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악재는 풀리는 쪽으로 흐르고 미국과 중국 경기가 글로벌 경기 선순환에 힘을 보탠다면 수출 전망이 밝겠지만 원/달러 환율의 하락(원화 강세)이 더욱 진전되고 자민당이 정권 탈환에 성공한 일본 새 정부가 엔 약세 정책을 쏟아낸다면 수출 중소기업엔 큰 악재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 경기 나빠질라 치면 곧바로 대출 회수 순응형 경영 되풀이
한국은행이 진행한 은행 대출행태 서베이를 보더라도 내년 이후 대출태도는 중소기업들이 원하는 것에 크게 부족해 질 전망이다. 대한민국 금융시장을 대거 점유하고 있는 시중은행들이 경기흐름에 순응해 경기가 나빠지면 대출을 줄이거나 아예 회수에 나서고 경기가 좋을 때는 수요에 발맞춰 대출에 나서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하반기부터 경기불안 징후가 나타나고 2008년 4분기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분출했던 동안 은행들의 대출태도 지수는 2008년 3분기 -34.00로 최하점을 찍고 가파른 마이너스 곡선을 그렸다. 이 기간 동안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대출이 대거 줄었고 심지어 회수에 나섰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나마 2009년부터 대출을 늘린 곳이 많아지는 것으로 대출태도지수가 회복됐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소기업 대출수요와 대출태도 지수가 큰 폭의 괴리도를 나타내고 있다. 내년 대출태도는 올해보다 더욱 보수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은행들이 훨씬 많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부터는 바젤Ⅲ 영향권에 들면서 새로운 악재가 될 전망이다.
◇ 선진국-신흥국 수요 중립 가능성 & 내수 불투명
농협경제연구소 윤건용 부연구위원은 2015년 시행될 유동성규제에 따라 국내 은행들이 장기대출을 지양하고 단기대출을 늘리는 확대전략을 펼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중소기업 가운데 한계기업 비중이 늘어났고 이미 올 상반기에 한계기업의 차입금의존율이 4할 넘어섰으며 이들 기업은 단기차입금 비중이 78%에 이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 경기가 추가악화를 면하는 선에서 그치고 신흥국 역시 수요가 늘지 않는데다 내수마저 얼어 붙으면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로 꼽힌다. 경기 하방경직성이 커지는 과정에서 버티는 능력은 대기업이 탁월한 반면 중소기업이 크게 취약한 상태다. 시중은행의 경기순응성에 비춰 볼 때 단기대출을 늘리고 나서더라도 경영상태가 취약한 중소기업에게 돌아갈 자금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장기대출을 회수하려는 유인만 잔뜩 커질 수 있다. 글로벌 경기가 미국과 중국의 적극적 역할에 힘입어 하반기 회복세를 띠고 중소기업에까지 온기가 번질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문제에 직면하는 기업이 적지 않을 수 있는데 환율 요인마저 괴롭힌다.
◇ 환율 복병 내수기업 유리한데 中企 마냥 반갑지는 않아
외국의 초국적 투자은행들은 내년에 강세를 띌 통화로 단연코 원화를 꼽고 있다. 최근까지도 환율은 속절 없이 떨어지고 있고 국내외 수많은 예측기관들이 내년에는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입을 모으는 실정이다.
일단 환율이 떨어지면 수입물가가 떨어지니 내수기업엔 호재일 수 있지만 새로 취임할 대통령이 어떤 행정부를 구성해 경기부양에 얼마 만큼 강력하게 나설지 미지수다. 특히나 수출중소기업에겐 이만 저만한 악재가 아니다. 금융연구원 박성욱닫기

대기업들은 생산기지를 글로벌화했고 자금조달을 여러 통화로 할 수 있을 만큼 조달구조가 다양화돼 있지만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에서 팔아야 하는 수출 중소기업으로선 속수무책 밑지는 수출이라도 해야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한 술 더 떠서 엔화약세까지 가세하면 절망적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최근 일본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했고 엔강세를 떠 받쳐온 디플레 고리를 끊기 위해 유동성 공급을 크게 늘리고 물가상승률 목표를 적어도 2%까지 용인하는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만약 이같은 정책이 효과를 거둬 엔 약세 추세로 전환해 장기화한다면 대한민국 수출전선은 전세가 급격히 기울 공산이 크다. 대기업들은 그래도 원/달러 환율 하락과 엔 약세가 겹쳐도 견딜 힘이 비축돼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또 다시 양극화 이슈가 깊어지는 셈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