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가격자유화는 보험사간 가격인하 경쟁과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 등을 촉진시켜 보험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확대시키는 등 소비자 이익 증대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나, 한편으로는 표준화된 보험, 특히 자동차보험의 가격경쟁 촉발로 손보사의 수익기반 붕괴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보험가격 자유화 이후 손해보험 시장을 전망해본다. <편집자주>
금감원은 지난해 99사업연도 시작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보험가격자유화 일정을 발표했다.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실시한다는 것이었는데, 시장경쟁원리의 조기정착을 통한 보험가격과 서비스의 차별화로 보험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보험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였다.
■경기회복 불구 전망 불투명
특히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보험가격 산출체제를 개편, 국제적 정합성을 확보해 실질적인 가격과 서비스의 차별화를 도모토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가격자유화의 일정을 앞당김에 따라 초래될 수도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해약환급금의 최저한도를 정함으로써 보험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 표준해약환급금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감독목적상 일정수준 이상으로 책임준비금을 적립토록 함으로써 과열경쟁을 방지하고,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인 표준책임준비금 제도도 도입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업계는 4월 일반보험, 8월 자동차보험의 부가보험료 자유화를 앞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2000사업연도 전망도 밝은 편이 아니다. 전반적인 경기 회복으로 FY2000에 일반보험과 장기보험의 성장세가 예상되지만 보험가격 자유화에 따른 요율인하 경쟁 가속으로 소폭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손보사들은 경영전략을 시장점유율 확대 경쟁보다는 재무건전성 강화를 통한 경영효율 향상과 수익성 증대에 맞춰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손해보험 중에서도 일반보험의 경우 부가율을 중심으로 경쟁을 유도하는 순율제도가 시행되므로 가격자유화로 인한 요율인하 압력에 대비, 순보험료 보다는 부가보험료 인하를 통해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각 사들은 적정한 영업보험요율과 사업비율을 산출할 수 있도록 위험별·계약자별로 통계를 구축해 경쟁력 있는 적정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가격자유화의 시행은 글로벌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시행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가격 자유화의 흐름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패러다임의 전환여부에 따라 생존이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손해보험을 둘러싼 최근의 사회경제적인 상황은 정보화와 국제화라는 거시적인 변화에 경제성장률의 둔화와 소득 양극화라는 미시적 변화가 동반하고 있는 국면이다. 정보화와 국제화의 큰 흐름은 금융기관의 기존업무관행을 바꾸면서, 정보화를 통해 확충된 업무능력을 바탕으로 업무영역에 대한 규제완화와 가격자유화라는 경쟁률의 변화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심화될 ‘부익부 빈익빈’
손보업계는 비중이 적은 일반보험에 비해 자동차보험의 부가보험료 자유화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자동차보험의 시장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간 가격경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가격인하에 초점이 맞춰질 경우 수입감소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보험료 인하 폭에 따른 내년도 자동차보험 수입을 예측해보면 업계 전체가 보험료를 3%정도 인하할 경우 전체 자보 수입은 대략 4조6000억원 정도로 축소될 것으로 추정된다. 또 만약 5% 인하할 경우에는 4조5000억원이 줄어든다.
따라서 자동차보험 시장규모 축소는 단순히 손보사의 경영악화라는 측면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는 만큼 손보사의 비합리적인 가격경쟁은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특히 가격자유화 이후 자동차보험의 시장집중도가 심화돼 보험회사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들어 자동차보험은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고객유치를 위한 부가서비스 등의 증가로 사업비가 크게 늘어나 자보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보험소비자들의 자보 구매형태도 가격을 비롯해 서비스, 재무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보험회사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가격자유화가 시행되면 위험세분화를 통한 가격결정이 가능하게 되고 이에 따라 위험도가 높은 계약자의 경우 높은 보험료가 책정돼 경제적인 부담이 가중, 비자발적인 무보험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손보업계간 건전한 가격경쟁이 선결과제로 등장할 전망이다. 시장점유율 선점을 위한 파괴적 가격경쟁이 이루어질 경우 보험회사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것이고 이는 경쟁력 약화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보험회사는 통계시스템을 보완해 위험집단별 적용요율을 부과하고 요율의 적적성 여부를 검증하는 일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도록 가격 산정능력을 고도화해야 한다. 자유화 시대의 시장환경은 보험회사에게 언더라이팅 기능의 전문성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손보사들은 언더라이팅 기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 전문 언더라이터를 시급히 양성할 필요가 있다.
최근 보험개발원은 각 손보사에 제시할 순보험료율을 산출, 인가를 받았다. 따라서 각 손보사들은 개발원이 산출한 순보험료율에 자사 실정에 맞는 부가보험료를 더해 보험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부가보험료는 사업비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업비율이 낮은 회사가 가격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업비에서 여유가 있는 회사가 부가보험료를 낮게 산출해 보험가격을 인하할 경우 그렇지 못한 회사는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칫하면 손보시장이 망가질 우려도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서바이벌 게임의 시작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가보험료가 자유화되면 과당경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지급여력비율 등 재무건전성이 강한 회사의 M/S는 확대되는 등 양극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결국 일부 회사는 도태될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12월말 현재 11개 손보사 가운데 3개사가 적자로 전환된 상태다. 지급여력비율의 경우 해동을 제외한 10개사가 기준치인 100%를 초과한 상태이지만 삼성화재 등 5개사를 제외한 나머지 5개사가 200% 미만을 기록, 충분한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업계 일각에서는 보험가격 자유화 이후 일부 손보사의 경우 차별화된 영업전략을 펴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영국의 리젠트그룹에 매각된 해동화재처럼 사이버 보험사로 특화하거나 자동차보험 전문회사 등으로 규모를 축소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대형사에 흡수되거나 규모가 비슷한 보험사끼리 합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시대로 진입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사업비를 줄이기 위해 모집비용이 많이 드는 기존 판매채널보다는 직급영업이나 사이버 마케팅, TM이나 DM 등이 급부상하는 등 판매채널의 변화도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기존 영업조직의 반발이 거세지고, 나아가서는 기존의 모집질서가 급격히 붕괴될 우려도 있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국 보험가격 자유화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경영전략을 세워나가고 ‘무리수’를 두지 않는 손보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벌 게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성희 기자 shfree@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