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최근 발생하는 대형 금융사고는 내부통제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한 신종(新種) 수법이 많고 금액 또한 상상을 초월하고 있어 재발 방지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코오롱캐피탈 자금담당 상무(CFO) 정 모씨(45)는 지난 98년12월부터 지난 6월 중순까지 회삿돈 470여억원을 몰래 빼돌려 주식에 투자했다가 날린 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조사 결과, 정씨는 회사자산인 머니마켓(MMF) 등 수익증권과 단기사채 등을 몰래 팔아 472억원을 빼돌린 뒤 주식 선물 옵션 등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힌 것으로 밝혀졌다. 임원의 업무처리에 대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시스템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자금이 장기간 유출되는 범행이 가능했다고 금감원 관계자는 말했다.
또 최근 발생한 우리카드 법인명의 예금계좌 부당인출사건은 카드사 관계자들이 대거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금융계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혔다. 경찰이 사건 용의자로 지명한 4명중 2명이 우리카드 박모 과장과 오모 대리다. 금감원 조사 결과, 회계담당 박모 과장과 자금담당 오모 대리는 우리카드에서 400억원을 무단 인출, 선물 옵션 등에 투자했다가 363억원의 손실을 입혔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부서장의 승인없이 법인인감을 사용, 예금계좌 개설 신청서를 작성하는 등 법인의 인감 관리가 소홀했던 것이 사건의 원인이었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또 대차대조표 신용카드 대여금 계정과 보조 원장에 147억원의 차이가 발생했음에도 일일 감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진 탓에 이를 확인하지 못한 것도 사건의 빌미가 됐다.
또 지난 4월 공금을 횡령하고 중국으로 달아난 동부생명 김모 이모 대리 및 조모 사원은 거래인감을 도용해 법인계좌를 임의개설하고 자금이체승인에 필요한 책임자카드를 도용하는 방법을 통해 45억원의 회삿돈을 챙긴 협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법행 동기는 한탕주의의 만연과 금융기관 직원들의 장래에 대한 불안 심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리카드 박모 과장과 오모 대리는 투자회사까지 차려놓고 주식 등에 마구잡이식으로 쏟아 부었고 룸사롱과 카지노에도 수시로 출입하면서 수억원을 날렸다. 산업은행 간부사원은 친지와 직장동료의 돈을 모아 주식 거래를 하다가 손실을 입힌 것이 범행 동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금융사고가 회삿돈을 무더기로 빼내는 횡령사고라면 새마을금고에서는 대출비리를 저지르는 사례가 빈번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달 5일 서울 모 새마을금고에서 대출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협의로 이 금고 경영진 모두가 구속됐다. 같은 날 안양소재 새마을금고에도 금고에 3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협의로 금고 이사장과 직원 한 명이 구속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 사고는 올 들어서만 20건에 금액으로도 250억원이 넘는 등 불법대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 내부통제시스템 있으나 마나
최근 발생한 대형 금융사고들은 전자화돼 가는 첨단 금융거래 관행에 내부통제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이를 갖춰 놓고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측면이 많다.
게다가 감독당국의 철저하지 못한 관리감독과 회계법인의 윤리기강 해이도 한 몫 했다는 지적이다.
코오롱캐피탈의 경우 정모 상무가 98년부터 회사의 수익증권을 팔아 다른 증권사 계좌로 옮기는 불법행위를 수백차례나 저질렀음에도 내부적으로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특히 5년 동안 이 회사를 감사해온 삼일회계법인이 이를 밝혀내지 못한 것은 감사능력을 떠나 윤리의식에 비난을 면키 어렵다. 코오롱캐피탈을 인수한 하나은행이 불과 이틀 만에 정 상무의 불법을 밝혀냈는데 국내 최대회계법인이 5년 동안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 관한 비난의 화살은 감독당국도 예외일 수 없다. 금감원은 지난 2001년 7월이후 코오롱캐피탈에 대한 검사를 단 한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 검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서류상으로만 점검하는 등 검사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감독당국의 무관심이 금융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인 곳이 새마을금고다. 새마을금고는 행정자치부 소속 기관으로 행자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받고 있어 재정경제부 소속 금감원의 감독하에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새마을금고연합회가 금고에 대한 자체적인 감독 및 검사권을 행사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아닌 연합회 자체에 감독 권한이 주워지다 보니 감독 및 검사가 객관적이고 철저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 통제시스템 재점검하고 윤리의식 강화해야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계가 내부통제시스템 점검에 들어갔다. 금감원도 금융기관들이 자체검사를 철저히 하도록 유도하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금융사고를 예방하려면 내부 감시 인력의 확충과 원칙적인 검사 등을 통한 감시 기능의 실질적인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제시스템의 구축과 강화도 중요하지만 통제기준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카드의 횡령사건도 기본적인 내부통제기준을 지키지 않아 비롯된 것”이라며 “윤리의식 강화가 선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기진 기자 hkj7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