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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두산 이끈 '침묵의 거인' 박용곤 명예회장 별세…향년 87세

박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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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3-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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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별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별세

[한국금융신문 박주석 기자]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3일 저녁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유족으로는 아들 정원(두산그룹 회장), 지원(두산중공업 회장), 딸 혜원(두산매거진 부회장) 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지며,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발인과 영결식은 7일이며, 장지는 경기 광주시 탄벌동 선영이다.

박 명예회장은 1932년 서울에서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자원해서 해군에 입대해 참전용사로 활약했다. 군 제대 후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두산그룹에는 1963년 동양맥주 평사원으로 발을 들였고 이후 한양식품 대표, 동양맥주 대표,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친 뒤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1996년 8월 두산그룹 창업 100주년 축하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두산)

1996년 8월 두산그룹 창업 100주년 축하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두산)

◇ 새로운 시도, 부단한 혁신…’글로벌 두산’ 기틀 닦아

고인은 두산그룹 회장 재임 시 그는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하는 등 선진적인 경영을 적극 도입했다. 두산 그룹 출신 한 원로 경영인은 “바꾸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분이다”라며 “새로운 경영기법이나 제도가 등장하면 남들보다 먼저 해보자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그의 대표적인 혁신은 1995년 창업 100주년을 한해 앞두고 당시 주력이었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고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였다. 두산의 대표사업이었던 OB맥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획기적인 체질 개선작업을 주도했다. 이 같은 선제적인 조치에 힘입어 두산은 2000년대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소비재 기업에서 산업재 중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68년 6월 한양식품 독산동공장에서 코카콜라 국내 첫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두산)

1968년 6월 한양식품 독산동공장에서 코카콜라 국내 첫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두산)


◇ 주변을 아우른 큰 어른…경청의 리더십 보여준 ‘침묵의 거인’

고인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에도 실무진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신의 뜻을 짧고 간결하게 전해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할 번 일을 맡기면 상대를 신뢰하고 오래 지켜보는 ‘믿음의 경영’을 실천한 고인에게 두산 직원들은 “세겐의 평가보다 사람의 진심을 믿었고, 다른 이의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하던 ‘침묵의 거인’이셨으며 주변의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큰 어른’이셨다”라고 말했다.

재계에서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과묵한 성품이었다. 그는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라며 본인이 침묵하는 이유를 설명하곤 했다.

◇ ‘남의 밥 먹는 것’부터 시작…두산에서 첫 업무는 공장 청소

고인은 1960년 4월 두산그룹이 아닌 한국산업은행에 공채 6기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는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선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고인은 3년동안의 은행 생활을 마치고 1963년 4월에 동양맥주에 말단사원으로 입사하며 두산그룹에 첫발을 내디뎠다. 첫 업무는 공장 청소와 맥주병 씻기였다고 한다. 사원부터 시작한 고인은 선진적인 경영을 잇따라 도입하며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했고 한양식품,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룹회장을 맡은 이후 1985년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베리나인 등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1990년대에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두산창업투자, 두산기술원, 두산렌탈, 두산정보통신 등의 회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1974년에는 연합뉴스의 전신인 합동통신 사장에 취임해 세계적인 통신사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국제상업회의소 한국위원회 의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경영 성과를 인정 받아 1984년 은탑산업훈장, 1987년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 몸에 밴 겸손…”분수를 지켜라”

어려서부터 선친에게서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박 명예회장은 “내가 먼저 양보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또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살았다. 고인은 ‘수분가화(守分家和)’를 가훈으로 삼았고, 형제와 자녀들에게 ‘수분가화’라는 붓글씨가 적힌 액자를 선물하면서 분수에 맞는 삶을 강조하기도 했다.

‘수분가화’는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면 ‘능력 범위 안에서 행동하라’는 뜻이며 ‘조금씩 양보하고 참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박주석 기자 jspark@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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