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매각 조건>
이번에 체결한 것은 투자약정서(TOI)이기 때문에 앞으로 추가 실사를 거쳐 연말쯤 본계약이 성사돼야 최종 조건이 결정되겠지만 정부 발표에 따르면 뉴브리지는 5천억원을 투자해 제일은행 지분 51%를 인수하되 향후 경영정상화 정도에 따라 2년간 2천억원을 추가 출자할 수 있다는 의향을 밝혔다.
우리정부는 총발행 주식의 5%(정부보유 주식의 10%)에 대한 신주인수권을 확보했고 향후 2년내(대우여신을 포함한 워크아웃 여신은 3년) 부도가 발생하는 여신에 대해서는 모두 매입해 주고 여신 부실화로 은행이 대손충당금을 추가 적립해야 하는 경우에는 정부가 이를 적립해줌으로써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뉴브리지는 제일은행을 인수한 뒤에도 영업기반이 유지되고 거래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원활히 되도록 금융감독원 기준으로 고정이하 여신을 제외한 정상 및 요주의 기업여신은 모두 인수하되 장부가 대비 평균 96.5%의 가격으로 매입하기로 했다.
<제일은행 해외 매각의 의미>
서울은행 매각 실패로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대외 신뢰도가 떨어지고 국내적으로도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사태와 관련 `11월 대란설`이 유포되는 등 한국경제가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제일은행 매각성사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경제가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별다른 선택여지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제일은행은 이번 해외매각 성사로 부실은행 이미지에서 탈피, 우량은행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또 은행권 전체적으로도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제일은행이 다른 은행들에 자극을 줌으로써 은행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연 헐값 매각인가>
대다수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제일은행 해외 매각 성사 자체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몇가지 이유를 내세워 너무 싸게 판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헐값매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략 이렇다. 그동안 정부가 제일은행을 살리기 위해 부실채권 매입과 자본금확충 형태로 7조원에 가까은 돈을 투입해 클린 뱅크를 만들어 놓고 겨우 5천억원을 받고 51%의 지분을 넘긴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지난해 말 체결된 양해각서와 이번에 체결된 투자약정서 간에는 너무 차이가 있고 MOU에 비해 TOI가 우리측에 크게 불리하게 돼 있다는 것.
이들의 주장처럼 TOI가 MOU에 비해 우리측에 크게 불리하게 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현대그룹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조건이 아니면 이번 협상이 타결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클린 뱅크를 5천억원을 받고 팔았다는 주장은 논리적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제일은행이 클린뱅크가 아닌 부실은행이기 때문이다. 제일은행은 정부가 그동안 7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연말 국제기준으로 평가를 하면 다시 순자산이 마이너스로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우그룹에 대한 엑스포저만 3조원이 넘는다.
국내 일각에서 헐값에 팔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과 달리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뉴브리지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않는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서울은행 인수를 포기한 HSBC의 선택이 합리적이지 않느냐는 지적이 많다.
<남은 과제>
앞으로 실사를 거쳐 연말쯤 본계약이 체결되면 제일은행은 완전 외국계 은행이 되겠지만 몇가지 남은 과제가 있다. 고용조정 문제가 일차 해결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제일은행 노조와 금융노련은 금감위와 뉴브리지 캐피털간에 인력정리와 관련된 이면계약이 있다면 이를 공개해야하고 만약 인위적 고용조정이 추진된다면 극력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금감위나 뉴브리지측은 급격한 인력감축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그렇더라도 경영합리화 차원의 1~2급 상위직급자 감축은 불가피하다는 것은 대체적인 분석이다.
외국계 은행으로 변신한 제일은행이 과연 경쟁력을 갖춘 은행으로 재탄생할 지도 관심사다. 외국계 은행만 되면 자동으로 경쟁력을 갖게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투자펀드에 불과한 뉴브리지가 단기업적에만 급급할 경우 예상밖의 결과가 나타나고 이로인해 정부의 투자자금 회수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박종면 기자 myun@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