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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은행家 집안 (4) HSBC 정해원 기업금융본부장 (上)

구영우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02-11-10 20:38

3대에 걸쳐 금융권 두루 포진한 金浦 鄭氏 일가

동경고등상업학교 졸업, 한성·韓銀 근무한 조부

금통위원, 외환銀 이사 등 4형제 모두 금융인

3代는 런던 벤쿠버 등에서 지점장으로 현장 누벼



평소 알고 지내던 HSBC 서울지점 정해원 본부장을 기자가 우연히 만났다. 금융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 은행권 내에서도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이 곳곳서 나타나고 있다는 대화를 나눴다.

정 본부장은 외국계은행에서 기업금융업무를 하면서 집안의 금융계 원로로부터 많은 경험담을 듣는다고 했다. 부친 형제분들과 과거와 현재의 주요 금융 현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으며 집안 형제들은 서로의 주특기를 가지고 교류한다.

여기에 참여하는 집안사람들 면면을 하나 둘씩 이야기 하다보니 가히 은행家가 집안이라 칭할만한 김포(金浦) 정(鄭)씨 일가의 금융 가계도를 그려낼 수 있었다.


그 시작은 정 본부장의 조부인 정덕유(鄭德裕)씨로부터 출발한다. 1895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정덕유씨는 그당시로는 드물게 유학을 떠났다. 지금의 동경대학 전신인 동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한성은행 평양지점에 입행하면서 은행원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해방이후 월남해 1950년 6월 12일 출범한 한국은행에 합류하게 되는 데 당시 구용서(具鎔書) 한국은행 초대총재와의 뗄수 없는 인연이 작용했다. 두 사람은 동경고상을 같이 다닌 사이.

구 총재는 정덕유씨를 만나 새롭게 태동하는 한국은행에서 일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한국은행 인사기록에는 정덕유씨가 50년 6월 8일자 총무부 인사과에 부임한 것으로 돼 있다.

어쩌면 금융계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을 지도 몰랐을 정덕유씨의 한국은행 경력은 아쉽게도 채 넉달을 넘기지 못했다. 전쟁중이던 그해 10월, 한국은행 숙소에서 머물던 정씨가 서울 수복이 되면서 후퇴하는 인민군에게 납북돼 버린 것. 한국은행은 53년 3월 31일자로 정씨를 퇴직처리했다.



그러나 정씨 일가의 금융이력은 2代로 이어진다.

장남 정인권(鄭寅權)씨는 상업은행에 입행해 부장까지 재직하다가 퇴직했다.

둘째 아들 정인완(鄭寅脘)씨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 43년 보성전문을 졸업하고 직업군인 생활을 시작해 61년 12대 재무부 차관을 지냈고 62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준장으로 예편한 후 정인완씨는 본격적으로 금융인의 길을 걸었다. 68년 재보험공사 사장으로 부임했고 71년에는 금융통화운영위원에 선임됐다.

이후 80년대까지 동양화재 사장, 대한재보험 사장등을 지내면서 국내 보험업계를 이끌었다.

다음으로 정덕유씨의 셋째아들 정인보(鄭寅普)씨가 맥을 이었다. 바로 HSBC 정해원본부장의 부친.

25년 출생한 정인보씨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바로 상과에 편입해 학업을 마쳤다. 이어 49년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행하면서 오랫동안 은행에서 잔뼈를 묻게 된다.

정인보씨는 뒤늦게 한은 총재의 권유를 받고 입행한 부친 정덕유씨와 짧은 기간, 직장 생활을 같이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입행 선배가 된 셈이다.

한은 입행 이후 홍콩지점을 만들고 비서과, 외국부 제1신용장과, 조사부 등을 두루 거치면서 금융인으로서의 기반을 착실히 닦았다. 특히 홍콩지점, 외국부 등의 근무경력은 추후 ‘元祖’ 국제금융통으로 불리게 될 그의 금융 경력의 초석이 됐다.

67년 외환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뉴욕지점장, 인사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업적과 성과를 올렸다. (그 뒷이야기는 추후 살펴보기로 한다)

하지만 정인보씨도 은행원으로서의 꿈인 은행장 목전에서 쓴 잔을 마신다.

80년 군사정권 교체기에 뉴욕에서 미주본부장(이사)으로 일하고 있던 그는 81년 어쩔 수 없이 퇴직해야만 했다. 그때의 좌절과 충격의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갔다.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후배 은행원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반듯하게 큰, 양반 스타일로 어떠한 경우라도 화내는 법이 없이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며 “그 이면에는 치밀한 합리성과 냉정함을 갖고 있었지만 절대 표내지 않았다. 믿고 따를 만한 몇 안되는 훌륭한 선배였다”

은행생활을 접은후 정인보씨는 일신제강, 영풍광업, 동화기업등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했다.

넷째아들 정인경(鄭寅景)씨 역시 학교 졸업후 한일은행에 입행해 마치 가업을 이어가듯 은행원이 되었다. 그러나 2~30년 전 종종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했던 연탄가스 사고로 일찍 작고했다.

여기까지가 김포 정씨의 2代에 걸친 금융인 가계도다. 지금 현직에서 국제금융인으로, 일성 지점장으로, 채권 전문가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3代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연재한다.



구영우 기자 ywku@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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