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이 한 달 넘게 강행군을 잇고 있다. 문제는 특검 측이 명확한 증거는 내놓지 않고 정황논리에 기댄 채 추측과 예단을 바탕으로 공세를 펴고 있어 강도는 높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공방전으로 흐르고 있다. 13차 공판까지 이어지는 동안 공소장에 담긴 기소 취지가 실제 법정에서 명백히 증거화돼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증인들이 공소장 내용을 부인하거나 일부는 해당 내용을 알 수 없는 위치의 부적합자인 사실까지 나타난 실정이다.
◇ 특검, 정황·추측 기댄 공세로 맥 빠져
심지어 삼성이 애당초 정유라 씨만 단독 지원하려 했다는 특검 측 주장을 뒤집는 증언도 나왔다. 박재홍 전 한국마사회 승마팀 감독은 지난 2일 열린 10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삼성이 여러 승마선수를 지원하려 했지만 최순실 씨 반대로 삼성 계획이 틀어졌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박씨는 “정유라에 대한 단독 지원을 숨기기 위해 다른 승마선수들을 들러리 세운 것 아니냐”는 특검의 질문에 “삼성에서는 정유라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다른 선수도 지원하려고 했으나 최순실의 압력으로 잘못 진행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며 “그 과정에서 최순실의 반대로 지원이 연기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지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전지훈련에 참석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승마 지원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과연 삼성이 만든 것이냐는 부분에 대해서도 기존 특검 주장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지난 8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공소장을 보면) 중장기 로드맵을 최서원(최순실) 지시를 받은 박원오가 작성해 박상진닫기

◇ 총수 없는 경영공백 피해는 국가경제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새으로 쓰러진 지 만 3년이 지났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10일 자택에서 쓰러져, 순천향대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현재까지 입원중이다. 갑작스러운 이 회장의 입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구심 역할을 하며 흔들림 없는 경영을 이어왔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급 실적을 낸 것도 이 부회장 리더십을 빼고 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인다. 이 부회장은 한화그룹과 빅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하만 인수 등을 체결하면서 재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과정에서 핵심 타깃이 돼 구속되면서 삼성그룹은 총수 부자 모두 돌보지 못하는 사태에 빠졌다. 정치권의 압박 때문에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해체가 됐다.
이 부회장에 들씌워진 혐의는 박근혜·최순실 측에 뇌물을 제공하고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도움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기금을 낸 다른 대기업 총수와 달리 유일하게 구속된 사실도 석연치만은 않다는 여론도 잠재해 있다. 전문가들은 창업주 3세 총수 경영의 장점으로 정부의 합리적 정책 채택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막대한 자원과 사업 안전성을 기반으로 R&D와 혁신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청한 10대그룹 한 지주사 임원은 14일 한국금융신문과 통화에서 “삼성의 장점과 미래 핵심분야 경쟁력이 훼손된다면 우리 국민경제에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4차산업혁명 견인차 역할 불능 상태 방치
이 부회장 측은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당초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는 5월 중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재판 일정이 길어지면서 8월까지 늦춰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과 이 부회장의 재판이 맞물리는 바람에 재판 일정은 물론 선고 향방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으로서는 총수 경영공백 장기화 부담이 가중될 것이 뻔하다.
반도체와 모바일 시장을 주름 잡는 글로벌 강자 삼성에게는 자율주행차, AI 등 미래핵심 경쟁분야 견인차 역할을 수행할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지만 소신경영 책임경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기간 동안 재벌의 중대 경제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강조한 점도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고 법정형을 높여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공약도 악재가 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이 빠르면 5월 중에는 경영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던 경영계 일각의 기대감은크게 위축된 모습이다. 이 부회장이 구속 이후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로 전환했지만 글로벌 초강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경쟁력 약화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벌써부터 계열사 간 업무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가 노출되고 있다.
미래전략실 해체에 이어 지난달 말엔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하지 않기로 이사회에서 공식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자사주 전량 소각 방침까지 발표하며 향후 번복 여지조차 없앴다.
경영계에선 이 부회장 1심 선고 결과 이 부회장이 현업에 복귀할 길이 열린다 하더라도 대법까지 가는 가시밭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 외에 경영권 승계를 위한 ‘플랜B’가 나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오아름 기자 ajtwls070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