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나영 기자
최근 몇 년 새 국내 제약업계의 풍경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한 문장이 있을까. 기술보단 판결로 승부가 나는 시장. 기업들이 장삿속으로 법정에 서는 사이 환자들은 소송 비용을 대신 지불해야 했다.
최근 대법원 판결로 ’콜린알포세레이트 사태’가 일단락됐다. 법원은 효능·효과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약에 대해 선별급여를 적용하는 것은 정당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제약사의 반발로 시작된 5년여의 소송전은 결국 보건당국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콜린 제제는 노인성 인지저하나 경증 치매 증상 개선 목적으로 약 10년간 처방된 약이다. 다수 글로벌 연구에서 약의 임상 근거와 효과가 명확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음에도 국내에선 뇌기능 개선 약으로 널리 팔렸다.
건강보험료 청구 순위가 항암제 다음으로 높은 2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 있는 약이었다. 처방액은 2021년 기준 단일 성분만 5000억 원에 달할 정도다. 해외에선 건기식 수준에서 소비되는, ‘효능이 불분명한’ 약이 사회에 남용된 셈이다. 바꿔 말하면, 콜린 제제는 제약사들에게 ‘돈 되는 약’이었다.
결국 보건당국은 콜린 제제의 임상적 유효성을 재검토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0년 콜린 제제가 재평가를 통해 적응증을 유지하지 못하면 처방액의 20%를 반환해야 한다는 환수협상 조항을 신설했다. 약값을 고스란히 떠안았던 보험공단은 콜린 제제에 대해 선별급여 적용 방침을 밝히며 재정 관리에 나섰다.
제약업계는 즉각 소송으로 맞섰다. 80곳이 넘는 제약사들이 대웅바이오파와 종근당파로 나뉘어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었고 5년이라는 시간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건강보험 재정은 또 다시 침식됐다. 지난 2023년 기준 콜린 제제의 건강보험 처방액은 5600억 원에 이른다. 5년간 제약사 이익 실현을 위한 소송 비용을 국민이 내줘야 했던 구조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다. 약의 효과를 믿고 복용한 이들은 ‘임상 근거 부족’이라는 말을 뒤늦게 접하게 된다. 새로운 치료제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기존 제품 보호를 위한 소송으로 신약 출시가 지연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의약품에 대한 정보 비대칭이 여전한 환경에서 환자들은 여전히 ‘모르고 복용하는 소비자’로 남아 있다.
업계 관행으로 굳어버린 소송 문화는 콜린 사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특허 다툼, 급여 기준 변경, 적응증 확대 등 제약바이오 산업 곳곳에서 소송은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각종 소송에서 잘 이기는 게 경영 전략 중 하나로 자리잡은 실정이다.
물론 정부의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 여론이 악화돼서야 재검토하는 뒷북치기식 수습은 늦다. 효능과 근거가 명확한 약품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가나 급여 기준을 다시 구축하고, 기존 의약품의 안정성 및 유효성도 꾸준히 모니터링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인식 변화다. 제약바이오는 국민 건강을 다루는 공익 산업이다. 법정을 기회의 장으로 삼는 전략보다 임상 근거와 윤리를 기반으로 한 제품 개발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기업으로서 소송은 이익 수호를 위한 수단이자 합법적 권리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용을 환자와 국민이 대신 내줘야 할 이유는 없다.
김나영 한국금융신문 기자 steami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