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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아파트 광풍과 한 억대 연봉자의 좌절

장태민

기사입력 : 2020-08-07 13:44 최종수정 : 2020-08-0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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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나이 50에 억대 연봉자가 된 지인 A씨.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오는 데 20년이 넘게 걸렸다. 그런 그는 요즘 들어 심기가 어지럽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이 이어지고, 최근 6.17, 7.10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뛰면서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급기야 A씨는 자신을 '억대 연봉 서울 하층민'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재산 목록에 아파트가 없기 때문이었다.

■ 하층 계급으로 몰락했다고 말하는 A씨

작년 12월 통계청 등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2019년 3월말 기준) 결과를 보면 서울 가구의 평균 재산은 5억 3,605만원이었다.

재산 중간값은 2억 6,410만원에 불과(!)했다. 서울 가구 절반 이상의 재산이 3억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의 중앙값은 9억원을 훌쩍 넘어 10억원을 향해 가고 있다.

내가 이 가계금융복지 통계를 내밀었을 때 A씨는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을 그냥 '하층 계급으로 추락한 억대 연봉자'라고 규정했다.

아파트 광풍이 분 뒤 서울 절반 이상의 가구가 신분 계급의 밑바닥에 있다고 했다.
'억대 연봉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 역시 그들과 같은 처지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느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없이' 사는 사람들은 A씨의 이같은 규정에 대해 화를 낼 지 모르겠지만, A씨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과 같은 사람은 '시민'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고 자조했다.

A씨가 2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얼마나 모았는지 알 수 없다. 친한 관계라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는 것은 '금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실 A씨가 현재의 지위까지 올라오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미래는 밝아보이지 않았다.

그는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나이가 된 자신에겐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했다.

연봉 1천만원대 후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2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직장인들의 꿈이라는 억대 연봉자가 됐다.

요즘은 아파트 값이 너무 오르자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가지지 못한 억대 연봉자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A씨 역시 아파트 값 급등으로 억대 연봉자가 무슨 소용이 있냐고 했다.

"20년 넘게 일해서 억대 연봉자가 됐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아파트를 사지 않은 제 잘못일 뿐입니다. 집값 폭등과 물가 상승으로 직장 생활도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 나마 일을 얼마나 더 할지 알 수도 없고..."

A씨가 언급한 물가 상승은 '자산 인플레이션'을 뜻한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엔 집값 상승분이 포함조차 되지 않지만, A씨가 가장 중시한 물가는 집값이었다.

자신의 재산 '포지션'에 아파트가 없다는 점, 그에게 남은 정년까지의 기간이 길지 않은 점 등으로 A씨는 아주 불리한 게임을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 역대 정부를 모두 뛰어넘은 부동산 광풍과 좌절한 A씨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일어난 엄청난 '자산' 인플레이션이 A씨를 절망하게 만든 주범이었다.

시민단체 경실련이 최근 KB국민은행 데이터를 이용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무서운 기세로 오른 아파트값 변화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다.

경실련이 1993년 이후 28년간 서울 아파트 34개 단지의 아파트(25평 기준) 가격 변화를 '정권별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상승폭(금액기준)이 단연 1위였다.

집값 상승률은 노무현 정부가 1위를 차지했다.

A씨는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들이 부동산 정책을 엉망으로 펼치면서 서민들이 올라갈 수 있는 계급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보고 있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경우 '단 3년'만 평가 대상에 넣었지만, 아파트값 상승폭은 압도적이었다.

올해 5월말 기준으로, 즉 문재인 정부 출범 3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53% 뛰었다.

임기 초 8억 4천만원 수준에서 13억원 가까운 수준으로 뛰었다.

경실련이 조사한 곳은 강남4구내 18개 단지, 비강남 16개 단지 등 총 8만여 세대의 아파트 단지였다.

문재인 정부 단 3년간 4.5억원이 올랐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에 오른 금액(7,800만원)의 6배에 가까운 것이다. '이명박근혜' 시절의 기간을 다 합쳐도 1억원이 채 오르지 못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임기의 절반 남짓만 이용해 역대 정부를 뛰어넘는 정책을 펼쳤다.

결국 현 정부 평가기간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1/3 밖에 되지 않지만 오른 금액이 6배에 육박한다. 따라서 단순히 분모를 동일하게 만들어서 비교하게 되면 10배 이상 폭등한 셈이 된다.

그리고 경실련의 통계 기준일(20년 5월) 이후 아파트 가격은 더욱 빠르게 올랐다. 이같은 역대급 아파트 '광풍'에 억대 연봉자 A씨도 좌절하고 만 것이다.

■ 가장 강력했던 포지션 '아파트'..성실한 바보를 인증한 A씨

경실련은 28년간 아파트값은 강남권 기준 평균 1.8억에서 17.2억으로 15.4억이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아파트 한채만 가지고 있는 경우 땀 흘려 일하지 않아도 15.4억의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28년간 전월세 무주택자는 전세금 마련에 따른 금융비용과 월세지출 등으로 자산 증가는 커녕 각각 3.2억, 4.5억원을 부담해야 했다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유주택자와 무주택자의 자산격차도 전세의 경우 18.6억원, 월세의 경우 20억원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다르다. 경실련이 KB국민은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지만, 정부는 이것과는 아주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7월 29일 국회에 출석해 "정부 기본 통계상으로 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14%, 주택은 11.3% 올랐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그러면서 "(아파트 값이) 국민 체감과 다르겠지만, 장관으로서는 국가가 공인한 통계를 말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경실련은 국토부와 한국감정원에 직접 서울아파트값 14% 상승 근거가 되는 아파트명과 적용시세 등 근거를 밝혀줄 것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했다고 했다.

A씨는 정부의 '상황 축소'에 대해서 분노한다.

그는 정부 인사들은 '복덕방에도 안 가냐'면서 왜 엉뚱한 통계로 사람 속을 긁느냐고 한다.

정부가 뻔뻔하게도 현실을 반영하지도 못하는 통계를 내세우면서 무주택자들을 우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분노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A씨는 '성실한 바보'로 산 자신의 인생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 뿔난 '1주택자' 보면서 마음 편치 않은 A씨

부동산 포지션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희비가 갈리고 있다.

A씨는 박근혜 정부의 비리에 분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표를 준 사람이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덕분에(!)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고 했다.

최근엔 1주택자들의 '데모'와 줏대없는 정부의 정책 스탠스 역시 A씨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

7.10 부동산 대책이 나온 뒤 서울 도심에선 정부의 부동산 조세 상향정책에 반대하는 데모가 이어졌다.

7.10 대책은 다주택자와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거래에 대해 조세 부담을 강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에 한해 종부세를 최고 6%까지 올렸다. 양도세와 취득세율도 2주택자 이상을 타겟으로 했다.

A씨는 1주택자의 조세 저항 시위를 '이기주의'로 규정했다. 우선 집값 급등으로 세금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지난해 12.16 대책에서 1주택자 종부세율을 0.5~2.7%에서 0.6~3%로 인상한 것은 '특수한 소수 계급'에 해당되는 사항인데다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21년 90→95%)과 같은 조치들도 정상화 과정으로 봤다.

공시가격이 실제 가격과 동떨어져 있는 현상을 바로 잡는 것 역시 지극히 정상적인 조치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1주택자들이 이미 많이 '먹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서울 아파트 값이 수억원 뛰었는데, 보유세 1~2백, 2~3백 늘어난다고 폭탄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세금을 많이 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주된 요인은 집값 폭등 때문이지요. 정부 정책실패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제일 답이 없는 사람들은 무주택자들입니다."

정부는 시가 15억원 1주택자가 부담하는 종부세 증감액은 6~50만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공시가격 현실화 대상이 되는 9억원 이상 주택도 전체 가구의 5% 미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A씨가 볼 때 이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우는 아이에게 젖 물리듯 대처할 것으로 봤다. 그런 과정에서 서울의 절반에 해당하는 무주택자는 완전히 하층 계급으로 안착하게 될 것으로 봤다.

■ A씨, 콜 하기 보다 다이하다

부동산 광풍이 초래한 '카지노 자본주의'에서 A씨는 지금 가격의 아파트에 대해 '콜'을 하기보다 '다이'할 생각이다.

아파트 보유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콜하고 있으나 A씨는 자신이 모은 돈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20년이 넘게 모은 재산에 빚을 내도 지금의 아파트 가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연봉 1억원을 받는 사람들이 매달 실수령하는 금액은 대략 640만원 수준이다. A씨의 재산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서울의 자산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A씨와 같은 사람들도 쉽지 않은 것이다.

A씨는 정부가 8.4대책을 통해 공급대책을 발표하긴 했지만, 그다지 믿음을 주지도 않았다.

정부가 추가로 13.2만호를 추가로 공급하는 안을 발표했지만, 실제 공급이 이뤄질 수 있을지 자신할 수도 없다고 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도 풀었던 그린벨트를 왜 풀지 않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이후 그린벨트는 거의 풀리지 않고 있다.

정부는 '미래세대'를 위해 그린벨트를 풀지 않겠다고 했으나, A씨는 '현재세대'가 살아야 미래세대도 살 수 있는 법이라고 했다.

A씨는 한해 신생아가 100만 내외로 태어나던 시대에 출생한 사람이다. 앞으로 신생아는 20만명대로 추락하게 된다. 집값과 교육비 등으로 없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기 힘든 세상이 된지 오래됐다. 아이 역시 부의 상징이 된 것이다.

사실 A씨와 나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상황이 예사롭지 않으니 규제를 강하게 하더라도 '공급'을 대대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기도 했었다.

A씨는 이미 아파트 광풍으로 계급 체계가 공고화 된 뒤에야 정부가 부랴부랴 현실성을 담보할 수 없는(?) 공급책을 내놓았다고 평가했다.

A씨처럼 성실하게 살아온 무주택자들이 '아파트 포지션'이 없다는 이유로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는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A씨는 아파트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 급등은 그의 실질적인 재산 감소를 의미한다. 실질적 재산 감소폭이 A씨가 인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화병이 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억대연봉자 A씨가 좌절하는 사이에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이 정부의 주택정책을 지휘했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단 2년만에 대략 10억원 짜리 아파트를 20억원 수준으로 뻥튀기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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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경실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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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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