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쟁점은 역시 동일인 지분한도 상향조정과 이에 대한 의결권 문제로 압축된다.
정부여당이 제시한 은행법 개정안은 동일인 지분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상향조정하되 올라간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것.
지분을 보유하도록 하면서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정신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이같은 발상을 하게 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보인다.
은행민영화, 즉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미루어 짐작이 된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지배에 따른 폐혜와 반대여론을 우려해 이처럼 지분한도는 올리되 의결권은 제한하는, 모순된 논리의 고육지책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놓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는 기자의 심경은 참담하다.
이 문제가 제기된 게 언제부터 였던가. 사실 이는 수십년 계속된 해묵은 과제이다.
기자가 알기로는 은행주인찾아주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경계, 은행경쟁력 제고등 표현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주제로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됐었다.
한때는 금융발전심의회를 통해 결론에 이르는 듯한 적도 있었고, 관련 공청회만도 수없이 했었다.
그러나, 은행경쟁력제고 및 주인찾아주기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라는 상반된 논리가 맞부딪치면서 결론을 도출하는데는 번번히 실패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돌연변이(?) 개정안’을 가지고 또 다시 국회에서 여야가 격돌한 것이다.
때 맞춰 경실련과 일부 경제학자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나섬으로써 해묵은 과제가 새삼정초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속시원한 해법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딜레마다.
문제는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를 영원히 ‘가지않은 길’로 남겨둘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여당이 고육지책을 들고 나온 것도 바로 이런 현실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본다. 어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대한 일반론을 대입하면, 이 문제가 조속이 결말이 나야하는 당위성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금융산업의 근간, 더나아가서는 국가의 장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이같이 중요한 정책사항이 쉽게 결론에 도달한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졸속으로 처리된 정책이 가져올 대미지가 너무도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수십년동안 이 문제가 어떤 결론도 도출하지 않은 데 따른 국가경제적 손실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공청회다 뭐다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물리적 낭비를 했던가. 마뜩한 해결책이 없다고 해서 중차대한 문제를 그대로, 현상유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떤 정책이 난산을 거듭하면서도 결론을 도출해야하는 것은 그 정책이 시행됐을 때의 긍정적 효과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은행법의 경우 은행의 경쟁력 제고등 은행산업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은행법의 경우 너무 오래 문제해결이 지연되다 보니 문제해결 지연 그 자체로 인한 손실이 시행착오로 초래될 그것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정작 걱정되는 것은 이 문제가 자칫 정당간 기세싸움의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표를 의식한 정치적 타협이나 흥정에 의해 졸속으로 처리되는 우를 범하지나 않을까하는 점이다.
숫적 열세인 여당이 ‘돌연변이’ 개정안을 내놓고 다수인 야당이 이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논의되는 정황이 그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묘한 시점이 이같은 우려를 증폭시킨다.
경실련과 일부학자들이 반대목소리를 내는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정책에 부합하는 정당내지는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전경련의 또 다른 목소리도 정치적 타협과 졸속처리의 우려를 높여주는 대목이다.
만약 이런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해 졸속 처리된다면, 과거 수십년 세월을 허비하고 막판에와서 정작 ‘개악’이라는, 시간낭비에 개악에 따른 폐해까지 가세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혹자는 지나친 걱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과거 정권말기에 노동관계법등 중요한 현안을 여야가 졸속으로 처리 함으로써 다음 정권에 들어와 심한 후유증을 앓은 예를 보지 않았던가.
그래서 얘기인데, 그럴바엔 차라리 수십년 기다려온 마당에 당장 결론을 내리는 것을 다시한번 유보하고 여야가 서로 다른 정책을 가지고 선거를 통해 심판받도록하는 것은 어떨까.
또 다른 이상론에 불과할까.
<이 양 우 편집국장>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