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이 넘도록 경쟁력 제고를 부르짖어 왔으면서도 아직 동일한 과제를 안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는 기업가치극대화 이외의 목적으로 금융기관의 경영에 간섭해온 외부영향력의 존재일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관치금융이다. 이는 우리의 경제발전단계에서 선택한 방법이었으며 긍정적 효과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치금융의 행태도 변해 왔다. 과거에는 산업정책의 수행을 위해 금융기관의 경영을 지시감독하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환경에 대응하려는 사기업인 금융기관의 역동적인 행위를 규제라는 수단을 통해 억제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금융기관의 경쟁력은 누가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퇴출위협이 상존하는 치열한 경쟁환경하에서 살아 남은 자들만이 보유하게 되는 고귀한 자산이라는 것을 우리보다 앞선 국가들의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융산업 경쟁력제고를 위해 금융기관의 자율과 경쟁에 기반을 둔 책임경영체제를 추구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이를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관치금융의 잔재를 제거함으로써 경쟁력 제고의 유일한 수단인 자율과 경쟁을 도입하려 하고, 경쟁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로를 다양화하고 있다.
진정한 책임경영체제의 확립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우선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야 하는 과제는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결정과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환경의 조성일 것이며, 이를 위해 아직도 거론되고 있는 관치금융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는 것이다.
관치금융의 수준과 행태가 과거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의 간섭을 없애려고 모두가 노력하더라도 구조적으로 관치금융이 완전히 제거되기 힘들고 따라서 금융기관의 경쟁력 제고 노력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관치금융의 구조적 원인은 우리나라의 금융규제 기본방식이 열거주의(positive system)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열거주의란 특정 금융기관이 무슨 업무를 할 수 있는가를 각 해당 법에 일일이 열거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법에 열거되지 않은 신상품을 취급할 때는 법을 바꾸거나 금융감독기구의 특별허가를 얻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증권거래법은 우리나라에서 증권업의 영위는 9가지로 정의된 유가증권 만을 대상으로 법에 정해진 업무와 법에 열거된 부수업무만 하도록 정해져 있다. 법에서 정의한 형태와 유사하지만 상이한 신종상품을 설계하면 취급이 금지되거나 감독기관의 특별허가를 얻어야 취급이 가능하다.
이러한 열거주의에 의한 금융규제는 경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고객위주의 신상품을 많이 만들어 낼수록 즉 혁신적인 활동이 활발할수록 공무원들을 더 만나야 하고 국회의원에게 가서 아쉬운 소리를 더 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열거주의는 금융기관을 획일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혁신을 통해 차별화하려는 금융기관들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할 경우가 대부분이며, 관련 공무원과 국회의원의 시간을 허비하게 한다.
열거주의 법체계로 인해 우리나라의 법개정 횟수는 유난히 많다. 증권거래법은 1962년 제정 후 2000년 1월까지 22회나 개정되었고 90년대의 10년 동안에만 13회 개정되고, 증권거래법 시행령은 20회, 시행규칙은 9회나 개정되었다. 지금도 새로운 상품 및 업무행태에 대비한 법개정이 기다리고 있다.
동태적인 환경에서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포괄주의(negative system) 규제방식이 필요하다. 포괄주의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이나 금융정책적 측면에서 금지되는 업무만 열거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해주는 방법으로 사기업의 창의성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비해 영미국가의 금융산업 경쟁력이 높은 근본원인으로 포괄주의 규제방식이 지적되는 것은 이제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분적으로 규제방식을 포괄주의로 바꾸자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진척사항은 만족스럽지 않다.
금융규제의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금융기관들의 실질적인 책임경영체제가 가능해지며, 금융인프라의 확충, 인사권의 실질적인 독립 등의 새로운 조치들이 경쟁력제고의 목적과 연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거듭나고자 하는 금융산업에 대해서 규제체제의 변화가 강조되어야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듯하여 우려된다. 최근 기관별로 분리되어 있는 금융관련법의 통합을 목적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통합법의 입안에서도 이러한 사항이 충분히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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