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야당의원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를 앞두고 제기한 주장이다. 19대 국회 정무위 가동과 함께 첫 이슈는 금융권의 CD금리 담합의혹 진상규명과 대책 수립이 돼 버렸다.
25일 의원들의 질의 공세에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CD금리 담합의혹과 관련해 금융당국의 의견과 무관하게 정밀하게 살펴서 결론을 최대한 빨리 내겠다고 설명했다.
◇ 해묵은 관행 타성에 젖은 우월적 권한 행사 만연 탓
국내 은행들이 대외 경제불안 때문이 아니라 해묵은 관행과 관성에 의존하는 태도 때문에 ‘신뢰의 추락’은 끝없는 대신, 평판리스크가 눈덩이 불 듯 불어나는 사태에 직면했다. 은행권의 반응을 보면 일부 따가운 질책과 비판을 수용하면서 또 한편으론 억울해 하기도 한다. 가히 ‘패닉’에 준하는 증상을 띠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뜻 있는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법과 타개책 마련에 나서려는 노력이 부족한 점을 오히려 우려하고 있다. 더 이상 개인 고객과 신용도 낮은 중소기업들 위에 군림하는 ‘갑’으로 지낼 수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신뢰붕괴의 위기가 어디서 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흐를 것인지에 대해 진정성을 띤 모색과 고뇌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문제 삼은 ‘CD금리 담합’ 협의와 이에 기반해서 은행들이 폭리를 취했다는 공격에 이어, 감사원이 발표한 불합리한 사례들이 겹치면서 은행들은 ‘탐욕만 추구하는 나쁜 집단’으로 전락했다. 고객 서명과 대출액을 조작했다는 논란을 빚은 사례가 언론에 특필되고 저학력자에게 신용평점을 극히 낮게 적용한 사례 또한 도마에 올랐다.
시장여건이 달라지고 은행들이 자금조달 의존도를 크게 낮추면서 발행량이 줄면서 CD금리가 변동성도 없이 장기간 높은 수준에 고정됐던 현상이 결국은 은행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담합’마저 불사한 조작의 결과라는 주장이 진실에 근접한 이야기로 둔갑해 버린 상황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입은 정신적 충격은 매우 큰 상황이다. 덮어 놓고 은행들을 ‘폭리에 눈 먼 탐욕스런 집단’이라는 댓글이 관련 인터넷 기사 밑에 즐비하다.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벼르고 나선 것 역시 정치인이 활용하기 딱 좋은 소재기 때문이다.
◇ 소비자들이 겪은 충격엔 비교 못할 억울함
실명이 찍힌 채 언론의 타깃으로 떠오른 은행들은 잘못한 일에 대해 하루 빨리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일부 감사원 지적사례의 경우 과거 지적받은 바 있어 이미 바로잡은 사안도 포함됐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분노가 더욱 가중되고 있고 이를 테면 ‘아직도 매가 부족하다’는 컨센서스라도 형성돼 있는 듯한 형국이다. 금융권 안에서조차 근본적 자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한 동안 CD발행을 한 적이 없다”며 여론의 질타와 당국의 제재 가능성으로부터 한 발 비껴 서 있는 한 대형은행 임원은 “CD금리 담합을 할 실익이 크지 않고 담합 여부와 관련 없이 이자마진의 적정성을 따진다면 이렇게까지 여론의 타깃이 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곧 이어 그는 “반 월가 시위가 태동한 까닭이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교정 또는 혁신돼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 나라의 현 상황 또한 같은 방향의 물결임을 읽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책 금융기관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이자마진 탐욕 논란과 수수료 인하 압력에 직면했으면서도 은행권의 대응은 지나치게 안이했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여론 악화에 전전긍긍해야하는 처지가 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 말로만 추구한 소비자만족, 높은 기대치 올려다 본 적 있나
이 관계자는 “실제로는 이자마진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고 자산증가율에 비해 이자이익 증가율이 낮은 게 사실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봐야 통하지 않는데 소극적 설득으로만 일관했던 것 또한 실책”이라는 비판까지 쏟아 냈다. 한국은행 공신력에 기대어 은행 이자마진을 보면 은행권의 논리에는 결함이 없어 보인다. 〈그래프 참조〉
당좌대출을 뺀 잔액 기준 총대출금리에서 금융채를 뺀 잔액기준 저축성 수신금리의 차이를 구해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무렵인 2008년 8~9월은 2.6%포인트 대였고, 10~11월은 2.7%포인트 대였던 것이 위기 직후 오히려 1.82%포인트까지 떨어졌다가 서서히 회복했고 지난해 중반 이후 다시 낮아지는 추세다.
최근 이자마진은 글로벌 위기 전 수준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 탐욕을 부릴 겨를이 없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유지한 2.9%대 수준의 이자마진은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황금기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민심은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조정할 때마다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조정에 항상 민감해 했다. 체감 비용부담에는 적극적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 심리학의 기본적 사실을 간과했다간 현재 사태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반적인 이자마진 수준이 크게 불합리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부담 완화와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금리 및 서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가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개별적 금리 책정과 적용과정에서 불합리한 사례가 확인되는 순간 은행에게는 호된 꾸지람과 매질이 가차 없이 가해질 것이라고 뜻 있는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시중은행 PB부문 한 고위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대하고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노라고 강조하는 전략은 거액자산가에게는 최적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압도적 대다수를 차지하는 매스 고객층에게 소비자 만족은 정직한 값을 치르고 존중받으며 거래할 수 있는 은행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 수준에 도달해 있는 은행은 다른 나라에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일시적 분노의 물결이라 견디면 된다는 대응방식이 재연될까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