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떠났을까. 온갖 추즉이 난무한다.
그들의 말대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인가. 아니면 무슨 조사설, 지자제선거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골치아플 일(?)’에서 떠나기 위한 도피인가. 소문이 분분하다.
전자의 경우라면 우리는 몇년후 새롭게 변한 왕년의 CEO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스타들이 글로벌 경제 원산지인 미국에서 신산업의 패러다임을 직접 습득하고 국내에 이식시키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기대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한국의 정치 경제 구조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셈이 된다. 끊임없는 스타 흔들기, 굳건하게 버티는 재벌기업 2, 3세 등등 여러 모습이 겹쳐지면서 우상이 사라진 젊은 직장인들의 씁슬함도 보인다.
최소 1년에서 2003년 6월 이전에는 복귀한다는 말을 남기고 오는 2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인 KTB네트워크 권 사장.
한국종금시절부터 ‘M&A의 귀재’,’기업사냥꾼’등으로 불리우며 KTB를 인수해 벤처캐피털 업계를 주름잡던 그가 KTB네트워크를 세계 최고의 벤처캐피털로 육성시킨다는 계획으로 실리콘밸리에 간다.
하지만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권사장의 출국을 ‘재충전 기회’라기 보다는 ‘탈출’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증권사 설립 무산의 아쉬움, 여기에 계속 따라다니는 수사설 등의 악성루머가 그를 지치게 했다는 것. 여기에 얼마 남지 않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 신흥 부호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이를 부추겼다는 관측이다.
동네 아이들마저 알고 있다는 ‘박현주’라는 이름 세 글자. 그는 올초 권사장과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았다. 스탠포드대 유학인지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떠났는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지만 최근 국내 여러 행사에 자신의 존재를 내비치고 있어 국내 사업과는 끈을 완전히 놓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미래에셋증권 박 회장의 경우도 증권사 교환설, 검찰조사설등 악성루머로 곤욕을 치뤘고 김대중 정권과 지역이 같은 호남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권 연계설에 시달려 왔다.
권 사장과 박회장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IMF시절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던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은 사법처리를 피해 현재는 일본의 히토쓰바시대학에서 경영학 강의를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전 사장은 99년 휘청거리던 중앙종금 인수와 벤처투자 등으로 1년만에 1000억원의 흑자를 내기도 했지만 결국 지난해 6월 부도를 낸후 중앙종금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까지 걸려있는 초라한 모습이다.
이들 3인은 IMF시절의 혼란기 속에서 벤처열풍과 함께 등장한 월급쟁이 출신 금융기관 CEO라는 공통점으로 주위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떠났다. 권사장과 박회장의 경우 외적환경 변화에 의해 떠난 것이 아니라 재충전과 세계화 구상의 기회로 삼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한창호 기자 ch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