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존속가치 판단하는 ‘평가 감정’ 중요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겪을 수 있습니다. 구조조정의 원칙은 스피드입니다. 위기 상황을 조기에 파악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타나카 겐지(田中賢治) 일본정책투자은행 경제조사 실장은 목소리는 크고 단호했다. ‘2016한국금융미래포럼’에서 제2세션 발표자로 나선 겐지 실장은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첫 번째 원인을 만성적인 수요 부족이라 지적했다. 고령화의 영향이었는데 이는 한국도 겪게 되는 일이라 했다. 두 번째는 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버블호황기 때 현상 유지에 급급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로는 구조조정이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었음을 말했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였지만 제때하지 못해 귀중한 경영자원이 채산성 없는 분야에서 낭비되어 결국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분석이었다.
◇ 빠르지 않으면 실패한다
그는 강연 내내 구조조정의 빠른 처리를 강조했다. 일본은 금융기관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얽혀 문제를 계속 미뤄왔고 버블 호황이 꺼지자 문제가 크게 터졌다는 입장이었다. 더 큰 문제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까지 걸린 시간만큼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들은 방치되었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들이 회생 가능성이 없는 좀비기업으로 연명하게 되었다. 한 때 상장기업의 15%가 좀비기업이었다. 금융기관 정상화에 시간을 소모한 만큼 기업들의 부실이 커져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석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사례였다.
◇ 정부차원의 구조조정 기구 설립
당시 일본은 산업 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인식을 가졌다. 1999년에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산활법)을 제정했고 2003년에 산업재생기구를 설립했다. 산활법 지원내용은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사업을 재편할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게 골자였는데 여기에 산업재생기구가 필요했던 이유는 기업과 은행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해서 좀비기업 청산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산업재생기구를 탄생시켰다. 정부주도로 힘과 권한을 모아 법 시행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바탕을 만든 것이다.
◇ 일본 조선업의 사례
최근 한국에서의 화두인 조선사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겐지 실장은 “세계조선의 반은 일본이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으나 70년대 이후 완전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일본 조선업계는 70년대 제1 차 오일쇼크, 80년대 후반 엔고로 지속적으로 수주 감소를 겪은 다음 산업재편의 방향을 국가 주도의 생산능력 축소 및 합병으로 잡았다. 조선업계의 특징인 수주 변동의 편차를 통감해 호황기에도 생산능력 확대를 자제하고 변동이 적은 중공업기계 부문에 강화했다. 합병을 통한 고용승계 등의 방법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병행했다고 한다. 새로운 조선업 강자로 떠올랐다가 위기를 맞은 한국이 귀담아 들을 내용이었다.
◇ 일본의 교훈과 향후 과제
타나카 겐지 실장은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일본이 배운 교훈을 3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변화의 시기에 결단을 내릴 수 있는지가 성패의 갈림길이라고 말했다. 또 기업구조조정은 스피드가 중요하고 이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존속할 가치가 있는지 ‘평가 감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좀비기업은 정리하고 신기술을 보유해 지속적인 먹거리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기업은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작년 일본 기업의 수익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일본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피해야 한다는 당부를 건넸다.
신윤철 기자 raindrea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