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민 깃플 대표이사
최근 우연히 만난 한 핀테크 회사 대표이사로부터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들었다. 곧 계획됐던 투자 유치를 마무리짓는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막바지 절차가 남기는 했지만, 한 달 내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괜스레 반가움이 앞섰다. 우리 회사서 전하는 소식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심이 담긴 축하 인사가 절로 나왔다. 2022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투자 경색 현상으로 이미 여름부터 빙판길을 걷고 있었던 핀테크업계에서 오랜만에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반응은 비슷했을 것이다. 핀테크 생태계의 일원이라면 누구라도 두 팔 벌려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동안 상황이 어려웠다는 뜻인데, ‘위기 속에서도 기회는 있다’라는 격언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는 안도감도 크게 자리한 계기였다. 모두가 어려움과 마주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남다른 경쟁력은 곧 승부수가 되어 기존의 기조를 깨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해냈으니 말이다.
실제로 핀테크사에 있어 지난 한해는 그 어느때 보다 이름을 떨친 한해면서도, 그 어느때 보다도 어려웠던 한해였다.
우선 핀테크사는 올해 더 유명해졌다. 지난 2019년 도입된 규제샌드박스 시행 3년차로 괄목한 만한 성과를 많이 거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든든한 지원으로 혁신을 담은 서비스가 넘쳐났고, 그로 인해 금융소비자는 금융분야에서도 ‘서비스다운 서비스’를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국무조정실, 금융위원회 등이 발표한 2022년 1월 기준 규제샌드박스 승인 현황을 보면 금융혁신은 전체 632건 중 185건으로 29%를 차지해 산업융합 분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1사 전속주의의 예외를 둬 만든 온라인플랫폼을 이용한 대출비교 역시 대표적인 혁신금융서비스로, 여러 금융사의 예금 상품을 비교하는 온라인 예금상품 중개서비스에까지 다다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대환대출플랫폼’으로, 대출비교를 넘는 메기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명세의 뒤안길도 있었다. 투자 경색 등으로 존폐의 어려움에 놓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한여름부터 투자환경은 여리박빙(如履薄氷)이었는데, 계절이 변해 진짜 겨울이 온 현재까지도 계절감은 그대로다. 사시사철 계절 변화를 잊은지 오래라지만 ‘1년 내내 겨울’이라는 최악의 상황과 맞딱뜨려야 했다.
그 사이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고, 외형을 키우며 덩치를 키우는 전략을 차용하던 시장은 내실화를 꾀하는 쪽으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대규모 채용과 스톡옵션, 과감한 투자가 익숙했던 업계는 이제 전략을 바꿔 투자자의 심금을 울릴 ‘진정성 품은 지표’에 집중한다.
새삼 ‘사회적기업’ 역시 자생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기억하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단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어야 더 많은 사회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조건은 핀테크 역시 피해갈 수 없다. 핀테크 생태계가 의미가 부여된 취지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투자가 이어지지 않는 구조로 변했기 때문이다. 가능성으로 평가받던 시절을 지나, 실전에서 거둔 승패를 따져 묻고 무게추를 가늠한다. 디지털 시대라지만 왠지 핀테크 시장만은 가상보다 현실 공간으로 역행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지금, 핀테크는 메타(Meta, 가상)에서 했던 뜀박질을 유니버스(Universe, 현실)에서 한다. 경사지거나 움푹 패인 곳도 없고 흙먼지가 날리지도 않았던 트랙이 눈이 내려 바닥이 꽁꽁 얼어붙은 운동장으로 변했다. 여러 요인이 추가되면서 같은 속도를 내는 게 몇 배는 힘들어졌다.
마침 2023년 계묘년(癸卯年)은 검은토끼의 해다. 이쯤되면 우화 속 두 마리 토끼가 떠오른다. 본인의 그라운드가 아닌 수중까지 가 지혜로 간을 지킨 토끼와 수륙 반반 거북이 보다 늦게 결승선에 당도한 토끼다.
용왕님 앞에서도 당당한 PT 실력을 뽐낸 토끼에게는 아마도 데이터라는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확률과 통계 깜깜이로, 구간별 휴식 가능시간을 제대로 데이터화하지 못한 토끼는 홈 경기장에서 역량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진리라는 것은 꽤 많은 시기를 관통한다는 것이다. 고전 속 그때 그 토끼가 그랬듯 2023년 핀테크사가 시장 내에 녹록치 않은 투자환경을 극복할지 못할지는 ‘데이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투자환경은 이미 호재를 전하고 있다. 최근 기사를 통해 알려진대로 1조원 규모의 ‘핀테크 혁신펀드’가 열리는 것이다. 당초 5000억원에서 두 배나 늘어난 것이다.
결국 ‘누가’는 데이터의 역량이 됐다. 꽁꽁 언 핀테크 자금 경색을 녹이는 환경이 조성된 만큼 이를 마중물로 활용, 도약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안할 수 있는지를 평가받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영민 깃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