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처럼 체크카드 실적 성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지난해 체크카드 이용액 기준으로 2위를 차지했던 NH농협카드가 양적 성장을 거듭한 끝에 선두 자리를 탄환하면서 kB국민카드와의 실적 경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 정부의 활성화 정책에도 체크카드시장 한풀 꺾여
체크카드 발급 수가 사상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9월말 현재 전업카드사 및 겸영은행의 체크카드 발급 수는 9604만장으로 전분기(1억372만장)에 768만장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체크카드가 발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그래프 참조> 체크카드 회원수 역시 9월말 현재 7725만명으로 전분기 보다 602만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난 3분기에 처음으로 체크카드 발급이 크게 감소한 것은 경기침체로 인해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면서 체크카드 발급 자체가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체크카드 발급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이용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본지가 입수한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삼성카드, 현대카드, 롯데카드, 하나SK카드, 우리카드, NH농협카드, 외환카드, 씨티카드 등 국내 주요 전업카드사 및 겸영은행의 체크카드 이용실적은 9월말 현재 66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0조8000억원에 비해 8.9% 증가했다. 이는 전년 동기 성장률 21.1%에 비해 12.2%가 줄어든 것이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체크카드 시장의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국내 카드시장(신용카드+체크카드) 규모는 517조4000억원(2010년)에서 577조7000억원(2012년)으로 3년간 12% 성장하며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는 동안 체크카드 규모는 51조5000억원(2010년)에서 82조3000억원(2012년)으로 60%나 성장하며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 은행계 카드사들 체크카드 시장서 독주
체크카드 실적이 주춤거리고 있는 가운데서도 은행을 끼고 있는 금융지주사 계열의 전업 카드사나 겸영 카드사가 시장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기업계 카드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전국 구석구석 뻗은 영업망을 통해 체크카드 강자로 군림해온 NH농협카드는 지난 9월말 현재 체크카드 이용실적이 14조794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1조8475억원)에 비해 2조9472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그래프 참조> 특히 이 회사는 체크카드의 실적을 앞세워 경쟁사인 롯데카드를 전체 MS부문에서 따돌렸다.
만약 체크카드를 제외한 신용카드의 시장점유율만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NH농협카드는 9월말 신용카드(신용판매+현금서비스) 이용실적은 27조8587억원으로 7.4%의 점유율을 기록한 반면, 롯데카드는 29조2074억원으로 7.7%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신용카드 시장점유율이 롯데카드에 밀려 6위에 그쳤던 NH농협카드가 체크카드를 앞세워 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KB국민카드 역시 마찬가지다. 이 카드사는 체크카드를 제외한 신용카드 이용액이 50조3320억원으로 삼성카드(52조8133억원)보다 낮았다. 시장점유율로 보면 KB국민카드는 13.3%로 2위인 삼성(13.7%)에 밀려 3위에 그친 것이다. 두 카드사가 지난해에 이어 체크카드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이유는 경기불황과 가계부채 문제로 신용카드 중심의 카드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체크카드 부문에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NH농협카드의 경우 NH농협은행의 사업부로 운영돼 체크카드 영업에서 경쟁력을 갖춘 점도 선전의 배경이 됐다. 반면 하나SK카드의 장내 입지는 지난해에 비해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9월말 체크카드 이용실적은 3조14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조9371억원에 비해 무려 3조7893억원이나 급락했다. 이로 인해 체크카드 시장점유율이 11.5%에서 4.8%로 1년 사이에 무려 6.7%p나 빠졌다.
지난 2011년 9조2840억원(13.5%)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SK카드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휴대폰 단말기 할부채권 인수 중단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카드사는 2010년 SK텔레콤과 제휴해 할부채권을 사들일 때 체크카드로 결제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왔는데, 감독당국이 카드사의 레버리지 비율을 제한하자, 지난해부터 이 서비스를 중단했다. 작년 가맹점 수수료율 체계 변경으로 신용카드 수익성이 악화되고 체크카드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마케팅, 브랜딩에서 우위를 보였던 기업계 카드사의 위세는 약화되고 전용계좌를 가진 은행계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은 예견돼왔다.
특히 지난 4월 우리카드의 분사로 은행계 카드사의 치열한 체크카드 경쟁은 한결 불이 붙었다. 우리카드의 올해 9월말 기준 체크카드 이용실적은 8조54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28.4%나 늘었다. 분사 후 ‘하이브리드 체크카드’를 주력상품으로 내세우며 ‘체크카드 1위’ 목표를 제시한 우리카드가 마케팅 활동을 강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금융지주사 산하의 카드사들은 계열 은행을 통해 체크카드 발급을 하고 있는 데 비해 기업계 카드사들이 불리함을 안고 있는 것이다.
◇ 은행권, 금융당국의 제휴 강화 행정지도 무시
사실 삼성카드 등 기업계 카드사들은 체크카드 발급을 위해 은행과의 제휴를 점차 확대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지난 9월 정부의 체크카드 활성화 대책 발표 전후에 체결된 카드사와 은행 간의 제휴도 보여주기식 협약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기업계 카드사 중 제휴은행을 가장 많이 보유한 롯데카드의 경우 4일 현재 국내 17개 은행 중 14곳과 체크카드 계좌를 연계할 수 있는 제휴를 맺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고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기능인 ‘ATM 현금 입출금 기능’까지 포함해 제휴를 맺은 곳은 우리·신한·외환·산업·하나은행 등 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은행은 단순히 계좌만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휴다.
현대카드는 우체국을 제외한 7개 은행과 제휴해 체크카드를 발급하고 있지만 롯데카드와 마찬가지로 우리·신한·산업은행 등 3곳 은행과의 제휴만이 현금 입출금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삼성카드 역시 8개 은행과 계좌에 대한 제휴를 맺고 체크카드를 발급하고 있지만 국민·우리·신한·SC·경남은행 등을 제외한 3곳에서 체크카드를 발급받을 경우 현금 입출금 기능을 이용할 수 없다. 현금 입출금 기능이 없는 체크카드의 경우 상품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고객 중 대부분이 현금카드와 체크카드를 동일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계좌연결을 위한 제휴도 분명 큰 성과이기는 하나 현금 입출금 기능을 포함한 제휴가 아니면 큰 효과를 기대키 어렵다”고 설명했다. 은행의 이 같은 정책은 같은 계열의 은행계 카드사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제휴를 꺼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업계 카드사들은 보다 공정한 환경에서 체크카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에서는 체크카드를 활성화할 것을 지도하고 있지만 이런 지도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9월말 기준 체크카드 이용액을 보면 삼성·현대·롯데카드의 비중은 3%에 불과하다. 기업계 카드업체의 한 관계자는 “특정은행에서 일정비중 이상은 계열사의 체크카드를 발급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은행과 카드사의 제휴에 입출금 기능을 넣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있어야 기업계 카드사도 체크카드 활성화에 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기업계 카드사가 체크카드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장벽이 존재하면 고객들이 다양한 체크카드 상품을 접할 수 없어 소비자의 선택권도 크게 침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