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IT금융융합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한국형 인터넷 전문은행 모델 수립을 주요과제로 꼽았다. 이에 따라 비대면 실명확인 허용 등 현행 금융실명제에 대한 합리적인 완화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명제법 완화에 따라 비대면 실명확인이 허용된다면 은행들의 리스크는 더욱 커진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지난해 대포통장 발생 증가에 따라 현재 은행권은 대포통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실명확인 절차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당국의 규제완화 기조가 은행권의 움직임과 엇박자를 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외 비대면 실명확인 사례를 참고해 절차를 까다롭게 하자니 국내에선 은행 점포 접근성이 높은 만큼 인터넷 전문은행 활성화가 어려울 수 있다. 지금처럼 가까운 은행 점포 한 번 방문하면 될 텐데 굳이 수차례에 걸친 비대면 실명확인을 선호할 가능성은 낮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성공하려면 금융당국은 규제 완화 기조로 갈 수밖에 없다. 금융위는 관련 TF를 구성해 5월까지 은행법과 금융실명제 등 제도개선 세부방안을 마련하고 6월 중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모델 도입방안’을 발표, 3분기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 은행 대포통장 개설 급증
지금은 금융실명제법의 엄격한 대면확인 원칙에 따라 통장개설을 위해서는 은행 직원이 직접 실명을 확인 한다. 온라인 등을 통한 비대면 실명확인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현행법으로 점포가 없는 인터넷 전문은행은 설립이 불가능하다.
또한 은행권은 대포통장 근절운동을 펼치며 실명확인을 강화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금융사기 필수 범행도구인 대포통장은 지난해 4만 5000건으로 전년대비 16.4% 증가했다. 이는 피싱사기 기준 수치로 대출사기 피해까지 포함한다면 8만 4000건으로 늘어난다.
또한 대포통장 개설의 비중이 높았던 농협은행이 지난해 대대적으로 대포통장 근절운동에 나서면서 농협은행을 제외한 은행권의 대포통장 발생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체 대포통장 중 은행권 비중은 2013년 41.7%에서 2014년 12월 76.5%까지 급증했으며 농협은행을 제외한 전 은행에서 대포통장 발생이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각 시중은행들은 관련 TF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장기 미거래 계좌의 출금 및 이체한도를 하향조정하고, 재발급 하거나 거주지나 직장 외 원거리 지역에서 계좌개설 요청 시 금융거래목적확인서를 요구하는 등 점검 절차를 강화했다.
시중은행 관련 실무자는 “비대면 실명확인이 허용되면 대포통장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더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금융실명제가 존재하는 한 강화할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위해 금융실명제법을 완화하고 은행권에도 적용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 비대면 실명인증에 대해서도 허용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며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전 금융권에 도입할지 인터넷 전문은행에만 적용할지도 논의 중인 사안”이라 답했다.
◇ 이용자 없어 규제완화 효과 낮을 수도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실명제는 자금세탁 관련 범죄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금융실명제 완화를 통해 비대면 실명인증 허용을 위해서는 대면인증에 버금가는 안전장치 확보가 선행돼야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비대면 실명인증을 허용하고 있는 해외사례 등을 감안해 향후 방안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EU, 일본 등 비대면 실명인증을 허용하는 해외 주요국의 인터넷 전문은행들은 △정부기관 DB 조회 △계좌개설에 필요한 임시 비밀번호와 체크카드 우편 발송 △고객 지정 이체계좌로 소액 송금 등 여러 과정을 거쳐 본인여부를 확인한다. 해외에서 우편으로 본인확인을 할 경우 계좌개설에 1주일 가까이 소요될 수도 있다.
서 위원은 “우리나라는 해외 주요국에 비해 대면인증 개좌개설이 매우 용이해 비대면 인증 절차가 너무 복잡하면 이용자 부족으로 제도개선 효과가 반감된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은행들이 비대면 대면인증을 선호하지 않는 것이 걱정”일 정도라는 것이다.
해외사례를 참고해 국내 비대면 실명확인 절차가 까다로워진다면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은 하나마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금융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인터넷 전문은행을 활성화하고자 한다면 실명확인 절차 등은 지금보다 더욱 간편하게 완화돼야 한다. 금융위는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을 위해 금융실명제 외에도 은산분리, 자본금 요건, 물리적 점포 허용여부 등 금융권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규제들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규제완화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김효원 기자 hyowon12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