婦 이지점장…MBA출신 베테랑 영업우먼
외환은행의 강경문 부부장(現 현대종합반)과 이경희 지점장(現 개포동 지점) 부부는 은행권에서 몇 안되는 부부커플이다. 더욱이 IMF 한파를 이겨내고 현재까지 은행에서 함께 근무하는 소수의 부부 은행원이지만 이에 따른 고충과 어려움도 많았다.
강부부장은 지난 98년 이후 지금까지 현대채권만을 담당한 유일한 사람이다. 물론 이연수 前 부행장이 있었지만 은행을 떠난 뒤 최고 고참이 된 것.
특히 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동안 강부부장은 여름 휴가는 물론 주말을 은행에 반납했을 정도로 현대 문제 해결에 몰두했다. 현대는 기업 자체의 문제보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치는 영향이 컸고 이에 따라 언론은 물론 당국에서도 관심이 지대해 매일같이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00년 5월 현대상선이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다시 한번 강부부장의 생활은 현대와 같이 하게 됐다.
이지점장 역시 힘든 지점 생활을 보내야만 했던 것은 마찬가지. 외환은행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가장 큰 시련을 겪은 곳은 바로 지점이었다. 인력이 대거 빠져나가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지점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장이 근무했던 지점 중 일원동 지점은 수익성 악화로 폐쇄됐고 뉴코아백화점 지점은 근무 환경 악화로 여직원들이 줄줄이 떠났다. 그나마 지금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개포동 지점은 조건이 좋았다.
이지점장은 오자마자 대대적인 지점 보수 공사를 요구하는 등 파격을 보였다. 언제 지점을 이동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용의 부담을 떠안는 것이 상당한 무리수이었지만 필요한 비용은 적시에 충분히 투입해야 실적을 올릴 수 있다는 소신이었다.
사실 이지점장의 오기와 배짱은 은행내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지난 93년 강부부장이 LA지점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에 은행의 배려로 자비유학을 가서 MBA를 마치기도 했다. 당시 이 지점장의 나이는 40을 바라보던 때. 낯선 땅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늦깎이 학생 생활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부창부수. 강부부장도 ‘뚝심’이라면 외환은행 내에서 일인자다. 말이 쉽지 3년이라는 세월을 새벽에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일은 체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팀에 속했던 특전사 출신의 한 부하 직원이 부부장을 따라 밤낮이 없이 일을 하다 중간에 포기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강부부장도, 이지점장도 자신들이 어려운 생활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동료와 선배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부부장은 “많은 동료, 선후배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을 잊은 채 일에 몰두했다”며 “더욱이 당시 이연수 부행장도 퇴근을 모르고 현대 살리기에 나서는 직원들을 독려하는 등 일은 힘들었지만 사기는 높았다”고 말했다.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