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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컬럼] ‘분노의 포도’ 익지 않도록

김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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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2-11-0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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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IMF사태가 시작될 무렵 존 스타인벡의 걸작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화제로 삼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 소설이 화제가 된 것은 심각한 불황과 경제 및 산업구조의 혁신에서 빚어지는 참상을 이 작품만큼 실감나게 묘사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제부터 우리도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스타인벡은 미국 오클라호마의 정든 땅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오는 빈농 행렬에 동참,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이 작품은 이 때의 생생한 체험들을 근거로 하여 쓴 것으로서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이 작품으로 38세인 1940년 퓰리처상과 미국 출판협회 상을 받았고, 1961년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또 이 작품은 헐리우드의 명감독 존 포드에 의해 영화화되어 전 세계의 많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한 시대의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에선 스타인벡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분노의 포도’ 다시 읽기가 한창이라고 한다. 이 독서운동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는 스타인벡이 현장을 취재할 때 그와 동행하여 오클라호마 피난민들의 참상을 카메라에 직접 담은 호레이스 브리스톨과 여성작가인 도로테아 랭의 사진전을 개최,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다.



IMF사태 완전 극복했나



‘분노의 포도’ 다시 읽기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요즘 돌아가는 국내사정을 볼 때 “과연 우리가 IMF사태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를 자주 자문해 보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외국인에게 매각, 금융개혁의 효시처럼 인식돼온 제일은행매각은 인수자의 정체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잇고 있는 가운데 인수자금 속엔 일본자본도 포함됐다하여 잡음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가하면 정권의 임기가 끝나 가는 지금도 은행합병 논의는 원칙과 기준이 여전히 모호한 가운데 계속되고 있다.

국내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현 정부가 채택한 부동산 활성화와 카드사용확대 조치는 정권말기에 접어든 지금 새로운 문제를 잉태하는 형국이다. 부동산 투기지역이 이젠 강북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며, 신용카드의 경우는 사용한도를 훨씬 넘는 카드 빚으로 인해 신용질서의 붕괴와 예측불허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폭발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고 있다.

이 같은 개인부채 문제해결을 위해 빚 탕감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나 이는 낭비하다가 진 빚까지 탕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할 뿐 아니라 자칫 금융의 도덕성이 파괴되게 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양상이다.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 꾸준하게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 깔려있는 온갖 모순들을 실감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우리도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했지만 당시의 고통이 모두 끝났다고 자부할 수 있을지 아직은 의문시되는 점이 많다. IMF사태의 원인이 됐던 많은 인자들을 우선 급한 대로 수습은 했지만 경제계 내부의 새롭고 건전한 질서와 선진국과 같은 정부와 경제계간의 관계정립은 아직 마련하지 못한 단계다. 이런 여건에서 서둘러 안주해선 곤란하다.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뤄놓은 숙제 임기 전에 끝내야



‘분노의 포도’에서 스타인벡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심성을 가장 쉽게 황폐화시키는데는 경제적 빈곤 만한 것이 없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정든 고향 땅에서 추방당하듯이 쫓겨나 무작정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지만 새로이 자리잡은 곳은 질병과 기아, 폭력과 착취만이, 그리고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고난들이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모여든 25만여 명의 난민들의 감정은 끝내 성냄으로 변해 갔고, 건조하고 넓은 캘리포니아의 들판에 계절에 맞춰 주렁주렁 맺어진 포도열매는 그들의 절망과 노여움을 아는 듯 성난 ‘분노’처럼 익어가더라고 그는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IMF고통을 너무 쉽게 넘긴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목전에 놓여 있다. 경제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또 현 정권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미뤄놓은 숙제들을 완료하자.

<주필>



김병규 기자 bk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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