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가 활성화에 발벗고 나선 핀테크 업체 등장만 위협요인인 것만도 아니다. 최근에 제시된 단편적인 소식만 취합하더라도 선진국 금융시장에선 핀테크 업체 말고 기존 경쟁사로부터 시장을 잠식당하는 일이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다 미국 금리정상화가 3분기 중 시작되면 국내 금리가 내년 중 인상기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치솟은 부동산값과 미약한 소득증가율을 고려했을 때 경기 변동 리스크에는 주택담보대출이 많은 대형시중은행들이 훨씬 불리한 실정이다. 대한민국 금융산업 판세를 대형은행이 주도한다고 말하기 묘한 상황이 다가올 가능성이 무르익고 있는 셈이다.
◇ 핀테크에 털리고 중소사에 밀리고
일선 금융계에선 ‘핀테크 바람이 제 아무리 세게 불어 닥친다 하더라도 큰 물줄기를 뒤집어 엎기보다는 일부 새로운 지류로서 물길을 보태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보는 시각을 지닌 사람이 아직도 적지 않다. 태블릿을 포함한 PC와 모바일 기반 지급결제 및 상품가입과 금융거래가 가장 활성화돼 있다는 점이 가장 믿을 구석이었다.
그런데 대형은행이 시장 대부분을 차지한 우리 현실에선 핀테크 업체 출현에 따른 시장잠식 가능성 뿐 아니라, 기동력 있게 밀착영업을 잘 할 수 있는 중소금융사의 반란에도 대형사들이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 5대은행의 경우 다양한 사업부문을 영위하면서 특정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을 펼치며 분투를 거듭했지만 국내 개인금융시장에서 중·소 은행에 시장점유율을 뺏긴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 표영선 연구원은 영국 소매금융시장에서 중·소 은행 점유율이 2010년 4%에서 2013년 7%로 성장했다고 전한 뒤 “이런 추세로 볼 때 2020년에는 15%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금융시장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을 비롯한 중소 은행이 고객 밀착력을 앞세운 틈새시장 공략이 먹혀 들면서 초대형은행들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 수 차례 제시된 바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의 성패가 미지수이긴 하지만 핀테크 활성화에 우호적인 정부 정책이 이어지고 정책금융을 통한 지원까지 가세할 경우 가계 및 개인사업자 영역에서 부분적인 시장점유율 침식은 불가피 해 보인다.
◇ 결국은 상품·서비스와 밀착력
무엇보다 국내 은행산업에선 인터넷전문은행 공세에 앞서 지방은행들의 기반 영업지역 외 진출이 본격화 하고 있어 앞으로의 파급효과가 주목된다. 부산은행은 지난 10일 시화공단지점을 열었고 대구은행이 오는 7월초 반월공단지점 개점을 앞두고 있으며 전북은행은 이들보다 먼저 경기도 진출을 해 놓은 상태다.
지방은행들이 가장 먼저 공을 들였던 서울에선 많으면 10개 안팎의 영업망을 벌리며 파고 든 상태이지만 이들의 공세는 차라리 1997년 외환위기 후 일부 지방은행이 퇴출되면서 지역 밀착 관계형 금융에 공백이 생긴 지역을 겨냥한 것이어서 예사롭지 않다.
2010년 이후 수도권 공략에 나섰던 전북은행은 인천에 5개 대전에 7개 세종시에도 거점을 마련해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펼쳤다. 전북은행 한 관계자는 “영업기반 퇴조가 뚜렷한 구 도심지역 점포를 철수하는 대신 가용인력을 수도권 전략거점에 투입함으로써 영업기반 확충과 시장개척 극대화를 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은행 또한 인천지역 영업연고가 있었던 터여서 반월공단 이후 수도권 진출 확대가 예상된다. 부산은행은 지난해 모든 광역시 영업거점을 갖춘데 이어 이번 시화공단지점 진출로 서울-인천에 이어 경기권까지 공략지역으로 외연을 넓혔다는 데 전략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고객 만족 관계금융 누가 최적화?
한 때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을 추진했던 사례는 옛 지방은행이 지역기업과 지역민과 형성했던 끈끈하고 장기적 관계망이 시중은행 중심으로 바뀐 다음 훼손됐던 데서 기인했다는 지적의 소리가 나왔던 바 있다. 규제합리화 차원에서 핵심 영업지역 밖 진출이 허용된 만큼 이제 대형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경쟁이 전국화되는 일은 불가피하다.
결국 누가 고객 취향과 니즈에 최적화하면서 장기거래 관계를 돈독히 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국제금융센터 김위대 연구위원은 글로벌 곳곳에서 비은행 기업들의 은행부문 영업진출이 늘면서 기존 은행들이 위협받고 있는 것과 관련해 “존립을 위해서는 브랜드력 강화와 선별적 집중 투자, 신규 핵심 영업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고객과의 관계에서 안정성과 신뢰감을 향상시키고 서비스의 질도 개선시켜 경쟁사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운영혁신을 향한 투자 또한 확대해야 한다고 내다본 것이다. 누가 더 많은 고객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것인지, 중소금융사의 공세 범위가 얼마나 확산될 것인지 주목된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