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기연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왼쪽)이 20일 열린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국회 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갈무리
이미지 확대보기한국수출입은행은 중동 정세에 따른 원유·핵심광물 자금 수요와 기업 규모별 차이를 대기업 편중의 원인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는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의 낮은 집행률뿐 아니라 재무 중심 심사, 대기업 대출 용도 분류, 단기 구매자금 위주의 운용 방식까지 문제가 제기됐다.
기금 확대에도 중소기업 몫 감소
20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한국수출입은행 국정감사에서는 공급망안정화기금의 대기업 지원 편중이 집중적으로 지적됐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기금 출범 이후 약 2년간 153건에 총 17조4000억원이 지원됐으며, 대기업 비중은 88%를 넘었다. 중소기업 몫은 1.8%에 그쳤다.올해 편중 현상은 더 심화됐다.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수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기금 지원액 약 8조1000억원 중 대기업 지원액은 7조3738억원으로 전체의 90.9%를 차지했다. 중견기업은 4259억원(5.3%), 중소기업은 1018억원(1.3%)에 불과했다. 중소·중견기업을 합쳐도 5277억원으로 전체의 6.5% 수준이다.
지난해 대기업 지원 비중이 85.5%, 중소·중견기업 비중이 14.0%였던 점을 고려하면 1년 사이 대기업 비중은 5.4%p 높아진 반면 중소·중견기업 비중은 7.5%p 낮아졌다.
공급망안정화기금은 2024년 시행된 공급망안정화법에 따라 핵심 원자재 확보와 수입선 다변화, 생산기반 확충 등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기업의 대규모 원자재 구매도 지원 대상이지만, 기금의 정책 효과는 집행액뿐 아니라 공급망 의존도 완화와 대체 공급 기반 확보 성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2030년까지 특정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관련 지표가 2024년 70.4%에서 올해 65.5%로 내려가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황기연 수출입은행장은 중동 위기에 따른 원유·핵심광물 긴급 수요에 대응하면서 대기업의 자금 이용이 많았다며 지원 프로그램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재무심사 문턱·우대보증 실적 부진
정부가 지정한 공급망안정화 선도사업자에 대한 지원도 대기업에 집중됐다. 안상훈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선도사업자 216곳 가운데 중소기업은 95곳, 중견기업은 62곳으로 전체의 72.7%를 차지했다. 대기업은 57곳(26.4%), 기타는 2곳(0.9%)으로 집계됐다.그러나 안 의원이 제시한 올해 9월까지의 선도사업자 지원 실적에서는 대기업이 전체 지원액의 91.4%를 차지한 반면 중소·중견기업은 8.6%에 머물렀다. 김태년 의원이 제시한 별도 누적 자료에서도 중소기업 선도사업자의 지원액 비중은 3.1%에 불과했다. 김 의원은 중소기업 선도사업자 95곳에 대한 지원이 34건에 그친 점을 들어 최소 61곳이 기금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선도사업자를 선정했는데도 수은이 상담과 신용평가, 대출심사, 내부 여신협의 등을 거쳐 재무 여건을 반복적으로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전협의에서 탈락한 기업의 기록이 충분히 남지 않는 문제를 제기하며 기술성과 공급망 기여도를 반영한 재평가, 배제 사유의 심의위원회 보고를 요구했다.
중소·중견기업의 지원 문턱을 낮추기 위한 별도 프로그램도 성과가 제한적이었다. 지난해 11월 도입된 500억원 규모의 특별한도 프로그램은 올해 9월까지 6개 기업에 144억원을 지원해 소진율이 28.8%에 그쳤다. 안상훈 의원은 지원 한도가 자기자본 범위로 제한되면서 재무여력이 부족한 기업일수록 이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과 연계한 공급망 우대보증 프로그램 역시 지난해 1월 도입 이후 올해 9월까지 지원 실적이 없었다. 황 행장은 최근 1건의 실적이 발생했다고 설명하면서도 성과가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황 행장은 "기금 건전성과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며 중소·중견기업 지원 목표와 자기자본 요건을 추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 공급망안정화법 개정으로 기금의 투자 대상이 확대됐지만, 관련 조직과 인력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투자·구매자금 심사 기준 공방
대기업에 대한 개별 지원의 심사 적정성도 도마에 올랐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LG에너지솔루션의 해외 리튬 확보 사업에 대한 기금 대출을 거론하며 투자 성격의 거래를 구매자금으로 분류한 것이 적절했는지 따져 물었다.LG에너지솔루션은 2024년 7월 호주 리튬 광산업체 라이온타운과 장기 리튬 공급계약을 확대하면서 약 34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투자 계약도 발표했다. 전환사채는 향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으로, 일반적인 원재료 구매와는 다른 투자 성격을 갖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후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뒤 올해 2월 지분 전량을 매각해 약 800억원의 투자이익을 거뒀다. 회사는 매각대금으로 공급망안정화기금 차입금을 상환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기존 장기 리튬 공급계약은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김 의원은 관련 투자 계약이 공급망기금 출범 이전에 공개됐는데도 이후 기금 지원 심사에서는 구매자금으로 처리된 경위를 문제 삼았다. 투자자금과 구매자금의 심사 절차가 다른 만큼 실제 거래 목적에 맞게 심사가 이뤄졌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다.
황 행장은 당시 기금운용심의위원회에서 "투자자금으로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전환사채 인수가 장기 공급계약을 통한 핵심광물 확보와 연결돼 있어 구매자금으로 판단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기금 출범 전부터 관련 상담이 진행됐다는 점도 덧붙였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두 자금의 심사 절차와 위험관리 기준이 다른 점을 지적하며 재점검을 요구했다. 황 행장은 구매자금과 투자자금의 심사 절차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해당 거래의 대출 목적과 심사 적정성을 다시 점검해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거래의 지원이 부적정했던 것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투자 성격의 거래를 구매자금으로 분류한 심사 기준과 판단 근거가 쟁점으로 남았다.
단기 대출 쏠림·기금 간 중복 우려
공급망기금의 단기 구매자금 중심 운용 방식도 장기적인 공급망 안정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지 논란이 됐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핵심광물 분야 지원액 약 2조5500억원 가운데 74%가 원재료·광물 구매자금 대출에 집중됐다. 반면 해외 자원개발 지분투자 대출과 핵심광물·에너지 투자펀드 출자는 집행 실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매자금 대출은 원자재 수급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해외 광산개발이나 제련시설 확충처럼 장기간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단기 지원에 집중할 경우 특정 국가에 대한 공급 의존도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고려아연의 미국 테네시주 제련소 건설사업을 사례로 들며 수은의 금융지원 판단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행장은 고려아연이 공급망기금 활용 의향을 밝혀 협의를 진행 중이라면서도, 테네시주 사업은 심사 과정에서 검토할 사항이 많다고 설명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해외 광산 개발에 따른 장기간의 투자 부담과 광물 가격 변동 위험을 정책금융이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광물 지정과 품목별 공급 위험 평가, 민관 공동비축 근거를 마련하면 수은도 금융지원의 우선순위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 행장도 관련 정보가 확보되면 금융지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정책금융기금과의 역할 조정도 요구됐다. 정태호 의원은 공급망기금 지원의 약 30%가 첨단전략산업에 집중돼 산업은행의 첨단전략산업기금, 국민성장펀드 등과 지원 영역이 겹칠 가능성을 지적했다. 황 행장은 산업은행과 상반기까지 6차례 협의했으며, 하반기에는 협의체를 격상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다혜 한국금융신문 기자 dahyeji@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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