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저축은행(이하 저축은행) 업계에 ‘구조조정’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16일 제주도에서 열린 저축은행중앙회 최고경영자 세미나에 참석한 금융감독원 유병태 비은행검사국장은 “지난 회기에 저축은행의 순이익은 전년도에 비해 약간 증가하긴 했지만 자산건전성은 여전히 취약하고 불법대출 기관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어 이에 대한 감독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최근 일부 저축은행이 부실대출을 타인 명의를 이용해 정상대출로 둔갑시키는 수법으로 부실을 숨겨 왔다는 지상 보도는 그 동안 루머수준에 머물렀던 의혹이 결국 사실로 드러나면서 불똥이 업계 전체로 확산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실제 업계 일각에서는 소액신용대출 부실로 시름하고 있는 저축은행을 금융당국이 자산건전성 강화 등을 통해 옥죄면서 구조개편을 유도하지 않겠냐 전망하고 있다.
■ 영업시장 환경 악화 = 지난해 10월 대부업법 시행으로 금리상한선 66%내에서 대부업이 양성화되자 일부 일본계 대부업체들을 포함, 기업형 대부업체들이 저축은행의 주요 경쟁상대가 됐다. 저축은행들이 안정적 수익운용보다는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고 앞다퉈 고금리 대출상품 시장에 뛰어들면서 금융계에서 저축은행이 차지하는 포지션이 애매해진 것이다.
원래 소액대출을 공격적으로 펼치기 전 대부분 저축은행들은 대출금리를 14%∼16% 사이에서 안정적으로 운용했다. 은행권 바로 아래에서 급전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그야말로 서민금융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수 진작 차원에서 정부의 권고와 맞물려 소액 신용대출을 늘리면서부터는 기관의 성격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시장의 경쟁도 치열했다.
대출금리 10%대 시장은 시중 은행권이, 20%대는 카드사와 캐피탈사, 30∼40%대는 시티파이낸셜 등 미국계 캐피탈사와 할부금융사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저축은행들이 힘을 발휘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또한 저축은행의 소액 신용대출 상품이 위치하고 있는 40%∼60%대 시장에서는 기업형 대금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저축은행이 패자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전국 네트워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축은행 뿐만 아니라 신협, 새마을금고 등 서민형 금융기관들이 최근 2년새 6∼20% 감소한 것도 저축은행 위기의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146개에 달하던 저축은행들이 20.5%가 줄어 현재 114개사가 영업중이다. 전국에서 저축은행의 시장 인지도는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기감의 탈출구로 상당수 저축은행들은 ‘안정형’보다는 ‘공격형’ 자금운용을 선택하고 있다. 고위험 고수익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으로 난국을 돌파해 보겠다는 것이다. 최근 수신 금리의 인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소액신용대출의 후유증도 한 몫했다. 상당수 저축은행들이 소액대출의 부실액이 상당한 데다 도박처럼 한번 고금리를 맛본 이후 ‘금리불감증’ 증세까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이 고수익 부담으로 쫓기듯이 공격적으로 자금을 운용하게 되면 잠재부실 리스크도 그만큼 상승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부동산 투자는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현 정권 특성상 부동산경기 위축이 장기화될 전망인 데다 저축은행 내 프로젝트 파이낸싱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재무제표 악화와 불법영업 꿈틀 = 본지가 서울소재 저축은행 1분기 실적을 조사한 결과, 교원나라저축은행 등 일부 저축은행을 제외하고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회기의 이들 저축은행의 경영실적과 비교해 보면 큰 대조를 보인 것이다.〈표 참조〉
이처럼 영업실적이 저조하면서 불법영업도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금감원 조사결과, 일부 상호저축은행이 부실대출을 타인 명의를 이용해 정상대출로 둔갑시키는 수법으로 부실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들은 부실채권비율 상승 등으로 인한 감독당국의 적기시정조치(건전성 기준에 미달할 경우 경영개선권고 등을 내리는 조치)를 피하기 위해 이 같은 불법행위를 해왔다.
금감원은 이 같은 사례를 적발하고 연말까지 진행되는 상호저축은행 정기검사에서 이 부문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신의용 금감원 비은행검사국 상시감시1팀장은 “최근 2개 저축은행에서 이 같은 불법 사례를 확인했다”며 “일부 저축은행에 국한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시장에서 이 같은 사례가 많다는 얘기가 나돌아 현재 이를 집중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발된 저축은행은 기업이나 개인의 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장부상 대출이 상환된 것으로 처리하고 저축은행 임직원 등의 명의를 빌려 신규로 대출을 일으켜 정상대출인 것처럼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신 팀장은 “차명계좌의 대출이 또다시 연체돼 부실대출이 되면 또 다른 명의로 정상대출을 일으켜 일종의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8월말 22.6%인 총대출연체율도 축소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일부 저축은행들이 코스닥 기업주들의 주가조작 비용으로 목돈을 대출해 주고 손쉽게 고금리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당수 코스닥 기업주들이 영업수익보다는 주가 조작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을 이용, 주가 조작에 이용될 자금인 줄 알면서도 이들과 손을 잡고 필요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업계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 저축은행들이 1년에 한 두 번 정도 코스닥 기업주들에게 거액의 돈을 대출해 준다”며 “자사주 매입 형태도 있지만 일부는 소수로 차명계좌를 활용하기 때문에 조작 사실이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 정부의 정책적 배려 시급하다 = 경영난을 겪고 있는 저축은행의 영업활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A저축은행 사장은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적응하고 은행권과 공정한 경쟁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상호저축은행법 개정이 시급하다”며 “특별히 금지한 업무나 금지사항만을 규정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협 등 경쟁 금융기관들은 지점 설치가 자유로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끝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저축은행 이용자의 92%가 3000만원 미만의 예금을 거래하는 서민계층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신협과 새마을금고까지 취급이 허용된 비과세 상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또 저축은행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자본조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업공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먼저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 자산 3000억원 이상의 저축은행부터 상장·등록을 추진하고 리스크관리위원회를 두는 자산 2000억원 이상인 저축은행 순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2002년도 서울소재 저축은행 경영실적>
(단위 : 억원, 명, %)
홍성모 기자 hs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