 2880억원의 영업외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다 자사주 150주를 은행 돈으로 최대 3800명에게 준다면 주가 4만4000원임을 감안할 때 250억원이 더 들기 때문에 3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한꺼번에 들이는 부담을 감수하는 셈이다. 직원만족팀 신설도 긍정적 평가가 가능한 부분.
업무지원센터 일부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거나 KB신용정보 등의 자회사에서 채권추심업무나 임대차조사요원 등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주는 계획도 포함됐다.
둘째 일부 언론에서 4800명까지 감원한다는 보도와 달리 이번 한 번의 희망퇴직으로 끝내기로 한 점도 노조 대표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줬을 것으로 풀이된다.
◇ 노조의 부담은 그대로 남아 = 한정태 애널리스트는 대규모 희망퇴직으로 국민은행 주당 순이익은 518원 끌어올릴 것으로 추산했다. 경영진이나 주주에겐 그만큼 좋아질 일이다.
반면에 노조의 부담은 그대로 남았다.
협상 초반 노조 일각에선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라며 일방적 구조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적 악화에 따라 감원을 한다면 직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일이기 때문에 부실경영 원인규명과 책임자 문책도 요구했다.
인원수를 명시하지 않아 당장의 희망퇴직 규모가 정규직 1800명과 비정규직 2000명보다 적을 수 있다는 것을 빼면 노조가 거둔 성과는 적어 보인다.
그러나 국민지부와 주택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격렬한 항의의 글이 쌓이고 있다.
이낙원 위원장은 또 지난 24일 노조 통합 대의원대회 때 질의가 쏟아지자 “명퇴 논의는 시작단계일 뿐”이라고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지부의 행장실 점거농성은 25일 시작됐다.
노사 합의는 25일 오후 9시께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장의 발언이 있은 지 하루 남짓 지났고 농성에 들어간지 12시간이 안돼서 합의한 데 대한 비난은 당장 넘어야 할 산이다.
게다가 부실 경영 책임자 문책같은 문제는 노조 집행부만의 힘으로 성사시키기엔 버거운 과제라는 게 금융계의 일반적 견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